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男걷는女] 내 목청을 키운 건 8할이 비행기였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진유민 jmin@busan.com , 이재화기자 jhlee@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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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소음 탓 주민들 목소리 유난히 커
턱없이 부족한 배상액, 이주는 꿈도 못 꿔
김해공항 옆 딴치마을 국가 상대 손배소
'월 3만 원 배상' 첫 승소…대법원 판결 남아


"거기서 왜 자노?" "여기서 잠이 올까?"

'불면의 시대'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다양한 현장, 그 속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과 접선하는 '잠'입취재.

시끄럽거나 조용하거나, 덥거나 춥거나, 열악하거나 호화롭거나. 어디든 눈을 감고 자겠습니다. 저는 '자는 남자'입니다. 잘 자요~


<굉음 아니 '광(狂)음'>

자는 게 가장 쉬운 거 아니냐고 노래를 부르는 한 남자. 어디든 머리를 대면 잠에 빠지는 남자. '본캐'는 기자. 2주에 한 번씩 '부캐' 잠만용(이하 '용')이 되기로 했다. 잠을 잔다고? 예능인지 다큐인지는 불분명하다. 자는 거다. 그냥.

첫 번째 잠자리. 김해공항 옆 강서구 강동동 딴치마을. 가장 추운 날 선택된 가장 시끄러운 곳이다. 용은 마을에서 가장 양지바른 정자를 찾았다. 하늘은 맑은데 볕은 들지 않는다. 바람을 막을 벽 따윈 없다. 짓궂은 PD들은 논두렁을 첫 취침 장소로 골라왔다. 콘텐츠만 생각하는 괴물이다.

지난 7일 낮 12시 40분. 용은 정자 바닥에 침낭을 펼쳤다. 뭐든지 다 파는 '국팡'에서 고른, 명품 침낭 부럽지 않은 1만 9800원짜리 녀석. 정자 바닥 나무는 고급 침대마냥 안정감이 넘친다. 원목이다. 용의 몸엔 핫팩 4개, 침낭 안엔 핫팩 5개를 장착했다. 핫팩을 붙인 목 뒤가 뜨겁다. 이제 잘 시간이다. 점심시간에 자는 건 모든 직장인의 로망. 용이 그걸 하고 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용은 여러 차례 되뇌인다.

침낭 안은 순간만 따뜻하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매서운 바람이 몰아친다. 용은 차분히 눈을 감는다. 체온이 조금 올라간 탓일까. 몸이 노곤해진다. 잠신이 가까이 오는 듯하다.

침낭 머리 쪽에 앉은 애착 인형 잠만보. 용의 얼굴을 향해 직빵으로 날아오는 바람을 막아준다.

편안한 느낌이 몰려온다. '왱~~~~~~~~~~~~~~~~.' 누가 소리를 내었는가. 바람을 뚫고 스멀스멀 커지는 소리. 굉음이 아니라 '광(狂)'음이다.

용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비행기에서도 잠 잘 자잖아?'

용은 다시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유튜브에서 본 수면을 부르는 호흡이다. '후', '하', '후', '후'. 호흡을 하려는 찰나. 잠이 밀려든다. 순간 '여기서 잠들면 몸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용의 머리를 스친다. '용아 괜찮아. PD님과 작가님이 깨워주실 거야.'

용은 기절했다. 기절이라기보다 잠깐 의식을 잃었다. PD가 침낭 밑을 흔든다. '아 살았구나.' 용의 온몸에 추위가 엄습해온다.

30분 조금 넘게 잔 느낌인데 실제로 잠든 건 15분 가량. 용은 13년 전을 떠올렸다. 고3 선배들 응원하러 고등학교 앞에서 밤을 새다가 잠시 잠들었을 때 기분이다. 자는 사이 비행기는 세 대가 지나갔다고 했다. 용은 잘 잤다. 오늘 하루도.


추위 탓에 제대로 펼 수 없는 손가락 5개가 잠만보 인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다. 자고 일어나서 개운하다고 느꼈지만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추위 탓에 제대로 펼 수 없는 손가락 5개가 잠만보 인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다. 자고 일어나서 개운하다고 느꼈지만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세상에서 제일 시끄러운 마을>

■ 바람이 분다

공항 주변 마을마다 바람이 불었다. "그놈의 공항 바람이 또 불기 시작했나 보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회장님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액정 화면을 재빠르게 긁었다. 회장님에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유독 많이 걸려온다. 뉴스에 공항이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맴돌 때쯤, 아니 홍수처럼 전화가 밀려오고 나면 TV와 신문이 공항 이야기로 도배된다. 대통령, 시장 같은 높은 사람 이야기에 회장님의 이야기가 함께 실리는 건 더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16년과 2020년은 전화기가 불났던 한 해였다. 친절한 목소리로 용건만 물어보고 끊는 사람들.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화 말미 이름을 다시 묻고 번호를 저장했다. 이젠 아니다. 바뀐 게 없었던 탓이다. "말해서 뭐 하나?"란 생각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집 위를 덮치는 불쾌한 소리도. 그 소리의 원인도. 해결방법도. "시끄러운 게 일상"이라는 말 만큼이나 그대로다.

오랜만에 걸려온 모르는 번호의 전화. 몇 년 전 통화를 했다는 말에, 집회 현장에서 본 적 있다는 소개에,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전화기 너머 2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물었다.

"거기 비행기가 많이 시끄럽습니까?

"일단 와보이소."

오늘따라 비행기가 더 낮게 나는 것 같다. 하늘이 맑은 탓이다. 굉음을 내며 4층 높이 공장 창고 위를 아슬하게 스친다. 민항기 소리와는 묘하게 다른 공군 수송기 소리다. 배기구가 2개인 민항기가 '우웅'거리며 불쾌함을 유발한다면, 배기구 5개로 순식간에 마을을 관통하는 공군 수송기는 귓구멍을 순간 '왁'하고 때린다. 엔진이 뿜어낸 매연 탓에 비행기가 훑고 간 자리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회장님은 공군 훈련 날이면 하우스와 집 문을 더 꼭 잠근다. 30년 동안 계속된 일과다.



비행기 밖이 이렇게 시끄러운 줄 비행기 안에서는 몰랐다. 회장님은 길가에 지나가는 자동차 보듯 아무렇지 않게 비행기 밖이 이렇게 시끄러운 줄 비행기 안에서는 몰랐다. 회장님은 길가에 지나가는 자동차 보듯 아무렇지 않게 "저기 지나가네 비행기"하며 용에게 마을을 소개했다.

■ 돈 안 되는 땅

마을에서 10분 정도 벗어난 식당. 얼마 전 회장님은 마을 주민 3명과 정부의 '소음 등고선'을 놓고 누룽지가 식도록 토론을 벌였다. 웨클, 등고선, 지원금…. 밭고랑 쉽게 이는 법, 트랙터 싸게 빌리는 법 대신 일상이 된 대화 주제다.

5분쯤 지났을까. 식당 주인이 다가왔다.

"조용히 좀 해주이소. 다른 손님들도 계시는데. 이래 싸우시면 안 됩니더."

마을 사람들은 왕왕 싸우지 않아도 싸웠단 소리를 듣고, 목소리 좀 낮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나이가 들어 가는 귀가 먹었나 싶었다. 하우스에서 일할 때 트로트 노래도 가장 크게 틀었고, TV 소리도 양껏 올렸다. 평화로운 농촌 마을에서 굉음을 뚫으려면 볼륨은 더 크게, 목청은 더 세게 힘줘야 한다.

마을 사람들에겐 도시로 나간 아들·딸의 "왜 그렇게 크게 말하냐"는 핀잔이 익숙하다. "아빠 왜 거기서 살아? 이제 이사 좀 해. 우리랑 같이 살자"는 자녀들의 말. "잠시만… 비행기 지나가고 통화하자"는 부모의 말.

통화하려면 집 밖으로 나가는 대신 집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문을 닫아야 한다. 보통은 전화가 걸려오면 집 밖으로 나가지만 마을에서는 전화가 걸려오면 사람들은 집 안으로 들어간다. 문 창틀은 이가 나갔는지 웃풍이 숭숭 들어온다. 몇 년 전 소음 피해 지원이랍시고 받은 창이다.

"제값을 안 쳐주는데 어찌 집을 파노?"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겨우 삼킨다. "갈 데가 어딨냐"며 겨우 둘러댔지만 현실 모르는 건 애들이나 나라나 마찬가지다.

토지매수청구자금. 정부에선 50억 원을 쏟아붓는다지만 남의 돈이다. 2010년 생겼지만 마을을 떠날 종잣돈이 되진 못했다. 최소한 지금과 비슷한 곳으로 가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돈 안 되는 땅에 살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 군사기밀

회장님으로 불린 지 12년. 공항 인근 마을 사람들은 비행기 소음과 싸우라고 백남기(60) 씨를 김해공항 소음피해대책위원회 회장으로 선출했다. 백 씨는 마을 주민들이 뭐라도 더 받게 해주자는 마음에서 흔쾌히 회장직을 맡았다.

그동안 '소음 등고선' 지도를 득도했다. 5년에 한 번씩 소음 등고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젠 지도를 보지 않고도 설명할 수 있다.

처음엔 전문가들이 어련히 잘했겠지 싶었다. 그런데 소음 피해 범위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다른 공항 사례도 공부하며 지식을 넓혔다. 국토부의 소음대책사업, 구청에서 하는 주민지원사업도 빠삭히 알게 됐다.

지난해 11월 고시된 등고선에도 목소리를 냈다. 분명 마을은 더 시끄러워졌는데, 부산 쪽 소음 피해지역은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다.

예전엔 열 번 날던 공군 수송기가 요즘 스무 번은 나는 것 같다고 보이는 공무원한테마다 말했다. 하지만 공군 수송기는 지원사업에서 제외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공군이 전투기를 몇 번 띄우는지는 군사기밀이라 공개가 안 된단다.

2003년 공항 인근 주민을 지원하는 법이 생겼다. 마을에 지원이랍시고 나오는 건 2500원 하는 KBS 수신료와 냉·난방비와 창틀 교체가 전부다. 마을 주민들은 "현금으로 달라 캐봐라"고 회장님을 압박한다. 소음대책사업은 현금지원이 안 된다고 법에 못 박은 이상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회장님은 등고선 박사다. 소음대책 정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가덕신공항이 마을에 어떤 의미인지 막힘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추운 날 왔다며 타주신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었다. 회장님은 등고선 박사다. 소음대책 정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가덕신공항이 마을에 어떤 의미인지 막힘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추운 날 왔다며 타주신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었다.

■ 2.86원

계란으로 바위를 안 쳐본 건 아니다. 인근 마을에서 나라를 상대로 소송을 넣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김해공항과 북쪽으로 700m 떨어진 딴치마을. 전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마을이다. 1년 평균 소음이 93.2웨클(WECPNL·항공기 소음 측정 단위). 80웨클이 넘어 일상생활이 어렵다는 법원 판결을 받은 소음피해 3종 지역이다.

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주민 56명에게 1인당 월 3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공기가 날아다닌 횟수로 따지면 굉음 한 번당 2.86원밖에 안되는 돈이다. 그래도 마을은 들썩였다. 그동안 국가에서 항공기 소음을 피해로 인정해 현금 배상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도 돈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회장님이 사는 월포마을은 딴치마을과 마찬가지로 김해공항에서 가장 가깝다. 다만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700m 떨어져 있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면 월포마을을 지나 비행기가 착륙하고, 남풍이 불면 딴치마을을 지난다. 두 마을 모두 비행기가 공항에 닿기 전 지나는 마지막 사람 사는 곳이다.

회장님은 주민들의 희망 섞인 물음에 말을 아꼈다. 2006년에도 소송을 해본 적이 있었다. 대법원까지 가는 지난한 시간. 지난하다 못해 괴로운 세월. 마을을 때리는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보다 더 속을 태웠다.

회장님이 주민들에게 즉답을 못 한 건 15년이 지난 지금, 조금은 희망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을이 더 시끄러워졌다는 '아이러니한 희망'이다. 김해공항에서 웬만한 동남아 지역은 모두 갈 수 있게 된 뒤로, 새벽마다 2분 5초당 1대씩 비행기가 하늘로 오르내렸다. 2015년에 비해 소음피해 면적은 12.11㎢로 2.5배, 피해 인구는 7만 4056명으로 9.8배 늘었다.


김해공항을 뒤덮은 빨간선은 소음 90웨클 이상 지역이다. 너무 시끄러워 사람이 살 수도 없고 살지도 않는 곳이다. 사람이 사는 딴치마을과 월포마을은 빨간선보다 한 단계 낮은 녹색 등고선 안에 있다. 부산시 제공 김해공항을 뒤덮은 빨간선은 소음 90웨클 이상 지역이다. 너무 시끄러워 사람이 살 수도 없고 살지도 않는 곳이다. 사람이 사는 딴치마을과 월포마을은 빨간선보다 한 단계 낮은 녹색 등고선 안에 있다. 부산시 제공

■ 여덟 번의 굉음

"할 이야기도 없구만, 진짜 왔는교?"

돌고 돌아 겨우 마을을 찾아온 용은 오는 길에 본 비행기 얘기를 늘어놓았다. 믹스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용은 눈치 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와, 마을이 엄청 시끄럽네요." "공항을 가덕도로 옮기면 주민들 살기가 좀 나아지겠네요?"

회장님은 가덕도는 국제선이고 김해공항은 국내선이 된다는 걸 사람들이 모른다고 답한다. 대형기와 소형기 소리를 구분하는 주민도 있다는 말에 용은 믿지 않는 눈치다.

대형 비행기는 마을 위를 날기 전부터 비행기가 온다는 사실을 온몸이 감지할 수 있다. 가덕도에 신공항이 생겨도 공군 비행장이 김해공항에 그대로 있다면 바뀌는 건 없다. 보상금은 줄어들고, 전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마을이란 사실은 그대로다.

마을 초입 빈 식당에서 회장님과 용이 만나는 1시간 30분 동안 8번의 굉음이 스쳤다. 둘은 결과 모를 이야기를 마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눈앞에서 비행기가 바람과 맞서며 착륙을 준비한다. 이날 마을엔 유독 강한 바람이 불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촬영·편집=이재화·정수원 PD, 진유민 작가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진유민 jmin@busan.com , 이재화기자 jhlee@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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