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제2, 제3의 이태석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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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울지마, 네 이웃을 위해 울어!”

오는 14일은 ‘톤즈의 성자’로 불린 이태석 신부의 열한 번째 기일이다. 부산 서구 송도 판잣집의 홀어머니 밑에서 10남매의 아홉째로 태어났던 이 신부.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을 내던졌다. 대신 2010년 48세로 타계하기 전까지 가난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병원과 학교를 자기 손으로 직접 세웠다. 남수단 사람들은 “인종·종교 분쟁으로 200만 명이 숨진 비극의 땅에 움막 진료실을 짓고 하루 300명씩 환자를 치료한 영웅”이라고 그를 교과서에 싣고 기억한다. 한국에서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던 순간에도 ‘우물을 파러 가야 하는데…’라며 톤즈 마을과 아이들을 걱정했다.

그가 돌보던 소년들은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다. 남수단에는 70여 명의 제자가 이 신부의 뜻을 이어 가고 있다. 그가 생을 마감하면서도 바랐던 것은 사랑과 봉사의 향기가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지 않았을까?

이 땅에서도 그의 향기를 따라 ‘제2, 제3의 이태석’을 꿈꾸는 사람이 늘고 있다. 부산에서 이태석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시민 주도로 설립한 ㈔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가 ‘제10회 이태석 봉사상’ 수상자로 노정희 선교사를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고신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그는 29년째 필리핀 세부섬 북부 다나오에서 유치원부터 초·중·고를 차례로 세워서 교육을 통해 헌신하고 있다. 배출된 졸업생만 5000명에 이른다. 불법 총기 제조와 판매로 악명이 높은 다나오에서 2010년부터는 의사인 남편과 함께 지역 순회 의료봉사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태석 봉사상 후보자 심사 과정에서 페루와 우간다, 말라위, 탄자니아, 몽골, 베트남 등지에서 의료와 교육, 지하수 개발 등의 방법으로 사랑과 봉사의 가치를 퍼뜨리는 많은 분들이 후보자로 추천됐다고 한다. 사업회는 오는 13일 선종 11주기를 하루 앞두고 수상식을 단출하게 진행한다.

새해에는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춥고 닫혀 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명이라도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면 곧 그리스도께서 굶주리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송도성당 주임신부이자, 송도 소년의집 창설자로 이 신부에게 깊은 영향을 줬던 소 알로이시오 신부의 말이다. 큰 봉사는 어렵더라도 주변에 굶거나 추운 이웃은 없는지 한 번쯤 둘러보자. 오늘 하루, 나의 사랑과 관심이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는 작은 기적이 됐으면 좋겠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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