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나이듦의 품격에 관하여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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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라이프부장

‘안되는 걸 알고 되는 걸 아는 거/세월한테 배우는 거/…/두 자리의 숫자 나를 설명하고/두 자리의 숫자 잔소리하네/…/이렇게 떠밀리듯 가면/언젠가 나이가 멈추는 날 서두르듯 마지막 말할까 봐/…/이제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

지난 2020년 마지막 날 들었던 ‘나이’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이다. 많은 이들이 지난해는 도둑맞은 기분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1년이 훅 지나가 버린 기분이다.


코로나19로 2020년은 도둑맞은 듯

속절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은 기분

2021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3주 차

나이듦의 품격 진지하게 고민해야

‘꼰대’가 아닌 진짜 어른 필요한 시대

책임 있는 행동으로 어려움 헤쳐나가


2021년이 시작된 지 어느덧 3주 차. 속절없이 나를 설명하는 숫자에 1만 더해졌다. 고백하자면, 젊은 시절 나는 나이에 관해 유난히 민감했다. 30살을 앞두고 “어느새 내가 계란 한 판 나이가 된다”라는 사실에 선후배에게 불안감을 토로했다. 당시 선배가 “지금 이러면 40이 되면 어떻게 할래”라고 물었고 나는 “40은 인생 거의 끝난 것 아니겠냐”라는 발칙한 대답을 해서 선배를 분노하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IT강국, 대한민국은 유난히 변화가 빠르다. 첨단기기의 변화에 익숙하지 못한 중년 이상 세대는 자꾸만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동안이 자랑이고 젊음이 칭송받는다. 사회생활하려면 화장으로, 염색으로 주름과 흰머리를 가리는 게 매너라고 여겨진다. 심지어 나이가 늘어난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꼰대력’이 상승한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나를 대표하는 숫자가 늘어난다는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새해를 맞아 나이듦의 품격에 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관련 책들을 펼쳤고, 주변의 선배와 선생님들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에 관해 물었다.

여러 선배가 공통으로 나이가 든다는 건 비움의 연속이라고 설명했다. 삶은 가방을 부지런히 싸고 푸는 여행이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 열심히 가방을 싸고 여행 중에도 수시로 가방을 풀고 정리한다. 가방을 풀어서 준비했던 물건을 사용하며 가방은 점점 가벼워진다.

때론 너무 많은 물건을 가방에 담아와서 가방의 무게 때문에 정작 즐거워야 할 여행이 괴로워진다. 여행 경험이 쌓이며 가방은 무조건 가벼워야 좋다는 걸 이젠 알고 있다.

나이듦 역시 비슷한 이치일 듯싶다. 가방을 비워야 되는 걸 알 듯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가려내고 그걸 버릴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제대로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닐까.

‘화병(hwa-byung)’이라는 말을 세계정신의학용어로 등록시킨 정신과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 이 박사는 86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며 나이듦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의 책 〈어른답게 삽시다〉에선 시간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자기를 온전히 이해할 때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고 다양성도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잘못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대우받고자 하는 태도이다. 어느 모임에나 꼭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가르치려는 행동마저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을 꼰대라고 부르게 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전에 겪지 못했던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다. 책임을 지고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진짜 어른, 나이듦의 품격이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겨우 16개월에 끔찍한 학대를 받고 죽은 정인이. 우리 사회 어른들이 정인이의 가족이 돼 가해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보내면 어떨까. 코로나 시대에는 비대면으로 안전하게 예배를 진행하는 것이 참된 종교인의 자세라고 교회의 어른 격인 장로, 권사들이 나서서 주장하고 실천해주면 좋겠다. 명절 앞두고 집안 어른이 먼저 자식들에게 연락해 코로나시대 사정을 이해하니 올 설에는 안내려와도 된다고 배려하는 미덕이 필요하다.

‘청년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취업 시장은 막혔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결혼조차 미루고 집값이 비싸 집 장만은 포기했다는 2021년의 대한민국 청년들. 힘든 청년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젠 진짜 어른들이 나서야 할 차례가 왔다. 나이듦의 품격을 갖춘 어른의 책임 있는 행동들이 전대미문 코로나 시대를 헤쳐가는 다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teresa@busan.com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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