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미군 철수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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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조선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그 조약의 첫 번째 조항이 ‘제3국이 한쪽을 침략하는 등 부당 행위를 할 때 다른 한쪽은 조정에 나서는 등 반드시 서로 도움을 줘야 한다’였다. 고종은 이를 철석같이 믿었다. 20여 년 뒤 일제의 늑탈 행위가 거세지자 고종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외면했고, 사실상 조약을 파기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미국 루스벨트 행정부는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상태였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점령을 묵인하는 조약이었다. 미국이 조선을 배신했던 것이다.

최근 독일에서의 미군 감축 문제와 맞물려 우리나라에서도 미군 철수가 주요 화제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독일이 방위비를 더 지불할 때까지 미군의 절반을 줄일 것”이라며 “이는 독일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 14일에는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동맹이고 뭐고 돈 안되면 철수하겠다는 것이다.

불똥은 주한미군에도 튈 것 같다.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에 왜 많은 병력이 주둔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단다. 그가 한국에 방위비 인상 압박을 대놓고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엄포는 그저 엄포에 그칠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의외로 주한미군 철수는 과거 심심찮게 제기됐고 또 부분적으로 실행되기도 했다.

닉슨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반대에도 1970년 미 7사단을 일방적으로 철수했고, 카터 전 대통령도 비록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1976년 대선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부시 행정부는 1992년 2사단 등을 철수함으로써 주한미군은 3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2018년 4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미일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일본 총리와 주한미군 철수를 논의했다고 한다. 당시 아베 총리는 반대했다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다. 미국이 일본에게 군사 무장을 허용하면서 동아시아 방위 임무를 맡기고 물러날 수도 있다. 그 경우 ‘가쓰라-태프트’ 밀약 같은 상황이 다시 연출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우리 땅에 미군이 없는 세상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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