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가족을 비추는 작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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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작은 빛’ 스틸컷. 부산일보DB 영화 ‘작은 빛’ 스틸컷. 부산일보DB

조민재 감독의 ‘작은 빛’은 놀라운 영화다. 물론 누군가에게 이 영화의 연출이 낯설고 생경할지도 모르고, 극영화와 다큐의 경계가 모호해서 지루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민재는 기존의 전형적인 관습과 체계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영화언어를 쓰고 있다. 그것은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뇌수술을 앞둔 ‘진무’는 수술 후에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기억해야 하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캠코더에 담기 시작한다. 엄마와 누나, 형의 얼굴과 생활공간을 캠코더에 기록하면서 진무는 어린 시절 죽은 아버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이기에, 진무는 의식적으로 아버지를 잊고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진무가 가족을 만나러 온 순간 아버지를 떠올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버지는 신기루처럼 진무의 곁을 따라 다닌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진무가 아버지의 얼굴과 닮았음을 확인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영화 언어 돋보이는 ‘작은 빛’

조민재 감독 자전적 요소 반영 영화

뇌수술 앞둔 주인공 기억 보존 위해

캠코더로 가족 담다 아버지 떠올려

세상 뜬 아버지와 화해로 읽히기도


진무는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캠코더를 들었지만, 기억은 붙잡고 싶다고 잡히거나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어느 때는 왜곡되어 나타나거나, 어느 때의 기억은 너무 빨리 사라지기도 한다. 달리 말해 ‘작은 빛’에서 기억과 기록은 계속 미끄러지고 어긋난다. 진무의 병문안 온 가족들은 같은 사진(기록)을 보면서 모두 조금씩 다른 기억을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작은 빛’은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반영된 가족영화다. 하지만 그는 독특한 방식으로 가족을 스크린에 불러오며 아름다운 장면들을 연출한다. 가령, 엄마의 집에서 진무가 형광등을 갈아 끼우고 스위치가 잘 들어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불을 껐다 켜는데, 불이 꺼지는 그 순간 누나와 형의 일상이 차례대로 스크린으로 들어온다. 엄마와 진무가 생활하는 그 시간 그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영화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캠코더를 다루는 방법도 인상적이다. 과도한 클로즈업과 흔들림이 많은 캠코더 영상과 관조하듯 사물을 정적으로 담아내는 카메라는영화 분위기를 달라지게 한다. 캠코더도 진무 혼자 독점하지 않는다. 가족들의 손에 들려져서 대상을 찍기도 한다. 뒤로 돌아누운 엄마의 모습은 실제 진무가 찍은 영상이고, 조카 호선이 찍은 영상도 고스란히 영화 속으로 들어온다. 그중 진무 엄마가 캠코더를 든 장면은 주목해야 한다. 엄마의 기억을 듣기 위해 진무는 엄마를 캠코더 앞에 세웠지만, 상황은 곧 역전된다.

진무를 찍겠다는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진무가 캠코더 앞에 앉는다. 이때 관객은 클로즈업 되는 진무의 얼굴을 보고 있지만, 사실 아버지에 대한 폭력을 기억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즉 우리는 캠코더 뒤에 있는 엄마의 슬픈 얼굴을 상상하면서, 진무의 불안과 불편함이 깃든 얼굴을 본다. 서로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영화의 엔딩, 진무와 가족들은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서 산소를 찾는다. 20년이 지났음에도 아버지의 시체가 썩지 않은 채다. 일꾼들이 재수 없다고 떠나자 진무는 아버지의 유골을 자신의 손으로 거두어 이장함에 담는다.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유해를 손에 들고 진무가 걸어가자 가족들이 그 뒤를 뒤따른다. 어둠이 진 자리에서 ‘작은 빛’이 펼쳐진 곳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것만 같은 장면이다. 마치 아버지와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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