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조 대박’에도 연말 8000명 실직… 거제는 지금 ‘보릿고개’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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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의 한 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 최근 일감이 줄면서 입주 기업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고, 작업장은 텅 비었다. 독자 제공 경남 거제의 한 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 최근 일감이 줄면서 입주 기업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고, 작업장은 텅 비었다. 독자 제공

“카타르 소식에 밖은 떠들썩하지만, 속은 딴판입니다. 사외협력사 한 곳 걸러 한 곳이 일감이 없어 문 닫았고, 몇 달째 개점휴업 상태인 작업장이 부지기수예요. 최악의 고용 한파가 덮친 2016년 직전이 딱 이랬죠. 연말까지 협력사에서만 최소 5000~6000명이 실업자 신세가 될 거란 전망이 결코 허언이 아닙니다.”

카타르발 23조 원 규모 LNG 운반선 프로젝트 수주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후끈 달아올랐던 ‘조선 도시’ 경남 거제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 카타르 효과가 미치려면 최소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데, 코로나19 장기화와 국제유가 폭락 여파로 수주 공백이 길어지면서 정작 현장에선 일감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잔칫상은커녕 ‘수주 절벽’에 이은 ‘고용 재난’을 걱정해야 하는 조선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카타르 수주’ 수혜에 최소 1년

수주 공백 장기화로 일감 바닥

협력사 폐업·인력 감축 잇따라

“숙련공 유출 일감 늘면 인력난”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469만 CGT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나 줄었다. 코로나19와 미·중 무역갈등에 세계 물동량이 급감하고 유가 폭락으로 해양플랜트 발주도 중단된 탓이다. 같은 기간 한국 조선 3사의 수주 실적도 90만 CGT, 32척으로 애초 목표의 10% 남짓에 그쳤다.

다행히 지난달 카타르발 ‘잭팟’이 터졌지만 당장 수혜를 기대하긴 어렵다. 카타르 국영 석유사인 카타르페트롤리엄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과 LNG 운반선 100척 발주 권리를 보장하는 ‘약정서’를 체결한 상태다. 이는 조선소의 건조공간(슬롯)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로 본계약까지는 아직 수개월이 남았다.

발주 이후에도 설계, 자재 확보 기간 등을 고려하면 2022년은 돼야 조업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부터 최소 1년 6개월 이상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저유가 여파로 LNG 시장이 침체라 발주가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또 최종 단계에서 발주량이 슬롯 계약에 못 미칠 수도 있다. 카타르는 2004년에도 90척 규모의 LNG선 슬롯 계약을 했다가, 53척만 발주했다.

상대적으로 준비기간이 짧은 일반 상선도 마찬가지다. 지금 건조 계약을 체결해도 현장에 일감이 풀리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이 필요하다. 이미 일감 절벽은 현실화해 협력사를 좀먹기 시작했다. 거제지역 한 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의 경우, 지난해 말 400~500명에 달했던 인력이 양대 조선소 작업 물량이 줄면서 최근 70~8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입주 기업 중 절반가량은 아예 문을 닫았다. 공단 관계자는 “구조조정 칼바람이 몰아쳤던 2016년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경남 거제의 한 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 최근 일감이 줄면서 입주 기업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고, 작업장은 텅 비었다. 독자 제공 경남 거제의 한 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 최근 일감이 줄면서 입주 기업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고, 작업장은 텅 비었다. 독자 제공

업계는 상반기에만 3000여 명이 실직했고, 연말을 전후해 최대 8000명여 명이 추가로 현장을 떠나야 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숙련공이 대거 유출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기술경쟁력 저하는 물론, 정작 일감이 들어왔을 때 일할 사람이 없게 된다. 실제로 2016년 고강도 구조조정을 강행했던 거제지역 조선업계는 2018년을 기점으로 수주가 늘면서 ‘인력난’ 역풍을 맞았다.

2015년 12월 거제 양대 조선소 사내·외 협력사를 포함해 9만 2000여 명에 달했던 조선업 종사자 수는 구조조정을 거치며 2018년 말 4만 9000여 명까지 줄었다. 불황을 거치며 임금 수준이 크게 낮아진 데다 언제든 구조조정 칼바람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쫓겨난 노동자가 돌아오지 않아서다. 이후 일감이 늘면서 올 3월 기준 5만 8000여 명으로 겨우 회복했는데, 지금 추세라면 다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거제시도 비상이다. 지역경제의 70% 이상을 조선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 대량 실업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역 경제에 치명적이다. 이에 거제시는 조선업계가 카타르 수주 효과를 체감할 2022년까지 버틸 수 있도록 돕는 ‘거제형 조선업 고용유지 모델’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올해 남은 가장 큰 숙제가 조선 노동자 고용 안정”이라며 “정부와 지방정부, 노사가 함께하는 상생·공존협의체를 구성해 전방위적 지원을 끌어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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