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달밤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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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신대 총장

구약의 전도자는 인생은 해 아래 산다고 읊조렸지만, 인생은 달 아래도 산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점차 작렬하는 햇빛을 쐬며 다들 ‘해 아래의 존재’임을 의식하게 되지만, 달빛은 망각의 강 레테로 떠나보낸 지 오래다. 첨단기술 개발로 기고만장해진 인류는 ‘달 착륙’이니 ‘달 여행’이니 하면서 줄곧 달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지만, 그래도 그것은 우리네 일상과는 먼 소식이었다. 달로 봐서도 자기를 마치 정복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아 여간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달은 문명화된 현대에 잊힌 존재라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은은한 달빛을 무색하게 하는 강렬한 인공의 빛들, 그리고 옛적의 그 ‘긴긴밤’을 짧다고 느끼게 하는 밀폐된 공간 속의 온갖 재미와 욕망의 향연들이 달빛의 존재에 대한 의식마저 사라지게 한 것이다. 잊혀짐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지만, 특히 해만 쫓는 야속한 지구를 평생 따라다니며 일편단심 짝사랑하던 달로서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상대의 무관심이 얼마나 아프게 다가왔을까.


달은 자고로 사랑과 영감의 원천

문명화된 현대, 점점 망각의 존재로

고된 일상 위로하는 치유의 힘과

영원을 마주하는 에너지 발견하길


옛적엔 달빛은 공부나 연애하는 이들에게는 은인이요, 달밤은 글쟁이, 붓쟁이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주경야독하던 한촌(寒村) 선비들에게, 호롱불 기름이 동나면 반딧불이나 눈빛도 아쉬운 판에, 중천에 둥실 떠서 창호지 문을 뚫고 들어오는 환한 달빛이 얼마나 반가웠으랴.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에서 비밀스러운 남녀의 만남을 지켜보는 초승달은 어떠하며, 소금을 흩뿌린 듯 메밀꽃이 하얗게 핀 달밤 풍경을 그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또 어떤가.

동서양 회화사에는 달밤 그림들이 많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아르힙 쿠인지의 작품에는 고적하고 스산한 러시아의 달밤이 담겨 있다. 대표적인 ‘달밤 풍경’은 고요한 드네프르강과 그 위에 뜬 초승달, 푸른 달빛이 쏟아지는 언덕과 배회하는 짐승들, 이 모든 것이 무서우리만큼 적막하고 황량한 달밤을 보여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갔을 때, 그의 흔적이 그리워 지금은 작은 박물관으로 변신한 그의 옛집을 찾았다. 허름한 연립 주택의 2층에 있던 그 옛집은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돼 보였다. 아쉬움으로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는데, 어디선가 나온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주인을 대신해 낯선 이방인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그 눈을 바라보니 쿠인지가 그린 푸른 러시아의 달밤이 들어있었다. 쿠인지와 같은 시대를 살다가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앙리 루소도 달밤을 주 소재로 삼고 있다. 하지만 쿠인지와 달리 그의 작품에는 초승달 대신 둥근 보름달이 떠 있고, 원시림 속의 동심과 몽환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열대림의 달밤에 뱀들을 움직이는 피리 부는 여인, 달빛 환한 언덕바지에 잠든 집시여인에게 길동무처럼 다가온 사자, 그리고 늦가을 밤에 산 넘어 축제 가는 ‘카니발의 저녁’ 등이 그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중천에 둥실 떠 있는 보름달, 나뭇가지에 걸린 조각구름들, 앙상한 가지들이 하늘 높게 치솟은 나목들, 그리고 그 아래 고깔모자에 고운 옷차림의 다정한 연인들은 가히 한편의 동화 같은 장면이다.

달밤은 작가들에게만 아니라, 그 아래 사는 누구에게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유학 시절 연말이면 남독일의 조용한 소읍을 찾곤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마을 옆으로 흐르는 이자르강 강가를 거닐었다. 카르벤달 산 위로 둥근 달이 솟아오르면 강둑이라도 산책하기엔 무리가 없다. 바람을 따라 달빛이 강에 휘휘 푸른 물감을 뿌렸고, 강물은 노래하듯 도란도란 말을 걸어왔다. 모차르트와 슈만의 달밤 노래가 없으면 어떠랴. 그렇게 달빛 맞으며 하염없이 걷노라면 어느새 적막감, 쓸쓸함, 외로움은 사라지고 평온함, 신비감, 황홀감이 전신을 소스라치게 휘감는다. 그리고 덧없는 시간 세상 너머 영원의 세계도 꿈꾸어 본다.

달밤 산책의 묘미로 영화를 누렸던 이들도 해 아래 가진 것들로 만족하지 못하고 달빛 아래의 소요를 낙으로 삼았다. ‘달의 왕(Mond konig)’이라는 별칭까지 지녔던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2세가 대표적이다. 노이슈반스타인 성은 그가 홀로 지내려고 지은 성이었다. 사랑했던 사촌누이 소피 샬롯데와 파혼하고 평생 혼자 지낸 그는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밤 산책을 나서곤 했다. 성 뒤편의 출렁다리 마리엔교를 넘어 들판으로 나가 휘영청 쏟아지던 푸른 달빛을 온몸으로 흠뻑 맞고 돌아와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때 그 하늘이나 지금 이 하늘이나, 세상의 달밤은 한결같이 황홀하다. 삭막한 세상살이, 피곤한 일상에 바로 머리 위에 떠 있는 달마저 놓쳐 버린다면 우리의 정서는 얼마나 메마르고 삶은 피폐해질까. 달 밝은 밤, 밖으로 나갈 여유가 없다면 불을 끄고 창문이라도 열어보자. 휘영청 푸른 달빛이 방 안으로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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