삶의 의미를 속삭이듯…김경수·신정민 시집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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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어, 세계와의 싸움이라고 할 때 그것은 결국 삶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그 싸움의 요체는 한 손으로 잡히지 않는 삶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수긍하는 데 있다. 김경수의 여섯 번째 시집 〈편지와 물고기〉(천년의시작)와 신정민의 다섯 번째 시집 〈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파란)는 농익은 언어로 삶의 의미를 캐면서 만만찮은 삶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모던적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경수 시집 ‘편지와 물고기’

“일백 년 뒤 나는 어디에 있을까?

노래하는 새, 아니면 꽃노을…”

답 없는 텅 빈 물음으로 그는 묻는다


부산의 문학계간지 〈시와사상〉 발행인이자 의사 시인인 김경수(62)는 간단치 않은 갑년 나이를 넘기면서 삶과 시를 통찰한다. ‘내 몸은 빈 그릇. 머리로 안 것은 모두 부질없는 부패한 빵이다. (…) 나는 말씀을 건지러 왔다.’(40쪽) 과연 우리 삶은 그 말씀을 건질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시를 보면 그 기대는 잘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서러운 마음으로 시집을 내었지만’ ‘시집은 헌 집 꽃밭에 쌓이는 낙엽이 되고 만다’(23쪽)고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와 언어에 대한 그의 생각은 깊다. ‘글자의 진정한 내면을 알기 위해서는/글자와 섞여 세월을 보내야 한다’(25쪽)고 할 정도다. 그는 말한다.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시를 쓰지만 사라지는 것이 삶과 시를 쓰는 이유다.” 그러니까 빈 그릇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우리 삶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그것을 수긍할 때 역설적으로 우리 삶은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노래한 ‘초원의 빛’에서 그는 워즈워드를 인용해 이렇게 썼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 시간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러워 말지어다.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64쪽)

‘일백 년 뒤에’라는 시에서 그는 묻는다. “지금부터 일백 년 뒤에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 답은 없다. 다만 다음과 같은 물음만 있을 뿐이다. ‘키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노래하는 새가 되어있을까?/나를 알던 선한 사람들 어깨 위에 꽃노을로 내려앉아 있을까?’(65쪽) 답 없는 텅 빈 이 물음이 우리 삶, 빈 그릇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신정민 시집 ‘저녁은 안녕이란…’

“요약되지 않아 어려운 인생

그러니 살아볼 수밖에…”

그래서 우린 무엇이 되어가는 것인가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정민(58)은 독특한 어법의 시인이다. 그는 어릴 적 사생 대회에서 하늘을 흰색으로 칠한 적이 있다고 한다. ‘시소에 앉아 (…) 하늘 바라보며 (…) 처음 본 그 푸른색’(25쪽)을 흰색으로 칠했다는 것이다. 흰색 하늘을 그린 거기서 다음 구절이 나온다. ‘자유,/무엇이든 마음대로 그리는 것이/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보다 어려웠다’(24쪽).

이것이 그가 말하는 삶이다. 요컨대 ‘인생은 요약되지 않아서 어려웠다’(42쪽)는 것이다. 요약되지 않으니까 살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엔 알 수 없는 것이 많은 모양이다/도무지 알 수 없는 걸로 족한 것들이 있어 살 수 있는 모양이다’(78쪽). 설사 ‘짧든 길든 사람 사는 이야기는 똑같은 줄거리로 요약된’(50쪽)다고 해도 살아봐야지 알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삶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이란 너무 허무했죠’(89쪽)라고 토로하고, ‘사랑이 나눌 수 없는 것이란 걸 알게’(106쪽) 되더라도 우리는 그 나눌 수 없는 허무를 가로질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가장 뛰어난 시도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 인간을 알아야 모든 걸 알 수 있다고 우린 모두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고’(109쪽).

사바아사나는 요가에서 죽은 듯 가장 편하게 누워 있는 자세다. 실은 ‘살아 있어서 해낼 수 없는 요가 자세’이지만 우리는 거기에 이를 수 있다. ‘비우기를 잊고 잊는다는 것마저 잊는다/몸을 바닥에 맡겨 버린다/마음에서 모든 것을 지운다’. 그렇게 삶에 모든 것을 맡길 때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을 게 아닐까, 시인은 그렇게 속삭이고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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