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인수자 찾기 별 따기, 폐업도 맘대로 못 하는 세상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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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수석논설위원의 시선] ‘코로나 폐업’ 쓰나미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 중구 남포동 한 음식점과 금정구 장전동의 이발소(작은 사진)에 휴·폐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부산일보DB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 중구 남포동 한 음식점과 금정구 장전동의 이발소(작은 사진)에 휴·폐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부산일보DB

‘임대’라고 써 붙인 가게가 늘어난다. 자영업의 불이 꺼져 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속되고,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니 장사가 될 리 없다. 철시한 점포에서 집기를 꺼내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 온다.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는 자영업자의 폐업…. 이숙경 씨(49·부산 해운대구 우1동)도 4년째 작은 마트를 운영하다 지난해 말 결국 가게를 접었다. 이 씨는 폐업 과정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폐업은 자랑거리는커녕 실패다. 다들 앞에 나서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이 씨는 코로나 시대에 누구나 자신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려울 때는 도와 달라고 말해야 한다. 폐업 문제를 언론에서 다루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생전 처음인 폐업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 사회는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이 씨는 이러다 ‘폐업의 아이콘’이 되는 게 아니냐면서도 끝까지 고마운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의 '폐업 일기' 부분만 일인칭 시점으로 정리했다.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인생 올인한 가게와 작별

냉장고·집기 ‘고철’ 전락

다 팔아도 단돈 얼마 안 돼

인수자 못 찾은 곳 많아

“남은 월세·인테리어 비용

건물주에 다 주고 나와”

당국 대책 구멍 숭숭

고통받는 소상공인 절규

절실히 받아들여야


열심히 했는데… 뭘 잘못했을까

2020년 12월 4일. 마지막 날이다. 이날까지 서둘러 남은 물건을 뺀다고 초주검이 되었다. 철거하러 온 분들은 먼지가 난다면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정든 가게를 떠나기는 힘들었다. 그동안 열심히 했는데… 뭘 잘못했을까? 그때 다르게 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다 내 탓 같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권투로 치면 잽을 연속으로 맞다가 코로나19라는 결정타로 쓰러진 셈이었다. 우리 가게는 시장 바로 앞에 있었다. 식당, 노래방, PC방, 헬스장 등 장사하는 단골이 많았다. 그들이 힘들어지니 같이 힘들어졌다. 폐업 신고를 제때 하지 않으면 더 손해를 볼 수 있어 두려웠다. 처음 하는 폐업인데 뭐부터 해야 할지 물어볼 데가 없었다. 가게 시설과 비품이 새것이라 값을 꽤 쳐서 받을 줄 알았다. 쇼케이스, 냉장고처럼 덩치가 큰 것은 매입할 사람이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끝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개업하려는 사람을 어디 가서 찾나. 고철로 넘어가면서 철거 비용만 늘어났다.

그래도 가게 인수자를 찾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연산동에서 식당을 하던 지인은 인수자를 찾지 못해 남은 계약 기간 월세와 인테리어를 원상복구하는 비용 1200만 원을 내고 나와야 했다. 우리 건물주는 인수자에게 월 임대료 50만 원을 올려 불렀다. 이 힘든 시기에 가게가 나간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지, 세를 올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개정된 임대차보호법 때문에 임차인이 바뀌는 시점이 아니면 세를 많이 올릴 수가 없다고 했다. 앞서 중국집 사장은 인수할 사람을 데리고 갔지만, 건물주가 계약해 주지 않았다. 몸에 문신이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나…. 중국집 사장은 권리금 한 푼 못 받고 나가야 했다.

건물주는 세입자와 계약하는 당일에 나도 나오라고 했다. 그 자리에 가야 할 이유는 사실 없었다. 하지만 계약이 한시라도 빨리 성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액받이’ 할 각오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건물주는 그동안 기분 나빴던 모든 것을 퍼부었다. 임대료를 깎아 주면 인하분의 50%를 세액공제받는 ‘착한 임대인’ 지원 제도를 카톡으로 보낸 일도 끄집어냈다. “그런 거 다 알아서 한다”면서 면박을 줬다.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세입자가 보증금과 선불 월세를 입금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이제는 밀린 거래처 대금을 줄 수 있겠다고 안도했다.

그런데 오후 늦게까지 기다려도 받아야 할 보증금이 입금되지 않았다. 부동산에 물어보니 “건물주가 이틀 후에 송금하겠다”고 전했다. 그 이유가 기가 찬다. 코로나로 너무 힘들어 지난해 처음으로 월세를 늦게 준 적이 있었다. 그 일로 건물주가 마음이 많이 상해 “돈이 안 들어올 때 심정을 느껴 봐야 한다”고 했단다. 노동자를 위한 인권상담소도 있는데, 건물주에게 당하는 임차인을 위한 인권상담소는 어디 없나. 그래도 세상에는 좋은 건물주가 많다는 걸 안다. 기분 나빠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틀 있으면 돈이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있기로 했다. 그게 최고의 복수라고….


공감하는 원스톱 서비스 아쉬워

부산시와 부산경제진흥원은 코로나 장기화로 폐업을 원하는 소상공인에게 사업정리 컨설팅과 업장 원상복구 비용을 지원하는 ‘소상공인 사업정리 도우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주가 원하면 세무, 채무, 노무, 회계 등 전문 분야 상담도 해 준다. 이 씨도 이 사업을 통해 폐업 컨설턴트를 만났다. 하지만 자영업자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행정관료처럼 기준만을 이야기해서 아쉬웠다고 했다. 자영업자는 폐업 문제도 원스톱으로 해결되길 바라는데, 각 분야를 상담하려면 새로 접수해야 하니 너무 번거로웠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로 집합금지가 되면 대출원리금, 임대료, 공과금, 각종 세금 등 돈을 납부할 모든 게 집합금지 기간만큼 같이 정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올라와 6일까지 20만 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이동주 의원은 지난달에 집합제한 및 금지가 내려진 업종에 대해서는 임대료를 제한하는 이른바 ‘임대료 멈춤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권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소지가 크고, 영세 임대사업자에 대한 배려가 없어 논란이 되고 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5.1%. 4명 가운데 1명이 자영업자다. 2019년 기준 국내 자영업 가구는 243만 7000곳에 달한다. 한국은행은 올 3월 정부·금융권의 소상공인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가 만료되면 유동성 위기를 겪는 가구가 10.4%(약 25만 3400가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자영업자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힘겨워 보인다.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김영석 사무처장은 “중소상인들은 규모 있는 업체들이 돈을 주고 정기적으로 맡기는 회계, 노무, 법률, 금융 서비스를 제일 어려워한다. 폐업할 때도 상인들 입장에서는 분야별로 따로 접수하기는 어렵다. 지역은행이 앞장서서 각 분야 정보를 몰라 곤란을 겪는 상인들을 위한 지원센터를 만들어서 원스톱으로 해결해 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에필로그

이 씨에게 코로나가 끝나면 장사를 다시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못한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온라인 시장이 너무 커져 앞으로 마트는 힘들 것으로 보기 때문이었다. 대형마트마저 온라인에 밀려 고전하는 마당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지만 모든 게 온라인으로 흡수되고 있다. 임차인과 상생하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건물주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건물주도 달라져야 한다.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이정식 회장은 “온라인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는 이제 살아남지 못한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온라인시장에 진출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지역화폐인 동백전을 캐시백으로 지원하면서, 상인들이 여기에 올라탈 수 있도록 컨설팅으로 지원해 무료 플랫폼으로 잘 만들면 그래도 해 볼 만하다. 동백전이 너무 중요한데 잘 안되어서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동백전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상인들에게 남은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11월에 중단되었던 동백전 캐시백이 곧 재개된다고 한다. 꽃피는 봄을 간절히 기다린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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