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크레바스 시의 울림으로 메우겠다는 시인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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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다형 시집 ‘사과상자의 이설’

8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사과상자의 이설〉(상상인)을 낸 전다형(사진·62) 시인. 그의 ‘서시’는 엉뚱하다. 앞이 아니라 맨 뒤에 놓였고 시인 자신의 피가 아닌 ‘그대 피가 잉크다//네 피를 찍어 치명적 시를 쓴다’면서 독자에게 ‘맹독의 화살’을 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한 줄 맹독의 문장/일촉즉발의 독화살촉/네 푸른 심장이 과녁이다’(112쪽).

언어에 어떻게 ‘한 줄 맹독’, 삶의 깊은 실체를 담을 수 있을까. 언어는 참 다루기 어려운 물건이다. 그런데 그는 이번 시집에서 언어와 많이 놀고 있다. ‘부추기는 달콤당/홀라당 발라당 세 치 혀가 놀아났다’(30쪽)며 발랄하게 혈당 얘기를 하는 부분 등 그 예는 많다.

“김준오 선생의 〈시론〉 책을 너덜너덜하도록 봤어요.” 몇 년간 대학원을 다닌 공부의 소산처럼 보이는 ‘언어유희’를 두고 그는 “언어를 진동시키며 ‘말의 맥놀이’를 겨냥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뭇 삶에는 깊은 균열의 크레바스가 있는데 그것을 내 시의 진동·울림으로 메울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예요.” 그럴 때 ‘시는 앎이고//구원이며//힘이고//포기이자//춤이다’(22쪽)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갓된 시’로 삶의 크레바스를 메우겠다는 것은 시에 걸고 있는 그의 욕망이 크다는 것이다. 저 욕망의 조절이 문제다. 요컨대 맹독의 화살은 시인 자신에게 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삶과 시의 지난한 과정을 말하고 있다. ‘한 모금 물을 찾아/몇 만 킬로 사막을 넘는 낙타//수천수만 주름을/접었다 펼치는 애벌레//하루에도 칠십만 번/자기를 갈아엎는 파도//제 몸 구석구석 후벼 파고 울어야 한다’(36~37쪽).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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