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우체국에 왜 적금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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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금융감독원 앞에 옵티머스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 앞에 옵티머스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좀 오래된 일이다. 자그마한 적금을 하나 들려고 집 가까운 우체국을 들렀더니 소장이라는 분이 와서 자기가 처리해 주겠단다. 그런데 통장을 받아 보니 적금이 아니라 보험이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의아해서 물었더니 그분 대답이 우체국은 국가가 운영하는 특수 금융기관이라서 법률상 적금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모두 보험이라는 이름을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한참 지나서 우편물을 보낼 일이 있어 다른 우체국에 들렀더니 보험상품을 안내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래서 무심히 “우체국에는 적금이 없다면서요?” 하고 묻자 직원이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되묻는다, “우체국에 적금이 없기는 왜 없어요?”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정치권 시끌

현직 장관도 수억 원 투자했다 낭패

퇴직금·노후자금 날린 이도 수두룩

정보 비대칭 금융시장은 ‘레몬 시장’

실적 욕심에 허위·불완전판매 빈번

금융사고 막는 데 행정력 집중해야


라임 사태니 옵티머스 사태니 금융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라임 사건의 핵심 인물이 옥중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돈을 줬다고 고백했다가, 실은 검사가 시켜서 거짓으로 그랬다느니, 검사에게 수천만 원어치 술을 샀다느니 하고 다른 고백을 해서 정치권까지 시끄럽다. 이런 와중에 진영 행안부 장관도 옵티머스에 6억 원을 투자했다가 휴지조각이 되었다는 보도가 나와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정작 안타까운 일은 퇴직금이며 노후자금을 모두 사기당한 분들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왜 거의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큰돈을 그렇게 위험한 금융상품에 투자했을까? 이분들의 하나같은 대답은 금융기관 직원이 절대 안전한 상품이라고 말하니 그대로 믿었다는 것이다. 이분들을 탓할 일이 전혀 아니다. 명색이 경제학 박사라는 나도 우체국 직원의 터무니없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으니 말이다. 라임 사태나 옵티머스 사태가 김 모 회장 같은 몇몇 부도덕한 사기꾼들만의 책임일까? 선량한 고객들을 직접 만나 얼굴을 마주보면서 거짓말로 투자를 유도한 직원들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는 우리 금융기관 전반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 준다. 아마 이 직원들도 변명거리는 있을 터이다. 실적을 올리라는 압박 때문에, 상사가 시키니 어쩔 수 없어서 등등 말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도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시킨다고 선량한 고객들의 삶을 절벽으로 내몰지도 모를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레몬 시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레몬은 중고차를 이르는 미국의 속어다. 레몬은 오렌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너무 시어 날로는 먹기 힘들다. 사고 이력이 있거나 하자가 있는데도 멀쩡한 척하는 중고차가 많다는 뜻이다. 중고차 시장에서는 판매자는 차에 대한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사는 사람은 전혀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부른다. 금융시장도 정보가 비대칭적인 전형적인 레몬 시장이다. 솔직히 나도 어떤 금융상품이 더 안정적이고 또 어떤 금융상품이 더 수익률이 높은지 어떤 상품이 내게 더 적합한지 전혀 모른다. 그저 거래하는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권하는 대로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마음먹고 잘못된 투자를 권하면 대부분의 평범한 고객들은 속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시장경제를 오해하는 분들은 그냥 내버려 두면 시장이 알아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장은 인간들의 이기심이 모이는 곳이어서 그냥 내버려 두면 온갖 거짓말과 협잡과 악덕이 횡행할 뿐이다. 정부가 그동안 부동산에 쏟은 관심과 숱한 대책들의 절반만큼만 금융사고를 막는 데 미리 애썼더라면 라임이나 옵티머스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고가 아파트의 거래를 빠짐없이 들여다보겠다는 정부가 저렇게 부실하고 위험한 금융상품 판매는 못 들여다볼 이유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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