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관의 남북 시선] '미국 독립기념일 DVD 얻겠다'는 김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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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2주 전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이 발표한 대미 담화를 보면 문장 속의 내용을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담겨 있었다. 원고지 23장 분량의 장문의 담화를 발표하면서 북·미 관계와 관련해 여러 중대한 언급을 했는데, 끝에서 두 번째 문장에서 “가능하다면 앞으로 (미국의) 독립절 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는 데 대하여 위원장 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라고 했다.

갑자기 DVD라니, 과연 무슨 뜻일까? 많은 전문가가 의아해했다. 필자 역시 해방 후부터 최근까지 적지 않은 북한 문헌을 봐왔지만, 미국 독립기념일 영상을 수록한 DVD이건 어떤 기록이건 개인적으로 받고 싶어 하는 북한 고위 관료를 본 기억은 없다. 독립기념일 영상은 이미 뉴스를 통해 봤을 것이고, 전체 영상이 필요하다면 이메일이나 SNS로 전송받아도 충분할 것이다.


대미 담화 내용 중 입수 희망 내비쳐

DVD 매개체 활용, 대화 신호로 해석

일부선 여전히 회의적인 전망 우세

최근 북 고위급 언급도 부정적 기류

조건 맞으면 관계 개선 의향 드러내

양측 결심 따라 돌발 상황 가능성도


결국 김 제1부부장의 담화 내용은 미국과 만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위원장 동지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것은 김 제1부부장의 워싱턴 방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즉 DVD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나서 대화하자는 긍정의 신호로 풀이된다.

또 마지막 문장은 “위원장 동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인사를 전하라고 했다”라고 돼 있다. 이는 올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를 기원한다는 내용으로 읽힌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북한의 당 제1부부장이 미국 독립기념일 영상을 받아보고 싶어 한다거나, 또는 북한의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의 승리와 재선을 기원한다는 것이 과거에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물론 여전히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는 회의적인 전망도 적지 않다. 미국 대선이 10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코로나19로 인해 준비 접촉이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 북·미 대화가 열리더라도 의미 있는 진전 없이 보이기식으로 끝날 것 같다면 북·미 어느 쪽도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하노이까지 60여 시간을 기차를 타고 갔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섰던 ‘노딜’의 뼈아픈 경험이 있어 더욱 그럴 것이다.

김여정의 담화에서도 “북·미 정상회담이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언급돼 있다. 그 이유로는 존 볼턴 전 백악관 보좌관이 이미 설레발을 쳐 놓은 상황에서는 회담에 응할 수 없다는 등 몇 가지를 들었다. 정상회담이 성사 가능한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하노이 회담 때 밝힌 사항이었던 ‘제재 해제’를 넘어 ‘적대시 철회’를 요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리선권 외무상은 지난 6월 담화에서 “다시는 아무러한 대가도 없이 미국 집권자에게 치적 선전감이라는 보따리를 던져주지 않을 것”이라고 해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그리고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발표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발언에서도 “조·미 대화를 정치적 위기를 다루어 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라며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그런데 두 문장이 조건문이라는 사실을 유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북한에도 대가가 있다면’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만 여기지 않고 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다면’ 대화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북한은 제재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크고, 코로나19로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여정도 역시 “하지만 또 모를 일이기도 하다.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해 다른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7월 초 미국의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을 다녀갔다. 이례적으로 “남북협력을 적극 지지한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그간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던 첫 번째 요인은 미국의 대북 정책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리고 최근 남북관계가 악화하고 개성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면서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Not Working’, 즉 작동하지 않는 현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매우 거세지고 있던 시점이다. 이러한 때에 스티븐 비건 부장관의 방한과 남북협력 지지 발언, 그리고 이어진 김 제1부부장의 DVD를 얻고 싶다는 발언은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만일 북·미 정상급 대화가 성사된다면 단순히 보이기식 퍼포먼스로 그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연 김 제1부부장이 DVD를 얻기 위해 워싱턴으로 갈 것인지, 이를 계기로 북·미 관계의 큰 진전이 있을 것인지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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