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새날을 맞이한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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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모더니즘 시인으로 더 널리 알려진 김기림은 생전에 두 편의 희곡을 썼다. 그중 한편이 ‘천국에서 왓다는 사나희’이다. 이 작품은 가난한 주인공 부부가 빚쟁이를 피해 천국으로 이주했다가 실망하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는 상상의 여행을 다루고 있다. 부부가 찾아간 천국은 이미 만원이었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기대와는 달리 지상의 간난신고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천국으로의 이주가 감행된 시점은 한 해의 마지막 날(섣달그믐)이었다. 실직하고 수중에 돈마저 없는 부부에게 이날은 지옥 같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외상값을 받으러 찾아온 이들은 부부의 집 앞에서 날을 샐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피할 곳을 찾지 못한 부부는 결국 묘책을 짜내고, 유서 아닌 유서로 자살을 위장하여 고단했던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탈출하고자 했다.


김기림 희곡 ‘천국에서 왓다는 사나희’

1930년대 민중의 고단한 삶 담아

올해 국립극단 온라인 공연 재조명

‘지금-여기’ 상황과 묘하게 겹쳐 공감

 

코로나로 올해는 ‘마음속의 해돋이’

저마다 새 희망의 빛을 찾았으면


이 작품이 발표된 1930년대는 순탄하지 않은 시점이었다(1931년 3월 3~21일 〈조선일보〉.) 조선 민중은 일제 지배하에 놓여 있었고 일제의 탄압은 민중의 삶을 옥죄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여파가 한반도에 밀어닥치자, 실직자가 넘쳐나고 구직자가 희망을 잃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한해를 조용히 정리하고 새날을 맞이해야 했지만, 정리해야 할 세상은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고 맞이해야 할 새날은 그 온전한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이 작품은 2020년 국립극단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고 동시대적 의미를 담은 공연으로 무대화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의 여파로 관객들이 들지 못하는 공연으로 진행되었고, 영상으로 포착되어 송출되는 운명을 따라야 했다. 안타까운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90년 전의 텍스트가 ‘지금-여기’의 우리 상황과 묘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점은 그나마 위안이라 하겠다.

2020년 한국 사회는 병리적 위기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매우 소란했다. 많이 가진 자와 높이 위치한 자들의 횡포가 극성을 부려 일반 서민들은 지상의 온전한 방 한 칸을 제대로 가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온한 방 한 칸을 건사하지 못하고 천국으로 이주를 결심해야 했던 부부의 심리를 저절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련되었다고나 할까. 이러한 정경을 관객들이 직접 극장에서 보았다면, ‘천국에서 왓다는 사나희’에 대한 ‘시대를 넘은 공감’은 여간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 준비 과정에서 이 작품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을 만났다. 환란을 피해 천국에 갔다가 지상으로 재입주해야 했던 부부가, 느닷없이 희망적인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악몽처럼 채무자와 영혼에게 쫓겨 다녔고 심지어 시체로 오해받아 해부될 뻔한 횡액까지 겪은 부부가 “새날 밝기 전에 이 괴로운 꿈들은 지나간 해의 깨어진 마차에 끌려 밤길을 떠났답니다. 자- 새해가 왔습니다. (…) 우리들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의 배와 새벽의 믿음을 가지고―” 새날을 맞이하라는 충고를 남긴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가는 해의 마지막 날을 무사히 넘겨 새해의 첫날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때까지의 고난이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기림은 1931년 발표 시점에서 “바다 위에 황금빛 웃음을 뿌리며 오는 그”, 그러니까 ‘새로운 희망’을 맞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아마도 새해를 맞아 바다 위로 돋는 해를 꿈꾸는 이들은 새해와 함께 오는 새로운 세상까지 염원하는 것일 테니, 그 세상의 빛을 기쁘게 가늠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 모른다. 단 올해는 마음속의 해돋이여야 하겠지만.


김남석 문학평론가 김남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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