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정치의 사법화’ 어떻게 막을 것인가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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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최후의 수단'… 깨어 있는 시민이 정치·사법 권력 감시해야

‘정치의 사법화’는 과연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여론을 첨예하게 갈라놓는 판결이 잇따르면서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의 뒷모습. ‘정치의 사법화’는 과연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여론을 첨예하게 갈라놓는 판결이 잇따르면서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의 뒷모습.

‘법 없이도 산다’는 표현은 착한 사람을 일컬을 때 주로 사용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마음이 곧고 착하여 법의 규제가 없어도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관용어라고 나와 있다. 좋은 사회는 ‘법 없이도 사는 사회’라는 말로 바꿔서 부를 수 있을까. 내 대답은 ‘글쎄올시다!’이다. 단언컨대, 법은 절대 선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때때로 착각한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물론 법이 없어도 사회 전체가 별다른 문제없이 돌아간다면 ‘법 없이도 사는 사회’라 할 만하다. 하지만 법은 예나 지금이나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법의 신중함 혹은 안정성을 추구하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여론을 크게 갈라놓은 몇몇 재판 결과를 보면서 ‘정치의 사법화’ 문제를 다시금 주목하게 됐다. 가장 가깝게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처분이 효력 정지된 다음 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대한민국이 사법의 과잉 지배를 받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졌습니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탄식이 들립니다”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에 대한 갑론을박은 있을 수 있는데,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정치의 사법화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사법의 정치화'를 언급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트위터. '사법의 정치화'를 언급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트위터.

정치의 사법화란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 문제들이 정치력과 사회적 공론을 통해 정치과정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사법 과정으로 넘어와 결정되는 현상을 말한다.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부의 적극적인 의지로 이루어진다기보다 분쟁해결기구라는 사법기구 속성상 다른 기관들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을 꺼리는 문제까지 법원으로 넘어오면서 생기기도 한다는 점이다. 실제 정치의 사법화가 진행되면 행정부와 입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사법부로 권력이 이전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보편적 문제이고, 또한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다.

그 우려는, 정치의 사법화가 민주주의의 후퇴 혹은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민감한 이슈가 잇따르면서 제대로 된 토론이나 사회적 합의 없이 사법적 판단의 문제로 바뀌는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가 말이다. 입법이든 사법이든 권력이 남용되면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정치 영역과 민주적 공론 영역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들이 소수 엘리트 법관에 의해 결정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법적 개입이 확대될 때 그것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건대, 한국에서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한 것은 2000년대부터였다. 굵직굵직한 정치적 사회적 갈등 사안들이 정치적 공론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법원으로 넘어가 해결되는 경향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의 사법적 해결,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조치법’ 관련 결정 등이 있었다. 이후 동성동본 금혼 위헌, 이라크 파병 여부, 낙천낙선운동의 선거법 위반, 간통죄 합헌, 사형제도 합헌, 존엄사 허용, 국가보안법의 폐지 여부,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 등의 사안을 다루면서, 사법부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다.


공개변론을 기다리는 헌법재판관들 모습. 연합뉴스 공개변론을 기다리는 헌법재판관들 모습. 연합뉴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최근 사안도 정치의 사법화 연장선에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우려된다. 다만,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 누구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는가 하고 따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누가 봐도 ‘사법’이 아닌 ‘정치’에 일차적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정치의 무능함과 무책임성이 사법적 판단을 요구하기에 이른 건 아닌가 싶어서다. ‘선출된 권력’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말이다. 오죽하면 진보든 보수든 쟁점을 사건화하여 검찰로, 법원으로, 헌법재판소로 쪼르르 달려갔다는 비아냥이 나오겠는가. 결국, 정치적 위험 부담이 큰 사건에 대해 결단을 회피한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그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이 먼저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후진 정치 현실이나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막을 수 없다.

물론 안타깝다. 정치의 사법화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문제 해결이 간단치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법대로’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뻔한 듯하지만, 여야 간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합의에 이르는 정신을 살리는, 기본을 충실히 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삼권분립 원리의 적용을 넘어서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 헌법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사실상 ‘신의 명령’ 같은 절대적인 규범이 사라진 세상에서 정의란 결국 올바른 절차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정의나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일부 전문가들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정치의 사법화를 막는 것은 어느 누구의 몫이라기보다는 우리 공동체 모두가 깨어 있어서 정치든, 사법이든 제대로 감시할 때 가능해지리라.


김은영 논설위원 김은영 논설위원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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