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닮은 5색 책방… 책갈피에서 사람 냄새가 났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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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미골목 문화 르네상스 (하) 새로운 서점 집결지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인문학 서점 한탸. 한탸 제공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인문학 서점 한탸. 한탸 제공

비온후가 지난해 개최한 ‘망미골목 책방영화제’. 비온후 제공 비온후가 지난해 개최한 ‘망미골목 책방영화제’. 비온후 제공

망미골목에는 1년여 사이에 독립서점 다섯 곳이 문을 열었다. 책방 주인의 개성과 취향이 녹아 있는 이들 독립서점은 여행, 자연과학, 페미니즘, 인문학, 그림책 등 전문화된 북큐레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책방영화제, 독서 모임 등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에 활력과 인문학의 향기를 불어넣고 있다.


여행전문 서점 ‘비온후’

자연과학 서점 ‘책방동주’

인문학 서점 ‘한탸’

그림책 전문 서점 ‘해피북스데이’

페미니즘 서점 ‘비비드’


심야책방, 책방영화제 등 기획

책 사면 카페·꽃집 할인도 구상

책방 거점으로 상생 공간 꿈꿔


책방동주가 참여한 ‘부산 동네 책방 이야기’. 책방동주 제공 책방동주가 참여한 ‘부산 동네 책방 이야기’. 책방동주 제공

■개성 넘치는 5색 독립서점

파란 간판의 ‘책방동주’(부산 수영구 과정로15번길 8-1)는 국내 1호 자연과학 서점이다. 이동주 신라대 생명과학과 교수가 2018년 4월 21일 과학의 날에 중구 동광동 인쇄골목에서 서점을 오픈한 뒤 같은 해 11월 이곳으로 옮겨왔다. 1층에는 자연과학 전문서적, 동식물에 관한 그림책과 단행본 등이 있다. ‘BOOK & LAB’으로 명명한 2층은 이 대표의 연구공간. 이곳에서는 해외에서 구매한 식물도감, 원서, 도감 속 원화 등을 볼 수 있다. 매달 심야책방도 연다. 매일 오후 2~7시 운영(화·일 휴무).

망미역 4번 출구를 나와 골목에 들어서면 2018년 10월 오픈한 ‘비온후’(부산 수영구 망미번영로63번길 16) 책방이 나온다. 20년간 미술, 인문학 분야 서적을 출간해 온 비온후 출판사가 공간 한쪽에 책방을 마련했다. 비온후는 여행 전문 서점이다. 비온후 출판사에서 만든 책들과 여행, 건축, 지역, 인문학 관련 책들이 비치돼 있다. 김철진·이인미 대표는 “대형서점이 책꽂이별로 책이 분류돼 있다면, 망미골목에서는 책방별로 분류돼 있다. 자연과학이나 인문학 책을 찾는 분들에게는 해당 책방으로 안내한다”고 했다. 목·금 오후 2~8시, 토 오전 11시~오후 8시 운영.

2018년 11월 문을 연 인문학 서점 ‘한탸’(부산 수영구 연수로369번길 22)는 청록색 건물로 감각적인 디자인을 자랑한다. ‘한탸’는 김석화 대표가 즐겨 읽은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한탸는 책에 파묻혀 있다가 뜻하지 않게 현자가 된 폐지 압축공이다. 이곳에는 문학, 철학, 예술 등 인문학 서적이 빼곡하다. 오후 1~7시 운영(월요일 휴무).

‘해피북스데이’(부산 수영구 수미로 14번길 9)는 그림책 전문 책방이다. 캐릭터 디자이너 정유진 대표가 2019년 4월 문을 열었다. 그림책, 시집, 일러스트와 에세이 등 독립출판물을 만날 수 있다.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만든 예쁜 미니 정원과 디자이너들이 만든 에코백, 스티커, 메시지 카드 등이 구비돼 있다. 오후 1~8시 운영(월·화 휴무).

‘비비드’(부산 수영구 연수로357번길 17-10)는 페미니즘 책방이다. 임은주 대표는 〈비엔나 호텔의 야간 배달부〉라는 책을 쓴 페미니즘 작가다. 2019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책방을 열었다. 페미니즘, 비건 관련 책이 진열돼 있다. 퀴어와 페미니즘 관련 굿즈도 있다. 무인 판매 형태가 인상적이다. 오후 2~8시 운영(월·화 휴무).


페미니즘 책방인 비비드. 김상훈 기자 페미니즘 책방인 비비드. 김상훈 기자

■서점, 문화 사랑방이 되다

‘책방동주’의 이동주 대표는 망미골목의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연산도서관, 서동도서관 등이 주최한 책방 투어 프로그램인 ‘2019 부산 동네 책방 이야기’에 참여했다. 이 대표는 시민들에게 망미동 서점 5곳을 알리고 망미동 지도를 제작해서 나눠줬다.

그는 지난해 ‘작은 책방 하고 싶어’라는 프로그램을 두 차례 마련해 작은 책방 운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창업 상담을 제공했다. 또 과학책 읽기와 토론 프로그램, 생태 스터디 모임 등 과학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다.

‘비온후’는 2층 커뮤니티 공간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열며 고객과 지역 주민에게 문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표적인 커뮤니티 행사는 모퉁이극장과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5차례 공동 개최한 ‘망미골목 책방영화제’. 이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원을 받은 ‘문화가 있는 날 동네책방 문화사랑방’ 사업의 하나였다. 비온후는 지원과 상관없이 올해도 책방영화제를 열 예정이다.

비온후는 지난해 5월 한 달간 ‘본 책 나들이’ 프로그램을 열었다. 가게나 서점을 운영하는 주민들이 헌책을 각자 종이상자에 들고 와서 판매하는 이벤트. SNS를 통해 공지했고 24개 팀이 참여했다. 권당 3000원씩 팔아서 한 달간 모은 돈으로 동네 가게에서 먹거리를 사와 파티를 했다.

‘한탸’ 김석화 대표는 문학, 인문학, 페미니즘 책을 읽는 모임을 열며 독서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작가회의 지원을 받아 글쓰기 모임도 격주로 열고 있다. 수요인문학 프로그램도 지난해 11월 개설했고, 이번 달부터 한나 아렌트를 함께 읽는 스터디 모임도 하고 있다.

‘해피북스데이’ 정유진 대표는 실크스크린 등 원데이 클래스, 티 클래스, 독서 모임 등을 열고 있다. 한쪽 벽면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 매달 새로운 기획전을 선보인다. 정 대표는 “서점이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비드’ 임은주 대표는 올해 성(性) 관련 워크숍을 구상 중이다. 지난해에는 여성들의 자서전 쓰기 특강, 요가 모임 등을 열었다. 임 대표는 “생생하고 유쾌한 성을 담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림책 전문 책방인 해피북스데이. 김상훈 기자 그림책 전문 책방인 해피북스데이. 김상훈 기자

■커뮤니티 활성화 위한 시도들

비온후는 ‘망미골목’ 네이밍 프로젝트를 통해 커뮤니티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이 일대 가게 앞에 ‘여기는 망미골목입니다’ 스티커를 붙이고 홍보하는 방식이다. 망미골목 내부 커뮤니티 강화를 위한 시도도 있다. 비온후는 이달부터 매달 마지막 목요일 오전에 독서모임 ‘망미골목 아침책상’을 열 계획이다. 망미골목에서 책방, 카페 등을 하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모임이다.

비온후 김철진 대표는 “서울 홍대앞 동네잡지 〈스트리트 H〉처럼 4개 면 소식지를 격월로 만들려고 한다. 1개 면은 동네 전체 지도를 넣고, 몇 개 가게를 돌아가면서 소개하는 방식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망미골목의 책방, 카페, 레스토랑, 숍 등 40여 명의 주인은 단톡방을 만들어서 커뮤니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디저트 카페 ‘스미다’와 비온후를 중심으로 이 동네 책방에서 책을 산 사람들이 다른 카페, 레스토랑, 꽃집, 공방 등에 가면 할인을 받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 책방을 거점으로 상생하는 커뮤니티 활성화에 찬성하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김철진 대표는 “망미골목에선 경쟁이 아닌 인간적이고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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