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외롭고 쓸쓸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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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스틸.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스틸. 영화사 진진 제공

함께 있지만 홀로 있을 때 보다 더 외로워지는 순간이 있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것 같은데 나 혼자만 세상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고독과 절망감이 몰려올 때, 그럴 때는 왜 전화 한 통 걸어주는 이도, 받는 이도 없는 걸까? 울리지 않는 핸드폰이 야속하기만 하다. 누군가 단 한명이라도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

장피에르는 한때 연극배우를 꿈꾸었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엄마와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 꿈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온 남자다. 물론 세일즈맨으로 성공해 여동생에게 경제적 지원도 하는 등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가끔씩 그의 얼굴에 비추는 공허함은 무엇일까? 그러던 어느 날, 같은 꿈을 꿨던 첫사랑 헬레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장피에르는 잃어버린 꿈과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말 못할 우울을 느끼게 되면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佛 베스트셀러 각색한 가족 이야기

꿈 포기하고 가족 위해 살아온 장남

첫사랑 전화받고 흔들려버린 세계

절제된 감정 연기 담담한 표현 공감


장피에르에게는 동생들이 있다. 마흔 살에 첫 임신을 한 작가 지망생 ‘쥘리에트’, 직장 동료를 짝사랑하고 있지만 소심해서 말 한마디 건네지 못 하는 ‘마티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실과 타협할 생각이 없는 사진작가 막내 ‘마고’. 남매는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우애 깊은 모습을 보인다. 특히 장남인 장피에르는 동생들에게 남몰래 용기와 희망을 주지만 정작 자신은 그들에게 위로를 받지 못하는 조금은 답답하지만 우직한 장남의 모습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가족이니까 함부로 해도 되고, 언제든 필요할 때 기대도 되는 존재라고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머니의 집에 모인 장피에르의 가족들도 서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동생들은 장남의 행동이 부담스럽고 못마땅하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별일 아닌 일로 말다툼을 하고 또 그렇게 어영부영 끝날 줄 알았는데, 그날따라 동생들의 말을 잘 들어주던 헌신적이고 착한 장피에르가 다르다. 참고 인내하던 장남이 가족들 앞에서 폭발하고 만다.

장피에르는 장남으로서 가족을 지켜야 하고, 좋은 아들과 아빠, 좋은 형, 오빠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은 늘 포기해야만 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준비 없이 만난 첫사랑의 충격적 고백과 가족들과의 불화까지 한순간에 몰아치자 그는 자신의 삶에 헛헛함을 느껴 절망적 선택을 한다.

사실 이 영화는 장피에르 역을 맡은 ‘장 폴 루브’의 절제된 감정 연기가 영화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 올린다. 누구에게나 다정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그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인물이라 내면연기가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연기력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이 영화의 가족애나 공허한 감정 등에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아르노 비야르 감독의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는 개봉 당시 프랑스 작가 안나 가발다의 원작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 단편집은 1999년 작은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는데 초판이 겨우 999부만 출간되었음에도 독자들의 입소문만으로 프랑스에서 19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원작은 11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감독은 단편 속 인물들과 사연들을 섞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로 각색하면서 원작과는 다른 볼거리를 담아내고 있다. 또한 이 영화는 장피에르가 떠나고 난 이후 남은 가족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포착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외롭고 쓸쓸하고 절망적인 현실이지만 무언가 또 다른 희망으로 이 세상을 견디고, 살아가고 있음을 영화는 덤덤히 확인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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