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블루 크리스마스, '셧다운' 그리고 종교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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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성탄절 아침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어느 날이 그렇지 않으랴마는 이번 성탄절도 세상에서 처음 경험해 보는 크리스마스인 듯하다.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집단 발병이 공식 확인된 코로나19가 이듬해 1월 20일 국내에 상륙하면서 세상은 온통 파랗게 질려 버렸다. 공황발작에 시달리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산책 중 경험한 증상을 그린 ‘절규’처럼 성탄의 기쁨조차 코로나 공포로 뒤덮였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즐겁고 낭랑한 인사는 어둡고 칙칙한 ‘블루 크리스마스’에 자리를 내주었다.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의 우울한 나날에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닥친 것이다. 마치 예정이라도 되어 있었다는 듯 성탄 전야인 24일부터 전국 식당에서는 5인 이상의 출입이 봉쇄됐다. 캐럴이 울려 퍼져야 할 거리도 차갑게 얼어붙었고 인적조차 드물어졌다. 대설주의보로 세상과 단절된 설국에 온 듯한 인상이다.


팬데믹 시대에 맞은 우울한 성탄절

셧다운 세상, 연말연시 감흥 사라져

코로나 신조어로 점철된 2020년

정쟁 골몰 정치권 ‘정치 블루’ 부채질

자신과 진리만을 등불로 삼는

종교의 참뜻 새삼 되새기는 시절


고립과 우울감을 더 키우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국은 일단 성탄 전야에서 내년 1월 3일까지 ‘연말연시 특별방역 강화조치’라는 봉쇄령을 내렸다. 부산에서는 해수욕장 등 해넘이·해돋이 명소가 폐쇄되며, 제야의 종소리도 비대면 녹화 방송으로 대체된다. 흥청거리던 연말연시 풍경은 이제 더는 찾을 수 없게 됐다. 세상은 셧다운 됐고, 언제쯤 ‘코로나 봉쇄령’이 풀릴지 기약조차 없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가 만만치 않다. 올해 등장한 신조어에는 시대상이 묻어 있다. 부정 접두사 ‘언’(un)과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가 결합한 비대면·비접촉의 ‘언택트’(untact)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 외출을 삼가는 ‘집콕족’, 활동량 감소로 살이 확 찐 ‘확찐자’, 자가격리로 살이 쪄 옷이 작아졌다는 데 착안한 ‘작아격리’, 재택근무 확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혼이 증가한 현상을 뜻하는 ‘코비디보스’(covidivorce) 등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정치 블루’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여야는 이전투구식 정쟁의 끝판왕을 보여 줬다. 정권 유지와 탈환의 권력 쟁탈에만 골몰하는 정치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달린 코로나19도 정쟁의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국가 비상사태를 맞아 정쟁을 셧다운하고 상생의 정치를 보여 주기는커녕 코로나19가 확산할수록 정쟁도 끝장을 보자는 식이어서 국민의 정치 블루를 부채질한다.

믿음과 희망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때를 맞아 종교의 부활을 새삼 생각해 본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시절을 견디며 통과해 나가는 데는 종교의 힘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봉쇄령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방역 주체로 나서는 게 절체절명의 위기 시대에 시민에게 부과된 미션일 터이다. 종교(宗敎·religion)는 어원으로 봤을 때 ‘으뜸의 가르침’이자 ‘(신과) 다시 묶는다’는 뜻을 가졌기에 세상의 근본을 되돌아보기에는 제격이다.

팬데믹 시대, 종교도 위기를 맞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종교 활동이 우선이냐 방역이 우선이냐를 두고 종교계와 정부가 대립하고, 여론도 분열되어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감염병 사태에서도 헌법이 뒤로 밀리거나 잊혀서는 안 된다”라며 “예배 참석 규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반한 것”이라는 판결을 내놓았지만 이마저도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최근 임명되는 바람에 생긴 결과라는 회의론도 있다. 여기에다 대형 교회는 30%, 소형 교회는 80%까지 헌금액이 줄어드는 등 종파를 가리지 않고 종교계가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오늘 태어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부처님은 마지막 가르침을 묻는 제자들에게 “자신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自燈明 法燈明)는 유언을 남겼다. 셧다운의 코로나 시대를 맞아 자기 자신 속으로 더욱 침잠하여 으뜸의 가르침을 만나라는 종교의 참뜻이 새삼 다가오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기도와 말씀 가운데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해 온 삶의 오랜 지혜가 번득이는 순간이다.

성탄절 아침,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로 코로나 시대의 평화를 기원해 본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forest@busan.com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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