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코로나 백신의 역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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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부산은 비교적 코로나19 청정 지역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갑자기 집단감염이 급증했다. 신규 확진자 51명이 나온 지난달 29일 전후로 그 기세가 참으로 등등하다. 지난 10월 요양병원에서 하루 55명의 확진자가 나온 때와는 결이 다르다. 당시 관리 가능한 병원 한두 곳이라서 그나마 방역 대응이 가능했다. 지금은 학원·학교·교회·병원·사우나·주점·군부대·각종 소모임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역학조사가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국적으로 연일 400~500명 대의 확진자가 쏟아지는 지금, 불길한 느낌에 휩싸인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 하나가 뚝 하고 끊어진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백신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현재 글로벌 제약회사인 화이자·모더나·아스트라제네카에서 약 90% 이상의 효능을 가진 3개의 백신을 개발한 상태다. 전문가들 말로는, 빠르면 이달 중 유럽연합 혹은 자국 보건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내년 초부터 접종에 들어간다고 한다. 국내의 경우 백신 도입과 관련된 논란이 없지 않았는데, 일단 물량 확보 계획이 세워졌다. 최근 정세균 총리가 3000만 명 분량의 백신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여당이 확보 분량을 우리나라 인구의 85%에 해당하는 최대 4400만 명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덩달아 국내 기업들이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고 한 국내 업체는 치료제를 개발했다는 희소식까지 들렸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전국적 팽창

공교롭게도 백신 개발 소식과 겹쳐

백신 효능과 안전성 아직 미지수

물질적 백신보다 심리적 백신 중요

생활 절제하고 서로서로 배려해야

오랜 고통의 시간 이겨 낼 수 있어


긴장이 풀린 걸까, 우연의 일치일까. 백신 개발 소식이 들리고 치료제 출시가 다가왔다는 얘기가 나올 무렵과 국내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이 겹친다. 이런 소식들이 되레 심리적 방역의 끈을 느슨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도 백신 임상시험 발표 이후 ‘팬데믹’이 진행됐다는 분석이 있다.

백신이 개발되고 도입 계획이 세워졌다고 하지만 우리 국민이 언제 어떻게 접종받을 수 있을지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 아니, 백신을 맞을 수나 있을지, 백신이 나오더라도 실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효과가 95%에 달한다는 제약회사의 주장 말고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연구 결과나 검증은 없다. 아직은 백신의 안전성을 확신할 뚜렷한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18세기 말 영국의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라는 사람이 천연두에 면역력을 갖는 예방 접종(우두법)을 개발했다. 인간이 처음으로 전염병을 극복한 사례로 기록된다. 이후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를 개발한 인류는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완전한 승리를 거뒀다’고 자신했다. 1969년 미국 공중위생국의 ‘전염병 시대의 종말’ 선언은 그 정점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 만에 ‘전염병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는 세계보건기구 보고서(1996년)가 나왔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경종에 다름 아니다. 세균·바이러스의 적응 능력은 백신과 항생제 개발의 속도를 뛰어넘는다. 변종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한 이 전쟁은 끝이 없다. 해결 방법은 단 하나, 공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더 강력한 바이러스를 만들어 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하는 것으로 태도를 바꾸는 게 옳다.

백신은 당연히 필요하나 절대적인 의지처가 될 수는 없다. 그것만큼이나 ‘심리적 백신’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백신이라는 물질적 처방을 맹신하지 말고 방역에 대한 마음의 결기와 절제를 유지하는 것. 물론 이것만으로는 무겁고 지리한 감염병의 시대를 견뎌 내기가 쉽지 않다. 결국 심리적 백신의 근본 토대는 우리의 마음, 관점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자연과 인간, 지구촌의 모든 생명은 연결돼 있고 결국 하나라는 믿음이다. 이런 낙관과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렇게 서로가 손잡지 않으면 고통의 시간을 이겨 낼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의 절제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위로가 그래서 절실하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는 학생과 여성, 자영업자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다. 학생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여성들은 더 큰 실직 위기에 빠졌으며, 자영업자들은 일거리가 없어 삶의 뿌리가 뽑히고 있다. 백신이 나온다 하더라도 이미 무너진 사람들, 일어서기 힘든 취약 계층은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이들을 돌보는 시스템이 없는데 백신 개발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당장 내일이 수능일이다. 1년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을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리고 이후가 기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이 예견한 겨울철 대유행의 고비를 넘는 것. 우리 마음의 백신, 그 효능을 가늠할 진짜 시험대다.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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