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그놈들’이 깨어난다면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수석논설위원

먹기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지인이 요즘 사람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겨울철이니 방어 아닌가요”라고 대답했지만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기내식’에 대한 욕구가 가득했다. 매일 아침 코로나19 실시간 상황판을 보면서 얼마나 확진자가 늘었는지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17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는 5500만 명, 사망자만 133만 명에 달한다. 예방률 90% 이상의 효과를 나타냈다는 백신 후보들의 임상 결과는 가뭄 끝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효과적인 백신이 나오고 대부분의 사람이 백신을 맞는다면 2021년 말께 일상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관측도 나온다.

백신이 세상을 구원해 코로나의 어두운 터널에서 속히 빠져나오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백신이 나와도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세계의 석학들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원인을 인류의 탐욕이 빚어낸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기후변화는 지금도 시시각각 진행되고 있다.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주가가 더 많이 오를 텐데 화이자의 최고경영자는 발표 직후 서둘러 자사주를 매도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충분한 실험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백신 개발 업체들은 서로 먼저 공급 계약을 따내는 데 급급해 설익은 시험 결과를 발표했을 개연성이 높다. 코로나로 수백만 명이 죽어났지만, 인간의 탐욕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코로나 백신 개발 희망적 소식

일상으로 돌아갈 기대감 커져

지구 온난화 영향 빙하 녹아

고대 바이러스도 부활 가능성

뒷북치는 백신 근본 해결책 안 돼

기후변화 위기 정신 바짝 차려야


박쥐는 안 그래도 기회주의자 취급을 받으며 부정적인 이미지였는데 코로나의 숙주로 알려지며 기피 동물 1순위가 되었다. 국내에서 박쥐는 대개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도심에서 때아닌 박쥐가 출현해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사실 박쥐를 나무랄 일이 아니다.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이가 없어지자 사람이 사는 곳까지 내려와 자주 눈에 띄는 것이다. 박쥐는 열대지방에 훨씬 다양한 종이 산다. 기후변화 때문에 박쥐가 온대 지방으로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다니 다반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생기는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 감염병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다음번에는 또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 정말 두려운 것은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빙하가 녹으면서 ‘고대 바이러스’들이 깨어나 전염병을 일으키는 경우다. 바이러스는 10만 년까지 무생물 상태로 빙하 속에서 동면이 가능한데, 기온이 다시 따뜻해지면 활동을 재개한다. 미국과 중국 공동 연구진은 티베트 굴리야 빙하에서 1만 5000년 전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28개의 ‘고대 바이러스’ 존재를 확인하기도 했다. 2016년 여름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1941년 이후 75년 만에 탄저병이 발생해 주민 8명이 감염되고, 순록 2300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 당국은 테러나 적국의 실험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는데 원인은 뜻밖으로 지구 온난화였다. 이상 고온 현상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아 동물 사체 속에 숨어 있던 탄저균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병이 퍼진 것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 설치는 좀비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다. 죽은 줄 알았던 바이러스의 부활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고대 바이러스는 ‘좀비 바이러스’라고도 불린다. 과학자들은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수십만 년 동안 품었던 바이러스가 깨어나 밖으로 나올 가능성을 우려한다. 빙하가 녹아 눈을 뜬 고대 바이러스들이 면역력이 없는 인간 사회와 접촉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2010년에 출판된 국내 소설 〈전염병〉은 남태평양 빙하 속에 웅크리고 있던 바이러스를 원양어선 선원들이 접촉하면서 생기는 참사를 그리고 있다. 기후변화는 북극곰만 딱하게 된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또다시 나타날 것이기에 백신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구온난화가 거짓말이라고 했던 트럼프의 시대는 끝이 났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2050년 탄소 배출량 제로 실현을 공언하면서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겠다고 선언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부산시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보다 3분의 1 이상 줄인다는 로드맵을 발표하며 동참했다. 선언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호주국립기후복원센터는 지난해 “기후변화는 핵전쟁에 준하는 위험요인이기 때문에 전시체제에 준하는 자원 및 인원 동원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는 잘 보이지 않기에 허투루 여기기 쉽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이만큼 당했으면 기후변화 위기에 대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