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1000회 완주 ‘나이 잊은’ 78세 마라토너
만 78세의 나이로 마라톤 풀코스인 42.195km를 무려 1000회 뛴 부산 사나이가 화제다.
한옥두 부산남해마라톤클럽 고문은 지난달 5일 부산 강서구 대저생태공원 부근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1000번째 완주했다. 전국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1000회 이상 뛴 사람은 13명 있지만, 한 고문보다 나이가 많은 이는 없다.
한옥두 씨 전국 최고령 기록
동아유리창호 창업한 기업가
아들 잃은 고통 잊기 위해 달려
세계 6대 메이저대회 등 참가
“든든한 힘 되어 준 가족에 감사”
한 고문은 “이 나이에 마라톤 풀코스를 1000회 달성한 것이 너무 기쁘다”며 “든든한 힘이 돼 준 가족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고문은 40대 후반인 1990년대 마라톤을 시작했다. 건강 관리 차원이었다. 42.195km를 완주한 것도 2004년 9월 철원 DMZ 대회가 처음이었다.
당시 한 고문은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경남 남해 출신인 그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부산에서 유리 대리점 직원으로 출발해 유리 소매점을 거쳐 1980년 동아유리창호(주)를 창업했다. 탁월한 경영수완으로 2000년대 들어서 연간 100억~2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굴지의 유리·창호 제작·시공업체로 성장했다. 당시 자산규모도 400억 원대가 넘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생산시설과 시공능력을 인정받아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롯데건설, SK건설, 포스코건설 등 상당수 1군 건설업체들로부터 협력사로 지정받기도 했다. 해운대 센텀파크 아파트와 오륙도 SK뷰 아파트 등에 설치된 유리가 그의 제품이다.
하지만 한 고문은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게 된다. 2007년 금융위기 당시 시설 확충을 위해 빌린 엔화가 갑자기 폭등하면서 90억 원이던 부채 규모가 무려 2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설상가상으로 한 고문의 독자였던 아들이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한 고문은 “그때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나. 사업을 도왔던 아들이 그렇게 된 게 모두 나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한 고문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고통스러운 나날은 계속됐다. 삶의 끝자락을 경험한 그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뛰었다. 그저 고통을 잊기 위해서 달렸다.
그렇게 시작된 한 고문의 달리기는 전국으로 이어졌다. 부산바다마라톤을 비롯해 춘천마라톤, 동아마라톤, 중앙마라톤 등 전국에서 열리는 대회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2018년에는 춘천마라톤대회 측으로부터 지난 10년간 완주를 기념하는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고문의 마라톤 열정은 전 세계로 향했다. 2017년 4월 보스턴마라톤대회(5시간4분09초)를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러시아 바이칼마라톤대회(5시간39분08초), 2018년 4월 파리 대회(5시간15분08초), 11월 뉴욕 대회(5시간34분59초), 2019년 3월 일본 동경 대회(5시간30분5초 ), 4월 런던 대회(5시간26분55) 등 세계 6대 메이저대회를 그는 모두 완주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마라톤 열정을 보이던 한 고문은 또 하나의 목표에 도전했다. 마라톤 풀코스 1000회 도전에 나선 것이다. 그는 각종 대회 참가와 함께 대저생태공원 일대를 매주 3차례 풀코스 완주했다. 그는 “한 번 뛰면 자정부터 시작해 오후 1시까지 13시간을 달린다. 풀코스를 두 번씩 뛰었다”고 말했다.
한 고문은 마라톤이 왜 힘들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그는 발톱이 빠지고 경련이 와 주저앉고 싶어도 마라톤은 삶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게 된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에 묵묵히 참고 달렸다고 했다.
한 고문은 “나의 목숨을 구해 준 게 마라톤이다. 체력이 되는 그날까지 계속 달릴 것이고, 마라톤과 늘 함께 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