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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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는 철저한 반전주의자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전쟁소설이다.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은 1930년대 중반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파시스트 반군에 대항하는 공화국 군대에 자원입대한 뒤 전략적으로 중요한 다리를 폭파하라는 지령을 받고 산속 게릴라들의 은신처에서 사흘을 보낸다. 그 마지막 날이 예술사에 길이 남아 있는 명장면이다. 교량을 무너뜨리는 임무에 성공하지만 적의 총탄에 맞아 부상당한 조던은 사랑하는 연인 마리아와 동료 대원들을 재촉해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적들을 맞는다. 영화의 엔딩에 커다란 종이 댕그렁 댕그렁 울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민중의 자유와 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위해 기껍게 선택한 희생적 죽음, 그것을 향한 조종(弔鐘)일 테다.

한국 시민운동의 상징과도 같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많은 것을 우리 앞에 던져놓고 세상을 떴다. 또다시 마주해야 하는 조종 소리가 황망할 뿐이다. 허나, 죽음은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애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비이성적인 갈등과 대립이 다시금 요동을 친다. 변함없이 천박한 우리 사회의 살풍경이다. 자유를 빙자해 죽음마저 조롱한 어느 유튜버의 한없는 경박을 보면서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는 것이다. 조롱은 풍자나 비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풍자와 비판은 부당한 권력을 가진 강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바로잡으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와 무관한 조롱은 비뚤어진 쾌감을 추구하는 패배자들의 가장 저열한 욕망일 뿐이다.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 선택 ‘황망’

그 어떤 죽음도 우리와 무관치 않아

우리 사회가 남겨진 숙제들 풀어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지도자 덕목의 중요한 가치 확인

시대 변화 못 읽으면 민심이 응징


박 시장의 죽음으로 지도자 곧 리더의 덕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1990년대부터 ‘참여연대’를 이끌고 10년 가까이 서울시장직을 수행해 온 소통과 연대의 리더십을 의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약자의 편에 서서 시민운동과 서울시 행정을 이끈 그의 이력을 보건대, ‘도덕성’은 그가 품은 가장 큰 가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견제하는 주체에서 견제받는 위치로 바뀌고 자기검열에 더욱더 철저했어야 할 시점에서 성추행 의혹이 일어났고 그것이 그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지도자의 덕목엔 ‘공적 대의를 위한 희생’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를 수놓은 무수한 책갈피에는 개인의 목숨을 걸고 전체를 구한 이들의 위대한 이타적 사례가 기록돼 있다. 박 시장의 죽음 역시 본인이 품어 온 어떤 대의를 향해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대의가 모든 이를 보듬지 못한다는 데 깊은 슬픔이 있다. 그 대의가 어떤 이는 포함하되 또 어떤 이는 미처 담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대하는 뭇 마음의 표정 역시 엇갈릴 수밖에 없다. 죽음으로써 '무엇'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지려는 선택은 온당한 것인가.

리더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강조하고 싶다. 타인의 아픔을 깊이 이해할 줄 아는 지도자를 판별하려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펴보면 된다. 그런 점에서 박 시장은 그 덕목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타인에 대한 공감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박 시장의 공감력은 시대의 변화를 미처 좇아가지 못했다는 데 그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말 못 할 고통을 겪는 소수자와 약자들이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결국 그가 남긴 교훈은, 우리 모두가 그들의 낮은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지도자가 되길 원치 않는 것”이라 했다. 지도자라면 응당 그 책임의 무거움을 알아야 한다는 뜻일 터, 그의 마지막 길에 이런 깨달음이 찾아왔기를 바란다.

개혁을 부르짖던 이들이 스스로 평등과 공정의 가치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부른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진보 세력의 도덕성에 상처를 남긴 ‘조국 사태’도, ‘윤미향 사태’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물론 일부 인사의 개인적 사안을 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보-보수 구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 지도층을 이룬 세력들이 이를 애써 외면한다면 끝내 민심의 철퇴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의 시에서 그 제목을 빌렸다고 한다. ‘너는 인류의 일부, 네 이웃은 너의 일부, 그러므로 네 일부의 죽음을 알리는 종임을 깨달으라는 것, 저 종은 네가 죽었음을 알리는 것.’ 이것이 시의 내용이다. 그 어떤 죽음도 우리 모두와 연결돼 있다는 통찰. 그렇다. 어느 누구도, 박원순의 죽음으로 인한 저 조종 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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