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통해 도시 역사와 예술과 미래를 읽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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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인문학 / 노은주·임형남

도시에는 인간의 역사와 삶이 집약돼 있다. 그 안에는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고 많은 사람의 삶이 덧대어져 끊임없이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가온건축’으로 유명한 부부 건축가 노은주·임형남의 〈도시 인문학〉은 전 세계 13개 국가의 21개 도시가 담고 있는 역사, 예술, 미래의 풍경을 여행하듯 보여주는 책이다. 한데 그 매개체는 건축이다. 특정 건축물을 통해 그 도시의 역사, 예술, 미래를 읽어낸다고나 할까.


獨 유대인박물관·美 페이스북 사옥 등

건축가 부부 눈에 비친 21개 도시 풍경


요컨대 이런 식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도시 곳곳에는 유대인박물관이 세워졌다. 그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인상적인 박물관은 바로 독일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박물관이다. 아연과 티타늄으로 둘러싸인 이 유대인박물관의 표면에는 사선으로 그어진 선들이 손톱에 할퀴어진 상처처럼 도드라지게 보인다. 이곳에는 납작한 철로 제작된 가면 1만 개가 깔린 메나셰 카디슈만의 설치 작품 ‘공백의 기억’이 있는데, 이는 홀로코스트로 인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상징한다. 유대인박물관은 남을 고려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배려하지 않았던, 과거에 인류가 저질렀던 죄악에 대한 강력한 건축적인 기록이다.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자신들이 저질렀던 죄악의 역사, 그리고 아픔을 이렇게 기록한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는 생태건축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이 오스트리아의 온천 도시 바트블루마우에 있는 로그너 바트블루마우 호텔이다. 이 호텔은 온통 곡선으로 이어지는 건물과 다양한 색채, 초록과 자연으로 뒤덮인 지붕과 벽, 24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창문으로 유명하다. 바트블루마우란 도시는 예술과 자연의 완벽한 조화로 그들만의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어간다.

미국 멘로파크에 있는 페이스북 사옥은 그 업적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상징처럼 보인다. 축구장 7개를 합친 규모의 페이스북 사옥은 놀랍게도 단층이고 실(室)의 구분이 없는 오픈 플랜 형태의 사무실로 이루어졌다. 즉, 직원 2800명이 칸막이 없이 열린 채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며 일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미국의 미래를 본다.

도시는 꼭 크고 웅장한 것, 인위적이고 화려한 것들로만 채워지는 건 아니다. 때론 작고 오래된 것, 잘 드러나지 않는 것, 슬프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들, 소소하면서도 우리의 삶이 묻어있는 것들, 꼭 있어야 할 것들이 도시를 만들고 있다. 책은 그걸 증명한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은 말했다. “좋은 도시란 한 소년이 그 거리를 걸으면서 장차 커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일깨워 줄 수 있는 장소다”라고. 이 책 속에 그런 도시들이 있다. 노은주·임형남 지음/인물과 사상사/308쪽/1만 6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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