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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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부산역 주변의 노숙자. 부산일보DB 부산역 주변의 노숙자. 부산일보DB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말을 남겼다.인간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해야 할 유한한 존재이므로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자각한다는 말은 결국 삶을 자각한다는 말이 된다.

어느 때보다도 죽음의 의미가 더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이미 800명을 넘었다. 아마 조만간에 1000명을 넘을 듯싶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위로도 받는다. 그런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기억하지도 못하는 죽음들이 있다. 2020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올해 11월 사이에 숨진 비적정 거주자가 295명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홈리스라고 부르는, 노숙자나 고시원 같은 임시거처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한 분들 이야기다. 295명이라는 숫자는 실제 홈리스 사망자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실제 사망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신뢰할 만한 정부나 지자체의 통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295명의 대부분은 서울에서 돌아간 분들이어서 전국적으로는 훨씬 많을 것이다. 비적정 거주자만이 아니다. 자기 집이 있지만 가족이 없어 혼자 세상을 떠나는 분들도 많다. 가족이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나 지자체나 사회단체가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많다. 관련 시민단체인 나눔과나눔에 따르면 서울에서 지난해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는 423명이며, 올해는 상반기에만 303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경우도 실제 무연고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보면 당연히 훨씬 더 많을 터이다.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 자각해야

코로나로 주목받지 못한 죽음도 늘어

서울서만 홈리스 295명 사망 집계

경제적 이유 노숙자 숫자 더 늘 것

재난재해 일상·배려 상실로 이어져

진정한 코로나 극복은 관계의 복구


무연고자나 비적정 거주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무래도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홈리스’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이전에는 갑자기 실업자가 된다거나 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져도 가족과 이웃이라는 끈이 견고하게 서로를 묶어 주고 있었기 때문에 한 몸 누일 곳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사는 일은 없었다. 외환위기는 단순히 경제지표들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을 해체시키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해 버렸다. 물론 우리나라는 처음 약속한 것보다 훨씬 빠른 기간에 IMF로부터 빌린 돈을 모두 갚았고, 외환위기를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한 나라라는 칭송도 받았다. 하지만 한 번 파괴된 일상을 다시 회복하지는 못했고, 길거리로 내쫓긴 사람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우리가 지금 싸우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어쩌면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기가 조금 더 빠르거나 늦거나 간에 우리는 지금의 위기도 반드시 극복해낼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를 이야기한다. 물론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이 이전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져도 좋은 일이 있고, 달려져야 옳은 일이 있는 반면에 달라져서는 안 될 일들도 있다. 코로나19로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금지되고 훼손되고 있다. 더 걱정스러운 일은 오래 계속된 위기에 지쳐 이웃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도 잃어 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코로나 이후에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소중한 것들이다. 코로나 위기가 진정한 의미에서 종식되는 때는 더 이상 감염자가 나오지 않는 때가 아니라 정상적인 삶의 모습과 이웃들과의 관계를 온전히 복구하는 때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죽음을 자각하고 매순간마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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