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선박 지분 투자로 선사 체질 강화해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코로나 사태로 해운업계가 긴장하며 대책 마련에 부산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큰 적자가 났다는 소식은 없다. 원양해운업계가 자발적으로 공급량을 줄이는 ‘계선’과 같은 선제 조치를 했기 때문이다. 계선 조치는 선박을 운항하지 않는 것이다. 줄어든 운송 수요만큼 선박 공급량이 줄어 운임은 현상대로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선 조치는 해운선사가 수입이 없어도 금융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만든다. 해운사들은 용선한 선박에 대한 용선료, 대출로 산 선박에 대한 대출금을 꼬박꼬박 지급해야 한다. 손님이 없어서 문을 닫았지만, 임대료는 지급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코로나 사태로 해운업계 수입 감소

용선료·대출금 여전해 어려움 가중

일본처럼 선박공유제도 도입 검토

소유·운항 분리, 불황 견뎌 나가야


우리나라 해운선사는 대개 국적 취득 조건부로 용선한 선박을 보유해 대출금 상환 부담이 크다. 해운선사들은 선가의 10%만 내고 90%를 은행으로부터 빌려서 선박을 건조한다. 20년 동안 선가를 지급하고 나면 소유권을 취득하는 형식이다. 1100억 원짜리 선박을 건조하면서 1000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고 하면, 20년 동안 평균 연 50억 원을 갚아 나가야 한다. 이러한 선박을 20척 가지고 있다면 연간 1000억 원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안고 있다. 계선된 선박도 상당한 금액을 은행에 지급해야 한다. 현재 컨테이너 선박의 전 세계적인 평균 계선율이 15% 정도로 치솟았다. 수입이 전혀 없는 선박이라도 막대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해운선사들의 선박금융은 많을 때는 30조 원에 달했으나 현재 5조 원 규모로, 원리금 상환액이 연간 1조 4000억 원에 이른다.

현행 국내 선박금융의 구조를 소유와 운항이 분리되는 일본 같이 변경한다면 선사들은 운항만 하고 상환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된다. 일본은 2300척의 운항 선박 중 1000여 척은 선주사가 따로 있는 경우이다. NYK, K-Line 등 대형선사가 운항하는 선박의 30%는 선주사로부터 빌려온 선박이다. 원리금 상환 부담은 선주사의 몫이기 때문에 운항사는 타격을 작게 받게 된다. 이 같은 일본의 선대구조는 일본이 불황에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해준다.

해방 이후 가난했던 우리 선사들은 선박을 보유하는 방편으로 국적취득 조건부 나용선(BBCHP) 제도를 도입해 오늘날까지도 대세를 차지하고 있다. 선가를 모두 지급하고 선박을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소유권을 유보하면서 운항하여 버는 운송료로 선가를 조금씩 갚아 20년이 지나면 완납하여 소유권을 취득하는 형태이다. 이 제도하에서 선사들은 단독 소유자인 동시에 운항사가 된다. 선가가 오르면 선사들이 큰 이윤을 얻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제도는 불경기에 원리금 상환이 선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제 보완이 필요하다. 선가의 자기 부담을 30%, 은행 대출을 70%로 제한하는 등 선박금융구조에 대한 변화가 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예를 들어 척당 월 50억 원의 원리금 상환액이 20%가 줄어들어 40억 원이 된다. 재무 능력이 없는 선사들이 어떻게 20%를 채울 것인가? 선박공유제도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해운선사가 선가의 10%, 화주 기업이 10%, 조선소, 부산시 혹은 항만공사 등이 10%를 투자하여 선박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면 해운선사의 대출 비중은 기존 선가의 90%에서 70%로 줄어들게 된다. 지금 당장 선박에 대한 지분투자는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를 찾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구원투수로 한국해양진흥공사나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는 또한 해운업계의 오랜 화두인 선·화주 상생의 방안이 될 수 있다. 화주 기업들은 해상운송수단을 가지지 않고, 해운선사들이 힘겹게 장만한 선박을 활용한다. 화주 기업이 만든 물류 자회사는 포장, 통관, 하역, 운송, 창고 등의 개별 업무를 하나로 통합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운선사들의 선박 운항 제공은 물류회사들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나아가 우리 정기선사들이 안정적이고 저렴한 선박 운항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화주들에게도 유리하다.

부정기선으로 운송하는 석탄, 철광석은 해운선사에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장기운송계약으로 표준화되어 있다. 화주들과 선사들이 서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런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정기선의 경우도 이렇게 상생이 되어야 한다. 화주 기업들은 해운선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자신들의 종합물류 서비스에 필수 불가결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화주 기업이 해운선사가 제공하는 선박 서비스를 활용하여 얻는 이익의 상당 부분을 선사가 소유하는 선박에 투자하면 좋은 상생 방안이 될 것이다. 선주사 육성과 해운 관련 참여자들의 선박에 대한 지분투자는 우리 해운선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해 불황을 더 잘 견디게 해 줄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