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1821년 조선 콜레라, 2021년 한국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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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신대 총장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새해맞이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누가 모르랴. 삼백예순 닷새 긴긴 세월 동안 펼쳐질 꿈을 읊조리는 것이 한 해 첫날에 던질 덕담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하랴. 하지만 슬픔을 노래하고 어두웠던 과거를 끄집어 내어 반추해 보아야 하는 것이 작금의 처지임을 어쩌랴.

지난 1년 동안 ‘타나토스(thanatos)’가 세상을 휩쓸었다. 이 죽음의 신은 아직도 기세등등하여 온 세상을 횡행하고 있는데, 이런 암울한 광경은 지금부터 정확히 200년 전인 조선 순조 때도 있었다. 1821년 여름, 인도 갠지스강 하류에서 발생한 콜레라가 그곳을 지배하던 영국 군인과 상인들에 의해 그들이 닦아놓은 교역로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순조 21년이었던 그해, 남경과 북경을 휩쓴 콜레라는 중국 전역으로 번졌고 여름에 이르자 산해관을 지나 압록강을 넘어 평양부로 들어온다. 8월 13일 평안 감사 김이교가 ‘성 안팎에 갑자기 괴질이 유행하여 열흘 동안 1000여 명이나 죽어 목전의 광경이 매우 참혹하다’는 장계를 올린다. 그렇게 시작한 이 무서운 돌림병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팔도 전체에 퍼지고 이듬해에는 제주도까지 미치게 된다.


17~19세기 조선 ‘3대 역병’ 큰 공포

그때마다 수십만 민초들 참혹한 죽음

인간은 한낱 미물들 때문에 휘청거려

삶과 존재 성찰하라는 의미 아닐는지


사실 조선 역사 500여 년간 외침과 내분으로 평안한 시대가 별로 없었지만, 특히 병화나 기근보다 더 무서웠던 괴질은 줄곧 이 땅의 민초들을 괴롭혔다. 조선 시대의 3대 역병은 17~19세기에 걸쳐 세기마다 한 번씩 발생한다. 첫째는 현종 12년인 1671년으로, 〈현종실록〉은 ‘팔도에 기아와 여역(전염성 열병)과 마마로 죽은 백성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는 정도’라고 적고 있다. 둘째는 영조 26년인 1750년, ‘역질로 사망자가 끊이지 않아 시신을 묻어 주는 것은 왕정의 큰 일이었다’고 실록은 전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순조 치세에 발생한 이 돌림병이었다. 그해 10월 18일 자 〈순조실록〉은 ‘큰 도회지들이 초토화되어 도성 10리 밖에 시체가 산골을 메우고 있지만 장사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목민심서〉나 〈역서일기〉 등 문헌에 따르면 이때의 희생자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한 세대가 지나 이 땅에 도착한 프랑스 신부도 여전히 어마어마한 공포가 민중의 의식 속에 남아 있다고 기술하였다.

이런 엄청난 위기 앞에서 국가는 무슨 조치들을 취했을까. 우선 작금의 방식처럼 격리조치나 의료적 치료에 나서고 활인서(活人署)를 통해 등 갖가지 의료 지원을 하였으며, 또 역신에게 여제(귀신을 위로하는 제사)를 드리기도 했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조선왕조실록〉에 상세하게 나오듯 국정 최고위층들의 자세였다. 재앙이 보고된 당일 먼저 좌의정과 우의정이 자신들의 파직을 윤허해 줄 것을 간청했고, 이어서 영의정도 인책하고 자신의 퇴직을 임금께 아뢴다. 무엇보다 후대의 눈길을 끄는 것은 임금의 대응이었다. 순조는 재앙이 자신의 부덕으로 화합을 이루지 못한 탓이라고 자책하고, 당장 ‘5일 동안 수라상의 반찬 수를 줄이라’고 명한다. 그리고 대신으로부터 일반 관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잘못과 재난 대책에 대해 기탄없이 조언하도록 지시한다. 그렇다면 이 위기 앞에서 이 땅의 민초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전통 의술이 별무효과를 보이자 자신들이 의지할 만한 별별 방식을 다 취했는데 몸에 부적 지니기, 약초를 통한 민간요법, 승려나 도사에게 경문 읊게 하기, 무속인을 통한 축귀·제사나 기도에 매달렸다.

그러고 보니 그 시대의 콜레라나 이 시대의 코로나나 다 인간의 힘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것들이다. 유발 하라리는 생명 복제도 하고 우주 정복도 하는 인간을 두고 이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아니라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되었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이렇게 미세한 바이러스 하나에도 휘청이는 모습을 보면, ‘신이 된 인간’이 아니라 한없이 연약한 것이 우리네 생명인 듯하다. 굳이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도 조물주가 시간의 열차에 내리라고 명하면 하차하지 않고 버틸 인생이 누가 있으랴. 그렇다면 이 사라져버릴 부질없는 시간의 것들만 위해 생을 바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영원의 열차를 탈 준비를 하고 사는 것이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아닐까. 당시 콜레라가 남긴 엄청난 잔해 속에서 박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서학에 귀의하는 민중들이 많았고, 동학도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 여하튼 이 코로나나 저 콜레라나 우리로 하여금 멈춰 서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존재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산다면, 새해에는 최제우가 꿈꾼 세상의 개벽이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우리 각자에게서 삶의 개벽이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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