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사람에게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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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김진숙 위원의 명예회복과 복직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 연합뉴스 김진숙 위원의 명예회복과 복직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 연합뉴스

한 농부가 먼 마을에 땅을 사러 갔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는 땅 넓이를 측정할 줄 몰라 하루 동안 농부가 걸은 만큼의 땅을 같은 값에 팔았다. 땅에 욕심이 생긴 농부는 이른 새벽부터 걷기 시작했다. 한낮이 지나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쯤 농부는 자신이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달았다.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까지 돌아가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농부는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막 해가 지려는 참에 도착한 농부는 그만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의 이야기다. 사람이 자기 한 몸을 누이는 데는 얼마나 땅이 필요할까? 아마 한 평이면 충분할 터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엉뚱한 궁금증이 든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는 얼마나 땅이 필요할까?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먹고 자고 똥누는 데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말이다.


열악한 환경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부끄러운 모습

김진숙 위원의 30년 전 떠올라

여전히 김 위원은 복직 투쟁

30년 동안 노동의 현실은 그대로


한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외국인 여성 노동자가 얼어 죽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동사가 아니라 지병이 사인이라고 발표했지만, 건강하던 젊은 노동자가 갑자기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는 이야기는 쉽게 믿기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 그것이 직접적인 사인은 아닐지 몰라도, 이 한겨울에 전혀 난방도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해 온 일이 죽음과 무관할 리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지자체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 실태에 대해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결과를 보니 너무 참혹해서 말이 안 나온다. 많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숙소가 아닌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식사가 부실한 것은 물론이고, 난방이 전혀 안 되는 잠자리에 더운 물이 없어서 찬물로 몸을 씻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런 일들 가운데 가장 믿기 어려운 일은, 물론 아주 일부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화장실이 없어서 고무 대야와 널빤지로 만든 임시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외국인 노동자라지만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OECD 회원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사람 사는 일에 어찌 내국인, 외국인이 다를 수 있는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화장실 이야기를 듣다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30여 년 전에 내가 일하던 단체에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한 분을 초청해 여성으로서 드물게 용접공이 된 사연이며 노동운동을 하게 된 계기며 해고된 사정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짐작이 가시겠지만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해고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바로 그분이다. 그때 들은 이야기 가운데 유달리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첫째 둘째 손가락을 꼽는 조선소거늘, 그때 노동현장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임시 화장실에 드럼통으로 칸막이를 해 놓고 용변을 봤다고 한다. 그런데 드럼통의 높이가 사람 가슴 정도밖에 안 되니 지나가다가 들여다보면 앉아서 일보는 사람 머리가 다 보였다는 것이다. 남성 노동자들끼리도 민망한 일인데, 여성 노동자들의 난처함이 얼마나 컸을까.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세계가 환호하던 K-pop 열풍을 창조했고 인권변호사를 하던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은 것도 많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노동자들은 여전히 똥 눌 곳이 없어 불편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은 여전히 해고노동자인 채로 정년을 맞이했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정의를 실현해 달라고 외치는 현실도 30년 전과 똑같다. 얼마 전 암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던 김 지도위원은 치료를 중단하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도보 행진에 나섰다. 청와대 앞에서는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요구하는 종교사회단체 회원들의 단식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30년 전이었다면 대통령이 아닌 부산의 인권변호사 문재인은 부산의 해고노동자 김진숙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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