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다시 시험대 오른 한반도 평화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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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바이든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백악관의 주인이 바뀜에 따라 미국의 대외 정책도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외교 재활성화, 동맹 재창조, 미국 주도적 역할 복원, 다자주의 체제 부활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정권 교체로 우리나라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두 분야는 통상과 안보다. 우리로서는 그중에서도 대북 정책의 변화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평화, 곧 우리의 미래와 밀접히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인물이다. 법치 무시, 혐오와 차별의 언사, 인종주의, 소수자 배제, 포퓰리즘식 통치 방식 등에서 보듯 그의 세계관은 분명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대외 정책 분야에서는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 없지 않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 대외 정책의 근간은 두 갈래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고립주의’가 대세였다. 세계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이 원칙이 전쟁 이후 바뀐다. 초강대국의 위치에 오르자 이른바 ‘세계 경찰’로서 국제 문제에 적극 개입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은 지구촌 곳곳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전쟁에 뛰어든 나라다.


미국 정권 교체로 대외 정책 주목

미 역할 중시 ‘국제주의’ 기조로 바뀔 듯

바이든, 북한 문제에도 강경한 입장

북·미 대화 어느 때보다 쉽지 않아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에 큰 무게

남북, 미 정책 공백기에 힘 합쳐야


이 틀을 바꾼 이가 트럼프다. 그는 미국의 역할을 줄이는 고립주의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지원, 군대의 해외 파견을 축소했다. 북·미 대화가 트럼프 행정부 때 급진전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는 협박조의 막말과 장사꾼 전략으로 양보와 이익을 얻어 내는 쪽이지, 실제로 무력을 쓰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는 또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다. 이는 그를 칭찬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사업가 출신으로서 개인적인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다. 북·미 관계에서 뜻밖의 호전을 기대했던 건 좌충우돌의 어떤 저돌성 때문이다.

이에 비해 바이든은 미국의 관습과 전통 외교를 충실히 따르는 주류 정치인이다. 여론과 언론에 귀 기울이고 동맹의 강화에 힘을 쓸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들을 검토·수정하고 정치·경제적 혼란을 수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고, 한반도 비핵화 이슈는 외교 정책의 후순위로 밀릴 것이다. 이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바이든은 특히 북한이 핵을 진짜 포기하거나 그에 준하는 의지를 ‘먼저’ 보여야 협상에 임할 수 있다고 공언해 온 강경론자다. 대선 TV토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폭력배’로 불렀으니, 이만큼 강한 불신의 표현도 없다. 바이든 주변 참모들도 대북 강경파가 많다. 국무장관으로 거론되는 수전 라이스, 부통령 러닝 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인사인 토니 블링컨은 대표적인 매파들이다. 이들은 대북 제재 강화를 한목소리로 외친다. 그래서 북·미 협상이 더 큰 난관에 봉착하리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지난 2009년 뼈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핵 없는 세상을 만들자’며 러시아 등에 핵무기 감축을 제안한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9개월 만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때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미 수교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북핵 문제를 풀자고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우선적 핵 폐기와 개혁·개방을 전제로 이를 거절한 것이다. 그 결과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였다. 이 정책은 숱한 비판 속에서도 8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북핵 해결의 기틀을 마련할 더없는 기회였는데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바로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있던 민주당 정권 시절이었다.

이제 우리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바이든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과 한반도 비핵화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최소한의 공감대는 갖고 있다.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한반도 문제를 책임지는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상원 인준을 받으려면 최소 6개월이 걸리고 외교 정책 점검과 인력 배치까지는 최대 1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 대북 정책의 공백기를 잘 활용하자는 제안은 적극 고려할 만하다. 이 시기를 남과 북이 상호 신뢰 회복과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역할은 필수적이나, 무엇보다 주도적이고 자주적이어야 한다. 북·미 양쪽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 한국 정부에 아무 기대할 것 없다는 북한의 불만을 불식하고,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서는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의 통 큰 행보를 추동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평화 정착의 초석을 닦으려면 남북이 먼저 힘을 합쳐야 한다.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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