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과 열정의 도시’ 베네치아의 역사를 걷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삶이 축제가 된다면 / 김상근

1516년 3월 이탈리아 베네치아 북쪽에 특별한 집단 주거시설이 들어섰다. 베네치아 당국은 영토 내 거주하고 있던 모든 유대인을 북쪽의 카나레조 구역 안의 작은 섬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베네치아 거주 유대인은 900명 정도. 중고 옷 거래와 같은 허드렛일이나 멸시받는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던 유대인들은 이미 베네치아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었다.

당국은 유대인들에게 거주 제한을 가하고 출입을 통제하는 ‘게토’까지 만들었다. 세계 최초인 베네치아의 게토는 반유대주의의 대표적인 산물로 전 유럽의 도시로 확산했다. 통행 금지 시간에 외부로 나간 유대인은 잔혹한 테러를 당하곤 했다. 낮에 외부로의 출입을 허락받아도 검은색이나 노란색 유대인 복장을 갖추어야 했다.


‘동방견문록’ 등 유럽 고전 속 이야기 소개

회화·조각·음악 예술가 흔적 좇아 여행


셰익스피어가 1596년 발표한 〈베니스의 상인〉은 베네치아의 유대인 게토 구역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1567년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베네치아에서는 의사, 약사 등 전문 직종 종사 유대인과 고리대금업자들은 예외적으로 법적인 존재를 인정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자주 베네치아 법정에 호소했는데 〈베니스의 상인〉도 이런 역사적 사례가 극화된 것으로 보인다.

〈삶이 축제가 된다면〉은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인 저자가 쓴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감각과 열정의 도시’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문학,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 그 장소에 얽힌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했다. 베네치아는 18세기 북부 유럽인들에게는 희열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랜드 투어’의 목적지였다. 유럽인들에게 그랜드 투어는 지성인들의 성찰과 성숙을 위한 필수 과제였다. 단테, 괴테, 보카치오, 몽테뉴, 모차르트, 찰스 디킨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르셀 프루스트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베네치아를 찾아와 삶을 성찰하는 기쁨을 누리고 돌아갔다.

저자는 베네치아를 걸으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단테의 〈신곡〉, 존 러스킨의 〈베네치아의 돌〉과 같은 고전 속으로 이끈다. 이 가운데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 태생으로 유럽 대륙이 아직 중세 암흑의 시대 말기를 보내고 있던 14세기 초반에 중국과 인도를 탐험하고 돌아왔다. 베네치아 국제공항 이름이 ‘마르코 폴로 공항’으로 불리는 이유다.

저자는 베네치아라는 예술의 도시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회화와 조각, 음악도 함께 다뤘다. 벨리니, 틴토레토, 티치아노, 팔라디오, 롱게나 등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좇아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까지 여행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뒤집는 책”이라고 했다. 마르코 폴로가 다녀갔던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쓴 ‘베네치아 견문록’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베네치아의 생각의 생각을 묶은 책이라고 한다. 김상근 지음/김도근 사진/시공사/504쪽/2만 2000원. 김상훈 기자 neato@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