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된 장난감 “이건 무조건 사야지~”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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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세상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실물 크기 피겨.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실물 크기 피겨.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는 보물창고처럼 느껴졌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완구점이기도 했다. 한창 유행하던 우뢰매 시리즈부터 로보트 태권V와 마징가 조립 세트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조립 세트 1개를 사기 위해 아빠 구두닦기, 엄마 심부름하기 등 선행 점수를 모으느라 진땀을 뺀 기억도 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새끼, 기죽으면 안 되지”라며 아이에게 장난감을 선뜻 사주는 요즘 분위기에선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일 것 같다. 그래서일까. 7080세대는 로봇 장난감에 대한 애잔한 향수가 있고 그 마음이 어른이 된 지금 아트토이, 피겨(피규어·유명 인사나 영화·만화의 등장인물을 본떠 플라스틱, 금속, 밀랍 따위로 제작한 물건, 정밀 모형) 수집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트 토이’로 진화한 아이들의 장난감

3040세대 열광, 5060세대도 기웃

열정적 수집 취미 넘어 직업으로 발전

고전 영화부터 마블 시리즈까지

추억 담아 완성도 높인 작품 대거 등장

레전드급 마니아, 애장품 박물관 자랑

파티드 갤러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아이언맨 헬멧과 인피니티 건틀렛. 파티드 갤러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아이언맨 헬멧과 인피니티 건틀렛.
요즘 인기가 많은 조커 피겨. 요즘 인기가 많은 조커 피겨.

■열정적인 취미, 전문가로 성장하다!

한때 수십만 원짜리 인형을 사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피겨 수집가를 ‘아이 같은 어른’이라고 놀리던 시절도 있었다.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며 부부싸움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유치하다’는 핀잔이 싫어 취미를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같은 취미를 가진 온라인 동호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피겨에 관한 정보와 애정을 자랑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열성적인 취미가 전문 직업으로 발전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과 열정의 정도를 의미하는 ‘덕후력’은 전문가의 시대에 특별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테이스테셔널(Tastessional)’의 시대에서 피겨는 가장 각광받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국내에서 피겨를 취급하는 업체들은 급속히 늘어났다. 그중 톱3라고 불리는 선두그룹(리딩컴퍼니)에 부산기업, 피규어갤러리가 있다. 피규어갤러리의 이상진 대표 역시 피겨를 열정적으로 모으던 사람에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피겨 전문가로 거듭난 사람이다.

“원래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어요. 80년대 말 ‘프레데터’라는 영화를 봤는데 괴물의 형태와 디자인이 놀랍도록 완성도가 높았어요. 프레데터에 대한 강렬한 충격을 가지고 있던 차에 괴물을 그대로 묘사한 피겨를 만난 거죠. 제가 처음 산 피겨인데 정말 너무 좋은 거예요.”

그걸 시작으로 귀한 피겨를 사기 위해 일본으로 갈 정도였고 한정판을 사기 위해 가게 앞에서 줄을 서기도 했다. 이 대표는 피겨에 대한 전문 지식과 열정을 바탕으로 몇 개의 대학에서 ‘실용 조각’이라는 강의를 개설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대박이 터질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여러 곳에서 강의 초청을 많이 받았죠. 강의가 바빠지니 제가 정작 좋아하는 걸 할 수가 없더군요. 내가 좋아하는 거로 승부를 내고 싶어 강의를 접고 피겨 전문회사를 차렸죠. ”

국내에 피겨를 취급하는 회사는 많지만, 출시 전 예약금을 받고 사라지는 일명 ‘먹튀’ 사건이 많았다. 마니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대표는 신뢰를 바탕으로 단시간에 국내 피겨 시장의 선두권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단다.


■고전 영화부터 마블 시리즈까지

현재 국내 피겨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마블 영화 시리즈의 캐릭터들이다. 어벤져스 히어로들뿐만 아니라 악당들, 단역 캐릭터까지 마블 등장 피겨들은 모두 인기가 많다. 특히 한정판, 연속 시리즈로 나오는 피겨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무조건 확보해야 할 대상이란다. 그중 부동의 1위는 아이언맨이다.

아이언맨 영화에서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 수트를 진화시켰던 것처럼 피겨 역시 모든 버전의 아이언맨이 나와 있다. 피겨 마니아들 사이에선 버전별로 부르는 애칭이 다르고 색감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있다. 아이언맨은 축소 크기의 피겨뿐만 아니라 실제 사람 크기의 전신상과 반신상, 아이언맨 헬멧까지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 캐릭터 피겨는 어린이 대상의 완구와 달리 주로 성인들이 구입하는 아트 토이인데, 아이언맨은 어린이부터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것도 특징이다. 마블 시리즈 이전에는 스타워즈가 인기가 많았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군단을 수집하느라 고생한 이들이 많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허지웅 작가가 스타워즈 피겨에 빠져 행복해하는 모습이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수 이승환과 탤런트 심형탁, 개그맨 이상훈은 피겨 마니아들 사이에 레전드급으로 불린다. 이상훈은 자신이 그동안 모은 피겨로 박물관을 열었고 피겨를 소재로 유튜브 영상도 올리고 있다.

마블, 스타워즈 외에도 영화 피겨로는 로보캅 터미네이터 쥬라기공원 배트맨 반지의 제왕 조커의 등장인물들이 꾸준히 인기 있다.

피겨 수집가들은 30~40대가 가장 많으며 50대들도 꽤 존재한다. 이들은 왜 피겨에 열광하는 걸까.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의 감동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좋았던 기억, 경험을 피겨라는 실제 존재하는 상품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릴 적 장난감을 맘껏 사지 못했던 세대가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며 피겨 수집이라는 취미로 변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완성도 높은 피겨는 일종의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미학적인 측면에서 피겨에 빠진 이들도 있다. 실제로 피겨는 ‘아트 토이’로 불리며 아트마켓의 한 영역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테크적인 측면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인기 피겨는 처음 출시된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온라인 경매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한정판 피겨의 경우 전 세계 수집가들이 찾다 보니 가격이 몇 배 오르기도 한다.

피겨가 인기를 끌며 피겨를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는 쇼케이스 분야가 새로운 유망 업종으로 뜨고 있으며 한국 피겨 작가들의 실력이 뛰어나 세계적인 피겨 제작 회사에서 얼굴 작업은 한국인 작가들에게 맡긴다는 점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글·사진=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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