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빈 공간에 문화를 붓자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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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부장

빈 공간과 인연이 많다.

오래전 일본에 파견근무를 갔을 때 현지 빈집 문제를 기사로 다뤘다. 인구가 급감하는 규슈의 작은 섬이 빈집을 이용해 관광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소식에 파도가 높게 이는 바다를 건넌 적도 있다. 1년 전 겨울에는 원도심 아파트 내 빈집을 문화사랑방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취재했다. 빈집, 빈 창고가 갤러리 등 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것도 지켜봤다.

올겨울에도 빈 공간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빈방의 서사’라는 이름으로 빈집, 빈 점포를 예술로 채워 체험하는 프로그램부터 도심의 빈 공간을 찾아 이사를 다니는 전시까지. 예술가들이 빈 공간을 채우는 아이디어도 다양했다. 바닷가 작은 집은 모래시계 속 모래를 채워 시간을 돌아보게 했다. 누군가는 텅 빈 옥상에 엄마를 위한 방을 만들었다. 시장 안 빈 가게에서 상인들은 색을 체험했다. 세월의 먼지를 품은 비석마을 빈집과 소리를 느끼게 만든 초량동 저택은 ‘도대체 어떻게 찾았는지’가 궁금할 정도로 공간 재발견의 재미까지 주었다. 젊은 작가들이 빈집, 빈 상가, 빈 공장으로 이사를 하며 펼치는 전시도 흥미로웠다. 자라나는 이끼, 무허가 상담소 등 비어있던 공간을 채우는 예술가들의 감성은 때로는 기발함으로, 때로는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부산 새 문화지형 소개 신년 기획

중구 빈 공간 채우는 사람들 만나

또따또가 예술가 유입 효과 확인

문화는 코로나로 빈 마음도 위로


신년 기획 ‘부산 새 문화벨트가 뜬다’를 준비하면서 중구 곳곳을 돌고 이야기를 들었다. 중구는 오랫동안 부산 문화예술의 중심 역할을 해왔지만 90년대 들어 그 축이 서면 그리고 해운대로 이동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쇠퇴의 길을 걷던 중구에서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문화 지형을 찾아봤다.

한 지역 문화 전문가는 “중구는 신도시 같은 대대적인 재개발은 어려운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원도심의 기존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근대사 스토리에 의한 문화적 재생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옛 공간 속에 새로운 이야기를 부여하는 방식은 문화뿐 아니라 경제·사회적으로도 지역의 매력을 높인다.

취재를 하며 중구에 부는 새바람의 시작점이 어디인지가 제일 궁금했다. 원도심의 각종 시설, 곳곳에 산재한 근대 문화유산, 교통의 편의성, 부산역·부산항과의 연계성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사람의 이동이다. 특히 예술가의 유입이 중요한 요소로 눈에 들어왔다. 취재원 상당수가 “여기에 오면 작가가 많고, 그들과 교류가 있을 것을 기대했다”고 말했다.

예술가가 예술가를 부르고, 예술가를 따라 문화 관련 단체들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이 지점에서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또따또가를 통해 지금까지 1200여 명의 지역 작가와 단체들이 중구를 거쳐 갔다. 이들 중 일부는 중앙동·동광동 일대에 자립작가로 자리를 잡았다. 또따또가와 전혀 연이 없는 작가가 중앙동에 둥지를 트는 경우도 생겼다.

2020년은 또따또가 탄생 10년이 되는 해였지만 기념행사는 조촐했다.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행사를 할 수 없기도 하지만 2019년 말 부산시의회의 예산 삭감 사태 이후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은 탓도 있다. 지난달 30일 온라인 라이브로 진행된 또따또가 10주년 기념행사를 지켜봤다. 입주작가 이야기, 기념 책자 발간 소식 등이 전해지는 가운데 향후 10년 비전이 제시된 부분이 인상 깊었다. 또따또가 밖에 있는 청년들이 외부의 시선으로 신진 청년 작가의 유입, 오픈 스튜디오 운영, 코로나 시대 언택트 프로젝트 진행 등 미래를 위한 여러 제안을 했다. 또따또가도 새해에 여러 형태로 논의의 장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중구 토박이인 원로 예술가는 부산시가 공적 공간을 확보해서 ‘또따또가 촌’ 같은 것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여기서 ‘또따또가 특혜주자는 거냐’며 화들짝 놀랄 필요는 없다. 그 원로가 말한 뜻은 예술가 누구나 편안하게 쓸 수 있는 창작공간을 공공재원으로 확보해서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자는 이야기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자.” 원도심에서 12년 동안 인문학운동을 전개해 온 김수우 시인이 말했다. 문화에 대한 투자는 당장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효율성을 앞세우는 사회에서는 늘 후순위로 밀린다. 그렇게 뒤로 밀리다 보면 아예 말라 버린다. 김 시인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그 물이 흘러 개울이 되고 강도 된다”고 말했다. 또 밑 빠진 독에 부은 물은 땅 밑에 스며들어 새 생명을 자라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많은 것이 멈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코로나에 마음도 비어간다. 이렇게 빈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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