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새벽 강과 저녁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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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신대 총장

인간 세상은 흉흉하고 얼어붙어 있지만, 시절은 온 천지에 온기가 가득한 봄이다. 세월은 인간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 혼자 흘러간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벌써 경칩이었다. 인간들에게서 봄은 입춘에서 시작하여 이맘때면 여름으로 가는 세시의 절반을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동물의 봄은 경칩에서 시작한다. 봄기운, 봄 내음, 봄 소리가 긴 겨울잠을 자고 있던 동물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여 은밀한 동면처에서 기어 나오게 하는 때이다. 실상 경칩에는 사람들도 겨울의 칩거에서 벗어나 들녘으로 나가 봄 일을 시작한다. 과거 농본사회에서 사람의 일이란 대개 흙일이었는데, 특히 이런 봄날에는 우선 겨울 동안 얼어붙어 굳어진 땅을 가는 기경 작업부터 했다. 주로 소 한 마리가 이끄는 쟁기질로 논밭을 가는 것은 소뿐만 아니라 농부들에게도 고된 일이었다.


세상 흉흉하나 어느새 완연한 봄기운

속세 명리 떠나 자연에 머문 선비들

독서하고, 고기 잡고, 농사일도 하고

궁색함 속 즐거움 찾던 기풍 그리워


시골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 일은 고단한 일이었지만, 우리네 가난한 선비들은 이런 궁색한 삶에서도 즐거움을 찾았고, 또 그것을 시문으로 노래하였다. 귀양살이 피곤한 삶이었지만 학문은 물론 음풍농월의 시감도 남달랐던 정약용이야말로 여덟 가지 즐거움(遷居八趣)을 찾았다. 바람 읊기(吟風), 달 노래하기(弄月), 구름 보기(看雲), 비 만나기(對雨), 산 오르기(登山), 물가에 가기(臨水), 꽃 찾기(訪花), 버드나무길 따라 걷기(隨柳) 등이다. 하지만 보통의 선비들은 그 절반인 네 가지 낙이면 족했다. 그래서 자고로 은일사락(隱逸四樂)이라 하면 농상어초(農桑漁樵) 즉 농사짓기, 누에치기, 고기 잡기, 나무하기를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낚시하기, 땔감 마련하기, 농사일하기, 책 읽기인 어초경독(漁樵耕讀)을 내세우곤 했다. 낮과 밤, 그리고 새벽과 저녁을 나누어 그들은 주경야독(晝耕夜讀), 신어모초(晨漁暮樵)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렇게 본래부터 초야에 묻혀 살던 처사(處士)들이나 환로(宦路)의 삶을 접고 낙향한 고사(高士)들은 어느 장소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각각의 즐거움을 찾고 누렸다. 집의 사랑방에서는 서생으로서 독경의 즐거움을, 들녘의 논밭에서는 농부로서 추수의 기쁨을, 마을 앞 강가에서는 어부로서 고기 잡는 일락을, 그리고 마을 뒷산에서는 초부(樵夫)로서 나무하는 재미를 누렸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여말 문인 이규보가 읊조렸듯이 이 한생(寒生)들은 ‘세상사에는 관심 없고, 특히 고기 잡고 나무하는 것에만 감흥이 일어나(無意世事 寓興漁樵)’ 신강어락(晨江漁樂)과 모산초락(暮山樵樂)의 즐거움을 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호를 초부(樵夫)나 초은(樵隱), 어은(漁隱)이나 어은재(漁隱齋)로 짓는 것은 물론, 아예 두 모습을 합하여 어초자(漁樵子)나 어초당(漁樵堂)으로 짓기도 하였다. 선비의 나라였던 조선에서는 속세의 명리를 떠나 빈촌에 한거(閑居)하며 어부와 초부로 살아간 이 촌유(村儒)들에 대해 시가는 물론 회화도 상당하다. 겸재 정선이나 이명욱 등의 그림들에서 대개 초부는 지게와 같이 있거나 허리춤에 도끼를 꽂고 나타나고, 어부는 망태를 가지거나 손에 낚싯대를 잡고 등장한다.

그저 하는 일만 보면 여느 농부와 진배없고, 행색은 영락없이 촌부의 모습이지만 이들은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라는 옛 경구대로 어부로서 바다같이 넓고 강처럼 깊은 지식을 추구하는 지자(知者)들이었고, 초부로서 산처럼 높은 덕을 추구하는 인자(仁者)들이었다. 아니, 이들은 초야에 묻혀 나물 캐고 고기 낚는 채산조수(採山釣水)를 낙으로 삼은 은자(隱者)들이요, 깊은 학문과 고결한 인품을 지닌 현자(賢者)들이었다. 비록 한양에서의 삶과 달리 고적한 삶이었지만 시골에 사는 그들에게는 이우의 시구처럼 ‘산구름하고 벗하다가 헤어지면 물구름이 친구가 되어 주었고(山雲送我水雲迎)’, 또 송규렴의 문장처럼 ‘밝은 달이 비치면 그를 손님으로 삼았던(明月來兮爲賓)’ 것이다.

명욕을 좇아 시끌벅적한 이 정치의 계절에 속세의 덧없는 짓을 버리고 산수 간에 유유자적하게 거한 옛 선비들이 그립다. 역병의 거센 바람으로 스산하고 우울한 이 시절, 새벽안개 자욱한 앞강을 찾고 저녁노을 번지는 뒷산을 오르는 평온한 옛 시골 풍경이 그립다. 사실 세상맛은 얼마나 시고 또 얼마나 신(世味兮多酸辛 多酸辛) 것인가? 봄기운이 감도는 들판, 봄 내음이 풍기는 언덕, 봄 소리로 요란한 강가가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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