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화도 일상이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오금아 문화부 공연예술팀장

#떨어져서함께(#unitimalontani).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이동 제한령으로 각자 집에 격리된 이탈리아인들이 참여하는 플래시몹의 해시태그다. 정해진 시간에 발코니에 나와 함께 노래하며 감염병 극복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자는 취지의 캠페인이다. 13일에는 이탈리아 국가 ‘마멜리의 찬가’를, 14일에는 밀라노 출신 가수 아드리아노 첼렌타노의 ‘아주로(Azzurro)’를 함께 불렀다. 누군가는 노래하고, 누군가는 휘파람을 분다. 아빠와 아이는 북을 두드린다. 할머니는 냄비 뚜껑을 들고 나와 박자를 맞춘다. 오디오 스피커 볼륨을 높여 반주에 동참하는 사람도 있다.

‘#unitimalontani’로 검색하면 개인이 펼치는 ‘발코니 음악회’ 동영상들도 만날 수 있다.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니 맞은편 발코니에 선 남자가 노래를 한다. 뒤이어 바이올린 연주자의 집에서 여자가 나와 화음을 더한다. 미니 공연이 끝난 뒤 각자의 집에서 공연을 감상한 이웃들은 박수와 함께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영상을 올린 이는 ‘멈춰버린 도시에 음악, 즐거움, 긍정적인 것들이 채워지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문화예술계 ‘빙하기’

이탈리아 국민 격리 상태서 함께 노래

고난 속 위로 전하는 ‘예술의 힘’ 느껴

경제 중심 한국, 문화 늘 뒤로 밀려나

간절한 일상 회복 문화예술 함께하길


비정상적인 침묵에 빠진 도시의 발코니에서 울려퍼지는 음악. 시민들은 서로에게 ‘우리는 함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한 이탈리아 언론은 이 노래가 바이러스와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행정·의료 기관 종사자들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했다. 타국의 발코니에서 퍼지는 음악을 들으니 바다 건너까지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예술의 힘’이 느껴지는 것 같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문화예술계도 얼어붙었다.감염병 확산의 고리를 끊기 위해 실천해야 할 ‘사회적 거리두기’로 문화예술 거의 모든 분야가 ‘일시 중지’ 상태에 들어갔다. 음악·무용·연극 등 공연이나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미술 작가들이 1~2년씩 공들인 전시는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막을 내린다. 영화 촬영장부터 극장까지 이 몹쓸 감염병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다.

소속단체 없이 활동하는 연주자, 배우, 독립기획자와 소규모 예술공간 운영자들은 더 어려워졌다. 지역의 한 연극인은 “모든 공연이 취소되면서 거의 다 무직 상태로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코로나19 대응 공연분야 긴급 지원 방안’을 발표했지만 현장에서는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 특별 융자도 결국 빚이고, 창작 디딤돌 지원도 가뭄에 잠깐의 단비 수준에 그친다는 반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전 분야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문화를 살리는 일은 늘 후순위로 밀려난다. 특히 사회 시스템의 중심이 경제에 맞춰져 있는 한국에서 문화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한국민예총이 “정부의 코로나19 추경안 11조 7천여 억원 안에 예술가와 예술 활동에 대한 대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비상시 예술가와 예술활동 지원 매뉴얼’ 같은 근본 대책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상이 멈춰 버렸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이번 사태에 대해 한 미술가는 “현대인이 감염병과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고 말한다. SNS에는 코로나19가 하루 빨리 종식되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글들이 올라온다.

지금의 사태를 예언한 듯한 내용으로 재조명 받는 영화 ‘컨테이젼’의 마지막이 떠오른다. 첫 감염자의 남편인 토마스 엠호프(맷 데이먼 분)가 감염에서 지켜낸 딸을 위해 집에서 고등학교 졸업 파티를 열어준다. 딸은 드레스를 갖춰 입고 백신 접종 확인 팔찌를 차고 온 남자친구와 춤을 춘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시작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에 문화가 있었다.

평범하게 출근하기, 퇴근 후 가벼운 술 한잔, 카페에서 수다를 떨거나 책읽기, 가족과 영화관 가기, 친구와 브런치 후 전시 감상, 연인과의 공연장 데이트, 취미로 춤 배우기…. 사람들이 되돌리고 싶은 다양한 일상의 풍경에 문화와 예술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문화도 일상이다. #코로나극복 #문화와함께.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