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하는 고개와 길] 675. 성북고개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고난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아리랑고개’
/ 동길산 시인

성북고개 전경. 부산진성의 북쪽 성북고개는 이름만 남은 옛 고개가 아니라 시내버스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 다니는 지금의 부산 고개다. 동구 범일동과 좌천동을 아우르는 산복도로에 있다. 박정화 사진가 제공 성북고개 전경. 부산진성의 북쪽 성북고개는 이름만 남은 옛 고개가 아니라 시내버스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 다니는 지금의 부산 고개다. 동구 범일동과 좌천동을 아우르는 산복도로에 있다. 박정화 사진가 제공

옛날 사람은 시원시원했다. 복잡하지 않았다. 지명 짓는 것도 그랬다. 성의 동쪽이면 성동, 서쪽이면 성서였다. 남쪽, 북쪽도 마찬가지였다. 성동 성서 성남 성북. 이들은 다 어디 지명일까. 누구는 서울 성동구를 떠올리고 누구는 경기 성남시를 떠올리겠다. 물론 그것도 맞지만 거기만 있진 않았다. 조선 팔도 곳곳에 성이 있었으니 조선 팔도 곳곳이 성동 성서 성남 성북이었다.


부산진성 북쪽 좌천동~범일동 고갯길

주민 대부분 한국전쟁 실향민·외지인

산복도로·성북시장·고무신 공장 번성

지금도 22번 버스 누비는 현재형 고개

북카페·만화박물관 등 ‘동화 나라’변신


60년 전통을 내세우는 성북고개 성북시장. ‘성북전통시장 웹툰 이바구길’ 그림지도. 범일동 일대 신발 공장에서 성북고개로 이어지던 골목길(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60년 전통을 내세우는 성북고개 성북시장. ‘성북전통시장 웹툰 이바구길’ 그림지도. 범일동 일대 신발 공장에서 성북고개로 이어지던 골목길(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부산에도 성이 많았다. 부산은 섬나라 왜를 가까이 둔 국경도시였다. 금정산성이 있었고 동래읍성, 좌수영성, 부산진성, 다대진성, 기장읍성 등이 있었다. 따라서 곳곳이 성동 성서 성남 성북이었다. 공식적으로 쓰는 행정지명에선 사라졌어도 그런 지명이 있었다는 흔적은 꽤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학교 명칭이다. 성서초등학교, 성동중학교가 그 예다.

성북고개 역시 그런 흔적의 하나다. 성북고개? 부산에 그런 고개가 있었나 갸우뚱대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도 엄연히 존재한다. 못 믿겠으면 시내를 달리는 22번 버스 앞머리 전광판을 유심히 보면 된다. 전광판엔 ‘용호동-성북고개’ 문구가 수시로 번쩍번쩍 뜬다. 성북고개는 이름만 남은 옛 고개가 아니라 시내버스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 다니는 현재의 부산 고개다.

“이번 정류장은 못골시장입니다. 다음은 대연고개입니다.” 성북고개 가는 22번 버스 안. 22번은 성북고개 말고도 고개를 두 군데 더 거친다. 안내 방송대로 대연고개를 거치고 백운포고개를 거친다. 버스 하나가 세 군데 고개를 경유할 정도니, 부산 고개는 얼마나 많을지? 22번 버스와 노선이 겹치는 87번 버스도 종점이 고개다. 비석마을로 유명한 아미동 까치고개가 바로 거기다. 부산의 고개는 이렇게 펄펄 살아 숨 쉰다.

평지를 벗어나 고갯길 접어들자 버스가 숨을 헐떡인다.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복도로를 이리 꺾고 저리 꺾으며 안간힘을 쓴다. 내다보는 승객조차 되다. 성북고개 정류장 닿기 직전 왼편에 카페가 보인다. 아담하다. 2층은 북카페다. 그런데 상호가 좀 특이하다. 상호에 고개가 들어갔는데 성북고개카페가 아니라 아리랑고개카페다. 왜 그럴까. 아리랑고개는 성북고개의 다른 이름. ‘아리랑 아라리요’를 몇 번이나 되뇌며 넘어야 하던 고된 고개가 여기 성북고개였다.

“말도 마이소. 택시 잡아타고 아리랑고개 가자고 하면 ‘안 가요! 내려요!’ 그랬다니까요.” 성북고개 정류장 맞은편은 성북시장. 60년 전통을 표방한다. ‘성북생선’ 주인아주머니는 1943년생. 이제 쉰인 막내아들 낳고 나서 장사를 시작했다. 버스도 숨이 턱턱 차는 이 가파른 고개를 막내는 업고 큰애는 걸리고 고관에서 걸어 다녔고 초량에서 걸어 다녔다. 어쩌다 택시라도 타면 이내 내려야 했다. ‘돌뺑이’ 튀는 고갯길은 택시기사조차 손사래 칠 만큼 험했다.

그때도 버스는 다녔다. 마이크로 86번 ‘조그마한’ 버스가 유일했다. 그나마도 돈 아끼느라 바쁜 일 아니면 안 탔다. 사람은 넘쳐났다. 고개에서 내려다보면 교통부 쪽에서 머리가 새카맣게 올라왔다. 고무신공장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 삼화고무, 국제고무, 동양고무 천지였다. 삼화고무는 범천동, 국제고무는 범일동, 동양고무는 초량에 있을 때였다. 초등학교는 학생이 얼마나 많았던지 오전반, 오후반 나눴고 운동회 역시 두 번 나눠서 했다.

“말도 못 하게 많이 살았어.” 생선가게 아주머니 말대로 ‘새카만 머리가 파도칠 정도’로 성북고개는 사람이 북적댔다. 성북고개 있는 곳은 산복도로. 한국전쟁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산복도로가 생겼으니 이곳 주민 대부분은 이북 실향민이었고 외지인이었다. 그들을 바라보고 고무신공장이 섰고 시장이 섰으며 그들의 자녀를 바라보고 학교가 섰다. 성북고개는, 그리고 성북시장은 고난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의 현장이며 어떠한 고난에도 기어이 일어서는 인간승리의 표상이다.

성북고개는 고개일까 마을일까. 둘 다 맞다. 고개인가 싶으면 마을이고 마을인가 싶으면 고개다. 버스정류장 ‘남양참기름’ 일흔셋 아주머니는 ‘여(기)가 모두 성북고개’라 그러고 ‘성북생선’ 아주머니는 버스 다니는 길도 시장도 모두 성북고개라 그런다. 그러므로 성북고개는 고갯길보다는 가파른 고개의 끝, 고갯마루 마을의 의미가 강하다. 성북고개는 범일동일까 좌천동일까. 역시 둘 다 맞다. 시장 이쪽 아래는 범일초등학교가 있는 범일동이고 저쪽 아래는 좌천초등학교가 있었던 좌천동이다.

‘동구 좌천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 부산시가 운용하는 디지털 백과사전에 실린 부산진성 설명이다. 지금은 부산진성 아들성이라 불리는 자성대만 범일동에 남아 있다. 성북은 좌천동 부산진성 북쪽을 뜻한다. 수군이 지켰던 부산진성은 검붉은 성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적에 분연히 맞서면서 흘린 선혈이 성을 적셨다. 좌천동 정공단은 그때 그 선혈을 추모하는 제단이다. 당시 노약자며 아녀자는 피눈물 머금고 뒷산인 증산으로 피신했을 테고 피신처 하나가 성의 북쪽, 여기 성북고개였으리라.

‘1960 성북전통시장 웹툰 이바구길.’ 성북고개가, 그리고 성북시장이 산뜻해졌다. 젊은 작가가 재능을 모아 고개며 시장이 동화 나라로 변신했다. 시장 아치 상징물이며 점포 간판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북카페와 역사탐방 문화체험장이 생겼고, 포토존과 만화박물관은 볼수록 앙증맞다. 시장 안쪽은 부산에서 가장 고지대이지 싶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내려다보는 부산항 풍광은 여기가 도서관인지 전망대인지 헷갈리게 한다. 도서관도 시장을 빼닮아 이쪽은 좌천동이고 저쪽은 범일동이다.


▶가는 길=시내버스 22, 86, 87, 186번을 타고 성북고개에서 내리면 된다. 성북시장, 증산공원, 동구도서관을 둘러보고 계단으로 내려오거나 일망무제 산복도로를 걸어도 좋다. 계단도 도로도 좀 아슬아슬하긴 하다. dgs1116@hanmail.net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