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 양복 ‘100년 명가’의 꿈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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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코리 이영재(오른쪽)·이규진 부자가 함께 맞춤양복 작업을 하고 있다. 당코리 제공 당코리 이영재(오른쪽)·이규진 부자가 함께 맞춤양복 작업을 하고 있다. 당코리 제공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정상회의는 본 행사를 비롯해 다양한 부대행사와 문화행사들이 이어졌다.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등장한 행사장에서 한 영역의 주인공을 차지하며 조명을 받은 20대 부산 젊은이가 있다. 바로 50여 년 맞춤양복의 대명사로 불리는 ‘당코리’의 이규진 실장이다.



100년을 이어갈 맞춤양복 ‘당코리’

이 실장은 지난달 22일 열린 한아세안 패션위크에서 당코리테일러 패션쇼를 총괄했다. 무대에 오른 45벌의 양복들을 모두 디자인하고 제작한 것부터 시작해 이날 패션쇼 연출과 구성까지 짰다.

심지어 서울에서 내려온 프로모델들과 함께 쇼 무대에 모델로 서기까지 했다.184cm의 큰 키에 당당한 걸음걸이로 이 실장은 무대를 사로잡았고 기본 양복부터 이날 패션쇼의 절정인 대례복까지 입고 나와 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당코리’ 이영재·이규진 부자

20대 아들 한아세안 패션위크 무대

당코리테일러 패션쇼 총괄 시선 모아

“장인의 가치 알기에 쉽게 생각 안 해”

최고의 명품은 자신에게 잘 맞는 옷

“배워야 할 것은 기술 아닌 정성과 철학”

스물 아홉의 나이로 이렇게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내자 패션가에선 놀라움과 칭찬이 교차하고 있다. 이 실장의 성과 뒤에는 짧은 기간, 이 실장을 엄하게 조련한 그의 아버지, 당코리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이영재 씨가 있다.

“정신을 이어가야지. 기술은 누구에게나 전수할 수 있어. 실제로 오래도록 당코리에서 일해오는 기술자들의 실력은 톱클래스지. 그런데 내가 규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건 ‘당코리’ 양복 한 벌이 완성되기까지의 마음과 정성, 철학이지. ”

맞춤 양복의 대명사, ‘당코리’에서 50여 년간 모든 것을 바쳤다는 이영재 디자이너와 아버지를 이어 백 년의 명가 ‘당코리’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규진 실장. 부자와의 만남은 마치 맞춤 양복 세미나를 하듯 진지한 대화로 가득했다.

“양복 한 벌을 짓는데 250여 가지의 공정이 필요합니다. 양복을 만드는 과정은 행복을 찾는 우리 인생과 닮아 있죠.” 긴 대화끝에 나온 부자의 결론은 이 한마디로 정리될 것 같다.



진정한 멋과 품격을 지닌 명인

이영재 디자이너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겠다고 말했을 때 내심 기뻤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강요할 수는 없었지만, 좋은 작품을 이어가겠다는 아들의 한마디에 이영재 디자이너는 세상 가장 엄한 스승을 자처했다.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물든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양복을 향한 아버지의 정성과 열정을 몸으로 접했으니까요. 이탈리아는 몇 대에 걸쳐 이어지는 양복점들이 있더라고요. 아버지가 지켜오신 장인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절대 쉽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실장은 일을 하면 할수록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좋은 양복, 최고의 옷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들 부자는 고객의 피부색깔과 피부상태, 체형, 뼈, 직업, 라이프스타일까지 고려해서 옷을 만들어야한다고 설명했다. 비싼 옷,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이라는 이야기이다. 당코리는 그렇게 명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영재 디자이너는 최근 대수술을 몇 번이나 할 정도로 건강에 무리가 왔다. 몸 상태가 좋지 않지만 이 실장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여전히 매일 12시간 이상 당코리를 함께 지키고 있다. 이영재 디자이너는 하루를 8만6천400초라고 표현하며 잠시도 허투루 쓰면 안된다는 말을 여러번했다. 그만큼 이들 부자가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당코리에는 국내외 CEO를 비롯해 유명 인사들이 많이 거쳐갔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이들이지만, 기사에 이름을 쓰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한다. 당코리를 찾은 손님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똑같이 소중한 손님이고 손님의 명성으로 당코리를 홍보하지 않겠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 실장은 아버지가 지켜온 정성, 철학에 요즘 트렌드를 접목시키기 위해 고민중이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운영하며 젊은 사람들에게 맞춤 양복이 가진 가치를 많이 알리고자 한다.

‘옷은 그 사람을 닮은 거울이자 메시지’라는 이들 부자의 믿음은 당코리를 100년이 넘는 세월 앞에서도 버티게 해 줄 것 같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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