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문재인 대통령 레임덕 왔나?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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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권, 권력 누수 현상 막으려면…초심과 전 국민 껴안는 리더십·활발한 소통 필요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리가 기우뚱거리며 걷는 모습에서 연유한 ‘레임덕(lame duck)’은 정치 지도자의 집권 말기에 흔히 나타나는 지도력 공백 현상을 말한다. 우리말로 ‘임기말 증후군’이라고 하며, 권력에 누수 현상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레임덕은 본래 18세기 영국 런던 증권시장에서 채무 불이행 상태에 놓인 증권거래인을 가리키는 경제용어였다. 19세기 미국에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의 권력 누수 현상을 지칭하는 정치용어로 사용되면서 현재의 의미로 굳어졌다. 레임덕 현상은 대통령의 권위나 명령이 제대로 먹혀들거나 시행되지 않아 국정 공백을 초래함으로써 국가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상태란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난해 12월 초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더니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잇단 전국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취임 이후 최고치 기록 경신 행진을 보인 반면 대통령 지지도를 나타내는 긍정 평가는 계속 최저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과정의 국정 혼란과 징계 무산에 따른 후폭풍 때문에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뒤에는 레임덕 조짐마저 보인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권이 앞으로 1년 4개월가량 남은 임기 동안 레임덕 현상을 피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 여론조사 변화 추이(2021년 1월 1주차 주중 집계). 리얼미터 제공 문재인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 여론조사 변화 추이(2021년 1월 1주차 주중 집계). 리얼미터 제공

■문 대통령 지지도 붕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4~6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와 긍정 평가가 각각 현 정권 출범 후 최고치와 최저치 기록을 갈아 치웠다. 부정 평가가 61.2%였고, 긍정 평가는 35.1%로 조사됐다. 부정 평가가 60%를 넘은 것도, 긍정 평가가 35%로 떨어진 것도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31일 중도층의 대거 이탈을 촉발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검찰총장 간 오랜 갈등 사태를 정리하고 인적 쇄신을 통한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포석으로 내각과 청와대 일부 개편을 단행했다. 하지만 국정 기조는 그대로인 채 돌려막기 인사를 단행한 데 대한 국민의 싸늘한 평가가 여론조사를 통해 최악 수준의 민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이뤄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부정 평가는 60%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고, 긍정 평가는 36~39% 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가속화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특히 <부산일보>와 YTN이 부산 시민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해 지난달 2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응답은 리얼미터 등의 전국 여론조사 결과보다 훨씬 높은 65.0%나 되는 데다 긍정 응답(31.8%)의 배 이상 높았다. 지난 연말 부산일보를 비롯한 한국지방신문협회 9개 회원사들이 공동으로 실시한 부산 지역 여론조사에서도 거의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해 64.5%가 ‘매우 잘못한다’거나 ‘잘 못하는 편’이라고 대답했으며, 32.3%만이 ‘매우 잘한다’ 또는 ‘잘하는 편’이라고 응답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들은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이 41.1%인 것을 감안하면, 중도층 이탈에 이어 진보 진영의 지지층 일부가 지지를 거둬들이면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양극화된 국론 분열을 낳은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나 24차례 대책이 발표된 부동산 정책의 실패 논란에도 4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던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진 셈이다. 지난해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4·15 총선 직후에 문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 같은 시점 최고치인 71%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지지도 하락과 부정 평가 상승 추세는 문 정권이 최대 위기에 놓여 있음을 방증한다.


2020년 12월 말 한국지방신문협회의 부산 시민 대상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 평가’ 여론조사 결과. 부산일보DB 2020년 12월 말 한국지방신문협회의 부산 시민 대상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 평가’ 여론조사 결과. 부산일보DB

■정권 교체 여론 높아져

문재인 정부의 국정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함께 정권 교체론도 제기되고 있어 정부와 여당의 긴장은 물론 국정을 쇄신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각 언론사가 리얼미터 등에 의뢰해 실시한 새해 여론조사 결과,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권 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정권 유지’보다 많은 것으로 드러나서다. 또한 대다수 지역과 연령대, 직업 계층에서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유력지인 A 신문사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2022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49.9%로, ‘정권 유지를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게 좋다’는 응답 34.8%를 크게 앞섰다.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B 통신사의 차기 대선 프레임 공감도 조사에서도 ‘정권 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51.3%로 과반을 넘겼다. ‘정권 유지를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의견은 38.8%였다. 〈부산일보〉 여론조사의 경우 부산 시민 59.5%가 오는 4월 7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정부·여당을 심판하기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권 심판이나 교체 여론이 대두되는 건 추 장관과 윤 총장 간 다툼으로 인한 국정 난맥상을 장기간 지켜본 국민의 피로도 증가와 보수층의 분노 상승, 코로나19 3차 대유행, 정부의 백신 늑장 확보 논란, 정권의 지속된 코드 인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현 정권에 대한 국민 불신을 키운 결과로 보인다. 더욱이 부산의 민심은 부산 출신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실망감과 중앙정부의 지역 홀대, 부산 경제의 침체 심화가 맞물려 전국 여론에 비해 더욱 악화됐다. 부산이 문 대통령의 정치 고향인 게 무색할 정도다.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정부의 여러 실정이 방치된다면, 결국은 레임덕이 앞당겨지고 민심을 더욱 잃기 마련이다. 문 정부와 민주당이 갈수록 싸늘한 여론의 현주소를 겸허한 마음으로 정확히 읽어야 할 때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지난 1일 중앙당사에서 ‘2021년 화상 신년 인사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제안했다. 김종호 기자 kimjh@busan.com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지난 1일 중앙당사에서 ‘2021년 화상 신년 인사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제안했다. 김종호 기자 kimjh@busan.com

■여권 분열… 레임덕 징후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 단임제에서는 레임덕 현상이 빨리 찾아오기 쉽다.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도 임기의 절반을 넘어 반환점을 지나면, 통상적으로 인기가 식으면서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 변화 추이가 보여 주듯 초기의 높은 지지율을 끝까지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문 정권의 레임덕 설이 이제서야 나오고 있는 것은 지난해 국민의 협조나 희생에 힘입은 코로나19 K-방역의 성공 효과와 제1 야당 국민의힘을 신뢰하지 못하는 중도층의 여전한 대통령 지지 덕분에 다소 지연된 측면이 없지 않다.

최근 들어선 여당에서 문 대통령 의중에 반하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을 만큼 여권 분위기조차 예사롭지 않다. 레임덕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윤 총장 징계 사태와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제안으로 불거진 전직 두 대통령 사면 논란 등 민감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여당 내 반대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여권의 분열이다. 지난 연말 문 대통령은 윤 총장 징계에 대한 법원의 효력 중지 결정이 내려진 지 하루 만에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면서 국민에게 사과했다. 검찰 개혁의 본질을 흐린 검찰총장 징계 문제를 일단락 짓고 제도적 개혁을 완성하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반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윤 총장 탄핵의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심지어 법관 탄핵이나 검찰·법원 유착 의혹까지 주장하는 등 강경한 태도로 문 대통령 발언을 거스르며 논란을 키웠다.

이낙연 대표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주장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레임덕 징후가 읽힌다. 신중한 성격의 이 대표가 사면론을 꺼낸 것은 임기 후반기에 ‘국민 통합’을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문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면권을 가진 대통령과 교감이 있었을 거란 관측이 있다. 그런데도 여당 의원 상당수와 당원, 강성 지지층의 반대론이 들끓는 바람에 사면 논의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만일 이 대표가 문 대통령과 무관하게 독단적으로 사면을 주장했다면, 그 또한 레임덕의 단적인 예다.

여권 내부의 반발은 문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운신의 폭을 좁힐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이 제대로 따르지 않아 코로나19 백신 조기 확보가 늦어졌다. 정부가 한 달 전 이란의 선박 나포 첩보를 입수해 청와대에 보고하고도 지난 4일 한국 선박이 나포되는 걸 막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모두 전형적인 레임덕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추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의 공식 사의 표명 요구를 뭉개는 하극상을 보였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곳곳에서 권력 누수 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일 한국 유조선 한국케미호가 걸프 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함정들에 의해 나포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4일 한국 유조선 한국케미호가 걸프 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함정들에 의해 나포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레임덕, 국가와 국민의 불행

국민 여론이 크게 나빠진 가운데 문 대통령의 리더십이 잘 통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지금, 남은 임기의 레임덕 현상을 예고하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지지율조차 새해 벽두부터 앞다퉈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힘에 밀리고 있다. 문 대통령의 권위나 힘을 더욱 약하게 만드는 요인의 하나다. 4·7 서울·부산시장 보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야권 후보가 모두 선두를 차지했다.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쉽게 잡히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세와 정부의 백신 늑장 대책 논란 속에 서울 동부구치소의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를 초래한 법무부의 무사안일한 대응,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유조선 나포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력, 부의 양극화 심화 등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전국 부동산값 급등, 오랜 경기 침체, 복지 및 인권 사각지대 증가 등 각종 민생 현안 역시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계속 이런 식이면 문 대통령 지지율이 과거처럼 쉽게 반등할 기회를 찾기가 힘들다.

오히려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하고 심화해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정책 결정이 늦어지고 공조직의 업무 능률을 저하시켜 국정 수행이 매우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레임덕은 집권을 노리는 야당에야 호재일지 모르지만, 국정 전반에 차질을 빚으며 국가와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길 것이 뻔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나라 경제와 민생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레임덕 현상은 취약계층과 서민의 고통을 키우며 전 국민의 불행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문 정권 지지 여부를 떠나 국민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주역에서 열린 KTX 이음 개통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주역에서 열린 KTX 이음 개통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레임덕 피하려면 어떻게?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레임덕은 대통령 개인과 민주당뿐 아니라 온 국민과 나라 전체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문 대통령이 레임덕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앞으로 지지층만을 위한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에서 탈피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당초 취임사에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소통을 국정 운영의 근본으로 제시한 바 있다. “주요 사안은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지난 2∼3년간 거의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국민 앞에 믿음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는 동안 국론은 분열돼 국민은 진보·보수 양극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이에 따른 국가 에너지 낭비로 경제는 뒷걸음질 쳤다.

올 2021년 신축년은 절대 허투루 넘기는 한 해가 돼선 절대 안 되는 국난의 시기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 조기 극복과 경제 회복, 민생 안정 등 해결이 시급한 대형 현안이 산적해 있다. 문 정권이 비상한 각오로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 국정에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문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 지지층을 넘어 전 국민을 껴안는 리더십으로 활발하게 소통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레임덕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에게 170여 석의 힘으로 독주 중인 거대 여당만 믿는 오만함과 강성 지지층만 쳐다보는 진영 논리는 금물이다. 하루빨리 후속 개각과 청와대 참모 개편을 통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을 기용하는 등 인적 쇄신이 절실하다. 동시에 민생과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집중하는 등 국정 전반을 쇄신해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문 정권이 올해만큼은 야당과의 대화와 협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콘크리트 지지층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중도층과 보수층을 포함한 민심을 잘 살피며 국가 재도약과 경제 회생의 토대를 마련하는 길이 향후 정권 유지에도 성공하는 방법이 아닐까. 다시 강조하자면, 소통을 앞세우고 민생에 주력하는 것이 지지율 회복의 첩경이다.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임기 마지막 해에 측근 비리 탓에 국정 지지율이 급락하며 극심한 레임덕 현상을 빚었다. 이제는 취임 때처럼 떠날 때도 박수를 받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의 지혜와 힘을 모으려면 문 대통령의 리더십부터 달라져야 한다. 포용, 화합, 협치, 통합을 통해 국정 안정을 실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문 대통령에게 아직 남아 있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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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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