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부울경 메가시티, 시험대는 이제부터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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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며칠 전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에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 1988년 이후 32년 만에 처음으로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자치제가 1991년 기초지방의회 의원 선거로 재개된 뒤 지방자치 역량이 꾸준히 성장하면서 지방자치법에 대한 개정 여론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중앙정부 중심의 시각에 순치된 오랜 타성과 지방에 대한 몰이해 등 여러 이유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다 드디어 30여 년 만에 숙원이 해결됐다.

1년 내내 창궐 중인 코로나19가 최근 3차 대유행 단계로 접어들면서 전시 상황에 버금가는 어수선한 시국 때문에 대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점이 무척 아쉽기만 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방자치법의 전면 개정을 광역·기초자치 행정에 있어서 거의 혁명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꼽는다.


32년 만의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

지역 행정에 혁명적인 변화 기대

동남권 통합 실현하려는 부울경

특별지자체 근거 마련에 큰 기대

지금부터 로드맵 마련 서둘러야

촘촘한 준비만이 현실화 앞당겨


더구나 내년은 지방자치제가 재실시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차근차근 성과와 노하우를 쌓아 온 대한민국의 지방자치가 올해 전면적인 법 개정을 계기로 실질적인 고도화 단계로 들어서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개헌이 이뤄졌다면 헌법에 반영되었을 자치분권의 이념과 가치, 방향성이 이번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안에 포함된 것도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면 개정안의 핵심은 ‘국민주권 시대’에서 ‘주민주권 시대’로의 전환이다. 지방정부와 의회 구성을 축으로 하는 단체자치에 비해 근거가 다소 미흡했던 주민자치에 대한 사항을 대폭 보강했다. 지자체와 중앙정부와의 관계가 중심인 단체자치에 비해 주민자치는 지방자치의 중심이 지역 주민임을 천명하고 지역의 이슈와 문제 해결에 주민의 자율적인 참여와 통로를 제도적으로 보장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획일적이었던 지방정부의 구성 방식을 주민 선택에 따라 다양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점도 각기 다른 지역 여건에 따른 주민의 선택권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지역 다양성을 지방정부 구성 때부터 반영한 결과이다. 또 주민에게 단체장이 아닌 의회에 직접 조례안의 제·개정, 폐지 청구권을 부여하고, 주민감사청구 요건도 대폭 완화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다. 지자체의 국제교류·협력에 관한 업무와 중앙지방협력회의의 설치 근거를 법적으로 명확히 한 점도 눈에 띈다.

메가시티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부울경으로서는 무엇보다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설치 근거가 명시됐다는 점에 단연 관심이 쏠린다. 특별지자체는 2개 이상의 지자체가 공동으로 특정한 목적을 위해 광역적으로 사무를 처리할 필요가 있을 때 설치할 수 있는 법인이다. 과거 지방자치법에도 대통령령으로 설치할 수 있다고 돼 있었지만, 선언적인 규정에 그친 데다 행정안전부도 30여 년간 시행령을 제정하지 않아 사문화된 상태였다. 그러다 이번에 법률로 상향해 세부적으로 명시되면서 구체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특별지자체의 설치는 궁극적으로 부울경이 행정 통합에 이르는 중요한 전 단계가 될 수 있다. 메가시티의 성사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풍향계로도 가능하다. 실제로 주요 선진국에서는 특별지자체의 자유로운 설립을 통해 광역교통이나 광역도시계획, 광역환경, 광역하천관리 등 광역에 걸친 문제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부울경도 메가시티로 가는 과정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난제를 처리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개 이상의 광역에 걸친 까다로운 문제를 중앙정부는 물론 기존 지자체도 아닌 제3의 특별지자체가 주체가 돼 지역 간 갈등 해소와 행정서비스 제공을 담당하는 것이다. 계층·권위적인 중앙정부 중심의 행정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자치행정을 지향하는 특별지자체의 출범은 개정 지방자치법의 착근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되리라 여겨진다. 물론 특별지자체의 설립과 운영에 행정안전부의 승인을 거치도록 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이 부분은 앞으로 반드시 수정·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특별지자체를 통해 메가시티를 실현하려면 부울경이 지금부터 구체적인 로드맵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개정 지방자치법은 공포 후 1년 뒤부터 시행되는 만큼 부울경은 이 1년의 기간을 허투루 보내선 안 된다. 특별지자체의 조직 구성, 예산·인사 등 운영 방안에 대한 협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특별지자체의 구성 과정에서 단체장 선출 등을 놓고 갈등이 오히려 증폭될 수도 있는 만큼 세심하고 촘촘한 준비는 필수적이다. 길이 열렸다고 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이뤄지는 일은 없다. 더구나 메가시티 실현은 난제 중의 난제다. 32년 만에 지방자치법 개정을 계기로 광역행정 혁명의 길은 열렸다. 부울경의 진정한 시험대는 이제부터다.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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