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곳곳에 기발한 생각… 여기는 예술이 밥 먹여 주는 골목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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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미골목 문화 르네상스 (상) 갤러리에서 공방까지

45년 된 주택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전시공간 ‘현대미술회관’. 45년 된 주택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전시공간 ‘현대미술회관’.

‘망미골목 문화 르네상스’를 이끄는 것은 매력적인 문화공간들이다. 주택 을 개조한 전시장, 40년 된 시장 안 예술실험실, 골목 전체를 갤러리로

만드는 시도, 도자기·목가구·금속공예·그림을 직접 체험하는 공방까지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망미골목’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전시는 교훈이 없다’ 전시 중

■1975년생 주택 ‘갤러리’ 변신

‘현대미술회관’은 망미주공아파트가 보이는 부산 수영구 망미동 주택가 한적한 골목 안에 있다. 산뜻한 청록색 페인트로 외관만 바꾸고, 다락방·미닫이문· 환기창 등 옛날 집 모습은 최대한 유지했다. 정윤주 대표는 “젊은 작가들이 캐주얼하게 모일 수 있는 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다가 ‘그럼 내가 한번 해볼까’하고 저질렀다”고 말했다.

동아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정 대표는 서울에서 디자인 일을 하다가 금사동에 있는 예술지구P에서 3년 정도 일했다.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작가, 디자이너로서 여러 입장에 놓였다. 상업 갤러리와 대안공간 같은 여러 덩어리 사이에서 거리감이 느껴져 나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1인 디자인 출판업체인 고등어디자인도 운영하는 그는 작업실로도 쓸 수 있는 주택을 수배했다.

45년 된 주택을 구입해 현대미술회관으로 변신시켰다. 하얗게 칠해진 방부터, 다락과 계단, 목욕탕 등 곳곳이 전시장이 된다. 2019년 12월 20일 개관전 ‘이 전시는 교훈이 없다’를 열었다. 부산·경남권에서 활동하는 강강훈, 류예준, 이수정 등 작가 50명의 작품 52점으로 구성한 전시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정 대표는 “작가를 섭외하면서 모르던 작가도 만나고 모르는 분야도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작가들끼리도 교류하며 예술적 인연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부엌 커뮤니티 공간에 50개의 주머니가 달린 ‘오프라인 다이렉트 메시지’ 판도 걸었다.

현대미술회관은 목·금·토요일, 주 3일만 문을 연다. 정 대표는 “심리 치료 이벤트 같은 것도 하는 삶의 질을 들여다보는 문화공간, 갤러리와 대안공간의 중간 영역에 있는 공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수영건설시장 내 점포에 만들어진 아트랩의 예술실험실. 수영건설시장 내 점포에 만들어진 아트랩의 예술실험실.

대학 동문 손잡고 만든 실험공간

■40년 역사 시장 안 예술실험실

“가운데 중정이 있는, 옛날로 치면 최첨단 주상복합상가였던 것 같다.” (주)아트랩 정경이 공동대표가 부산 수영구 수영동 수영건설시장에 대해 한 말이다. 망미동 주민이 된 지 5년, 정 대표는 망미단길이 뜨기 전 망미골목을 알고 있다. 고미술품상이 곳곳에 있고 건설자재 업체가 즐비했던 거리의 변화를 지켜봤다.

목가구디자인을 전공한 정 대표는 동아대 동문인 박자용(서양화 전공) 공동대표와 손잡고 2017년 4월 예술 관련 멀티콘텐츠 기획전문회사 아트랩을 만들었다. 정 대표는 낡고 오래된 시장에서 ‘재미’를 발견했다. “문화를 하면 사람들이 찾아오기 쉽고, 죽어있는 공간이 살아날 것으로 봤다.”

아트랩이 건설시장 내에 운영하는 공간은 문화공간인 ‘예술실험실’ ‘슈필라움’ ‘오픈스튜디오’ 총 3곳이다. 운영한 지 1년 반이 된 예술실험실은 전시를 위한 전문 공간. 부산화랑협회에 정식으로 등록한 갤러리다. 주 3일(수·목·금) 운영하며 전시 기간 내내 불을 켜 둬 오픈하지 않는 날도 밖에서 전시를 볼 수 있다. 두 대표가 지키지 않는 날은 앞집 과일가게 사장님이 지켜봐 준다.

독일어로 잉여의 공간을 뜻하는 ‘슈필라움’은 예술실험실보다 자유로운 전시를 한다. 영상과 미디어 설치작업 공간으로 쓰이는 이곳은 앞으로 강연, 공연까지 포괄하는 장소로 쓸 계획이다. 16.5㎡의 협소한 전시공간의 한계는 기획으로 뚫는다. 부산에서 활동을 필요로 하는 젊은 친구들을 중심으로 실험적 전시를 열기로 했다.

정경이·박자용 공동대표는 현재 유럽 출장 중이다. “시장이 가지는 상업성을 살려 보려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메종&오브제와 독일 쾰른 가구박람회를 시찰한다. 앞으로도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작업을 해나가는 작가들이 우리를 선택해주면 좋겠다.”


골목을 갤러리로 만든 ‘전시공간 보다’의 변대용 작가 전시. 골목을 갤러리로 만든 ‘전시공간 보다’의 변대용 작가 전시.

“골목 전체를 갤러리로 만들자”

■골목을 윈도갤러리로

‘전시공간 보다’와 ‘스페이스클립’은 김철진·이인미 대표가 함께 만든 부산 수영구 망미동 책방 ‘비온후’가 운영하는 전시공간이다. ‘전시공간 보다’는 책방 입구의 윈도갤러리로 개인적으로 미술을 좋아하는 김 대표가 작가를 섭외한다. 지금까지 김성철, 임국, 정지영, 정영인 등 작가의 전시가 10여 회 열렸다.

현재 개최 중인 변대용 작가의 ‘내일 눈이 온대요!’ 전시는 작품이 골목 밖으로 진출했다는 점이 색다르다. 책방 맞은편 가게 건물 앞에 북극곰 조형물이 서 있고, 골목 끝 카페 고래커피로스터스에도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북극곰을 전시했다. 이 대표는 “작가와 가게 양쪽 모두 좋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전시가 성사됐다”고 말했다.

‘스페이스클립’은 책방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 모퉁이에 있다. ‘충북상회’라는 옛날 슈퍼의 녹슨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다. ‘비온후’가 책을 보관하는 창고로 임대한 곳인데 창고로 쓰고 남은 공간을 윈도갤러리로 쓴다. 밤에도 불을 켜 둬 주민들이 24시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구헌주 작가의 그래피티 ‘다수가 원하는 방향’이 전시 중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골목이나 거리 전체가 갤러리가 되는 전시를 추진해 보려 한다. 책방이 있는 골목뿐 아니라 반경을 더 넓혀서 관람객들이 망미골목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전시를 볼 수 있도록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도공’에서 망미골목의 공방 역사를 이야기하는 김상민 대표. ‘도공’에서 망미골목의 공방 역사를 이야기하는 김상민 대표.

1년간 새로 문 연 공방만 4곳

■다양한 공방도 줄줄이 입점

망미골목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는 곳이 수미로와 과정로42번길을 잇는 거리다. 최근 1년간 공방 4곳이 문을 열었다. 기존 ‘노리공방’까지 합치면 총 5곳이 2차선 도로변에 있다. ‘도자기랑’은 2019년 5월에 개관한 도자기 공방이다. 온라인 판매도 하는 정혜선 작가 작업실 겸 도자기 제작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한다. 목공방 ‘련공방’도 지난해 여름에 수미로에 입주했다. ‘언제나 맑음’은 광목그림과 핸드페인팅 공방으로 두 달 전에 이곳에 왔다.

도자기 작가인 김상민 대표는 작년 12월 말에 작업공간 겸 쇼룸 ‘도공’을 오픈했다. 망미동 더샵파크리치아파트 맞은편 골목에서 13년간 작업실을 운영했던 김 대표는 “교통 접근성이 좋아 예전에도 이곳에 작가들 공방이 꽤 있었다”고 전했다. 부울경도예가(일기일회) 회장으로 활약 중인 김 대표는 2018년 젊은 회원들과 함께 ‘셰프와 도예가의 조우’전을 열기도 했다.

지난 주말 개관 기념 도자기마켓으로 공방 오픈을 주변에 알린 김 대표는 앞으로 더 많은 공방이 이 지역에 모이기를 기대했다. “문화하는 사람이 많이 들어와야 거리도 살고 도시도 살아난다. 카페만 들어서서는 오래가지 못한다. 문화단길이 생겨야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글·사진=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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