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은 ‘공(功)’ 백선엽은 ‘과(過)’… 與 ‘조문 정국’ 내편 감싸기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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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더불어민주당 명의의 고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더불어민주당 명의의 고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채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6·25 전쟁 영웅이지만 과거 친일 행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백선엽 장군의 잇단 사망으로 조성된 ‘조문 정국’에서 여야 간 극심한 진영 대결이 재연되는 양상이다. 이를 두고 여야 모두 조문 정국을 정파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은 박 시장에 대해서는 인권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로 살아온 공적에 초점을 맞추면서 추모 분위기 조성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박 시장의 빈소에는 첫날(10일)에만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수석들과 정세균 국무총리, 이해찬 대표가 이끄는 당 지도부가 대거 조문했고, 12일에도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와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민주당 안규백 최재성 인재근 홍익표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이해찬 대표가 공동 위원장을 맡은 장례위원회에는 박 시장과 오랜 인연을 가진 민주당 의원 100여 명이 이름을 올렸다.


박 시장 빈소 조문 행렬 줄잇고

서울 곳곳 추모 현수막 내걸어

일부선 피해자 신상털기까지


백 장군엔 친일 논란 의식 ‘냉랭’

“집권 세력의 당파적 행보” 비난


민주당은 서울 시내 곳곳에 ‘고(故) 박원순 시장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힌 민주당 명의의 추모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여권 인사들은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 배경으로 추정되는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면서도, 박 시장의 사망으로 해당 사건이 종결된 것 아니냐는 시각을 은연중 내보이기도 했다. 유인태 전 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잘 살아온 사람이 마지막에 그렇게 (한 것이)원망스럽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를 개혁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며 “저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허윤정 민주당 대변인은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 “전혀 다른 얘기가 있다”고 언급, 여권이 사망 원인에 대해 ‘뒤집기’를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그러면서 여권은 박 시장을 고소한 전직 서울시청 직원에 대한 연대를 표시하며 조문을 거부한 정의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거듭 ‘인간적인 도리’를 언급하며 비판했다. 이석현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얼마나 괴로웠으면 죽음을 택했을까. 지인이 죽으면 조문이 도리. 조문도 않겠다는 정당이 추구하는 세상은 얼마나 각박한 세상일까”라고 했고, 앞서 최민희 전 의원은 “시비를 따질 때가 있고, 측은지심으로 슬퍼할 때가 있는 법이다. 정의당은 왜 조문을 정쟁화하나”라고 비판했다. 이에 ‘친문(친문재인) 저격수’인 진중권 전 교수는 “한 여성에게 수년간 고통을 준 이에게 조문 가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정쟁화인가”라며 “애도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 본인이나 입 닥치고 애도하라”고 최 전 의원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는 피해자인 전직 서울시청 직원에 대한 ‘신상 털기’ 시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이 “무분별한 신상털기와 비난은 멈춰야 한다”며 ‘2차 가해’에 대한 우려의 입장을 내놨지만, 성추행 의혹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민주당이 이를 방기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대로 민주당은 지난 10일 사망한 백 장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당 차원의 논평도 내지 않고 있다.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25개 독립운동가 선양단체로 이뤄진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회장 함세웅 신부)은 친일 행적을 거론하며 백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결정 취소를 촉구하기도 했다.

백 장군은 6·25 당시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전선의 요충지 경북 칠곡 일대에서 벌어졌던 ‘다부동 전투’에서 20여 일간 북한군을 막아내며 전선을 지켜내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평가받지만, 일제 치하에서 무장독립운동가 토벌을 담당했던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경력 탓에 친일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권이 공과가 뚜렷한 박 시장은 대대적으로 추모하면서도 친일 논란 못지않게 뚜렷한 공적을 세운 백 장군에 대해서는 추모 표현조차 꺼리는 데 대해 집권 세력으로서 지나친 당파적 행보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영민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 등 청와대 핵심인사들과 이해찬 대표 등 민주당 고위 당직자들이 12일 오후 갑작스럽게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 장군 빈소를 잇따라 찾아 조문한 것은 이런 논란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됐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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