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탈탄소 시대, 더는 못 미룬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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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해양수산부장

‘기록적’이라는 단어를 ‘폭(暴)’이라는 첫음절 단어와 함께 날씨 기사에서 자주 보게 되는 요즘이다. 사납다, 난폭하다는 뜻의 한자어 ‘폭’ 다음에는 더위나 비, 눈 등이 뒤따른다.

이번 여름은 기록적 폭염이 예보됐으나, 이달 초까지 우리나라는 기록적인 장마와 폭우로 곳곳에서 삶터를 잃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물에 잠기던 기택(송강호 분)의 반지하 집이 영화적 픽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현실 재현이라는 점 또한 새삼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19 또한 거리두기가 어려운 업종 노동자가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공공 의료보험 제도가 취약한 미국에서는 흑인 사망률이 백인의 2.4배, 영국에선 4배 더 높다고 알려졌다.


코로나19 팬데믹에 겹친 폭우·폭염

화석연료 의존체제 근원적 전환 요구

수소경제, 늦었지만 동남권엔 기회로

조화·질서·상생 새 기준 제시했으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로부터 인간에게 옮았다는 것은 정설이다. 끊임없는 영역 확장과 화석 에너지에 의존해 발전한 자본주의 경제의 속살, 마치 관절 사이 물렁뼈가 닳아 없어진 것처럼 완충지대 없이 극과 극으로 내몰리는 시스템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코로나19와 기후 변화는 어쩌면 지구와 후세들을 살릴 마지막 기회로 우리 앞에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산업혁명 이후의 급속한 경제 발전과 기후변화의 연결고리는 두말할 것 없이 에너지다. 세계 경제 패러다임은 증기기관 발명 이후 석탄과 석유가 차례로 중심을 이뤘고, 21세기 들어 천연가스 비중이 높아지는 중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미국, 일본, 중국에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을 높이는 연구와 산업화가 광범위하게 이뤄지지만, 국내에선 효율성 논란이 여전하다. 코로나19 방역 모범 국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예측 2020년도 경제성장률 37개국 중 1위를 달성했음에도 에너지 분야 만큼은 도전도 성과도, 선진국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은 이미 약 20년 전인 2002년 〈수소혁명〉에서 석탄과 증기 기관, 석유와 가스를 거친 세계 경제 패러다임이 앞으로는 수소 기반 체제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수소를 생산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천연가스를 고온·고압으로 분해하는 ‘개질’이고, 석유 정제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생산되는 ‘부생’이 있다. 둘 다 화석 에너지에 의존하고, 생산 과정에 탄소가 배출된다는 점에서 ‘그레이 수소’로 불리는데, 향후 지향할 것은 신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 등)로 물을 전기 분해하는 ‘그린 수소’다. 이런 점에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초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린 수소를 상업화할 때까지 징검다리로 그레이 수소를 어디서 어떻게 생산해 공급할지에 대한 세밀한 계획도 필수적이다. 일본은 호주의 풍부한 갈탄에서 추출한 수소를 액화시켜 국내로 반입하는 프로젝트를 이미 2016년부터 진행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월 국가 차원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이후 지난 6월에야 국내 30개 기업·기관이 참여해 해외 수소 공급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오히려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발족한 ‘남·북·러 경협 갈탄 활용 수소생산 프로젝트’가 한발 빨랐다. 이번 기회에 호주보다 훨씬 가깝고, 생산 방식과 효율이 검증된 극동러시아의 천연가스를 활용한 수소 공급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게다가 차량이 아닌 선박에 수소연료전지를 장착해 운항하는 연구 역시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수소 에너지가 오가는 출입구이자 연구·활용 거점으로서, 수소경제 시대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의 발전 방안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1970~1980년대 수출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제조업 전진기지를 넘어 굳이 수도권과 비교할 이유도 없는, 동북아 물류·에너지 거점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부산항이 중심이 될 환동해 경제권은 일본, 중국, 러시아와 우리나라가 중심을 이루고, 미국 셰일가스의 동아시아 거래 거점 역할도 할 수 있다. 믈라카해협 입구의 싱가포르가 갖는 세계 해양경제 거점 지위를 향후 10년 내 북극항로 초입인 부산항으로 가져올 전략을 짜야 한다.

사전을 보니 ‘폭’이라는 한자어에 이런 뜻도 있다. 불끈 일어나다, 따뜻하게 하다, 햇볕에 말리다, 나타내다, 드러나다. 한국이 세계 수소경제 시대의 중심으로 불끈 일어서는 시대를 꿈꿔 본다. 지난 200년 불평등과 차별을 극대화한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 조화와 질서 속에 인류와 자연이 상생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중심에 동남권이 있다면, 국토 균형 발전도 덩달아 따라오지 않을까.

jiny@busan.com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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