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일 없는 도시, 사라지는 사람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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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역시나 부산에 눈다운 눈은 내리지 않았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대설특보가 내렸다면서 뉴스마다 떠들어 혹시나 했다. 우리는 서울 소식을 너무 많이 보고 듣는다. 부산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온 후보들의 면면이 더 익숙한 까닭이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대표 공약을 훑어보니 아파트 공급을 늘리겠다는 부동산 대책 일색이다. 이럴 거면 수백억 원의 비용을 치르면서 민선시장을 뽑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과거 부산과 서울시장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불도저 시장’이란 별명을 가지게 된 김현옥 씨가 있었다. 서울을 바꾼 그의 발상은 판잣집을 밀고 아파트를 올리는 것이었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가 나고 ‘서울이 만원’이라는 이야기가 생긴 1960년대 일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다시 출마하면서 “나라가 살려면 수도가 살아야 한다. 서울이 멈추면 곧 대한민국이 멈춘다”라고 했다. 전에는 서울이 대한민국보다 중요하다더니, 사람이 참 한결같다.


서울시장 보선 부동산 공약만 난무

전 국민 관심사로 국가를 생각해야

“서울 인구 줄여야” 반가운 주장도

지역대학 공멸 위기 현실화 조짐

부산, 장년층 수급자 급증 적신호

부산시장, 일자리 공약으로 겨뤄야


외국에서는 서울시장을 한국의 이인자로 본다. 대권의 디딤돌로 여겨지니 틀린 말도 아니다. 서울시장에 나오려면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서울이 작아져야 한다는 주장이 들려 반갑다.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서울시장에 출마하면서 “서울 인구를 적정화하고, 서울 주도 균형발전 전략을 시행함으로써 서울특별시를 해체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학의 서울 집중을 해체하기 위해 ‘국공립대학 통합 네트워크’ 정책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여의도를 금융특구로 만들겠다는 식의 지방을 맥 빠지게 만드는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다. 전 국민의 관심사인 서울시장 선거에선 서울만 잘살겠다는 독주가 아니라, 함께 살 미래를 이야기하는 합주가 나와야 한다.

제2도시 부산의 현실은 암울하다.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불길한 예언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산지역 15개 4년제 대학이 올해 정시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경쟁률 3 대 1을 넘긴 대학은 4곳뿐이었다. 정원 미달의 마지노선이 깨지고 말았다. 지방대 몰락은 ‘인 서울’ 선호와 동전의 양면이다. 지역대학에 남아도 일자리를 찾아 다시 수도권으로 간다. 이렇게 부산 청년 1만 명 이상이 매년 고향을 떠난다. 그 숫자가 지난 5년간 무려 7만여 명이다.

지난해 부산지역 신규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전년에 비해 77.8%가 늘어 2만 4032명이 되었다. 그중 절반이 40~50대 장년층이었다는 조사 결과는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장년층이 무너지면 가족과 사회의 위기로 이어진다. 실제로 이들의 자녀 세대에서도 많은 신규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나왔다. 건강한 일자리보다 불황에 쉽게 흔들리는 임시·일용직 비율이 높은 까닭이다. 실직하면 끝이다.

부산에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절실하다. 〈부산일보〉가 실시한 ‘부산시장 찾기 일문백답’도 전 세대를 아울러 공통으로 내놓은 주문이 경제 살리기였다. 구체적으로는 기업 유치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요구했다. 제조업체인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조차 지방이 모든 조건을 제시해도 마다하고 수도권으로 향하는 마당이다. 전임 부산시장들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특히 ‘일자리 선거’가 돼야 한다. 후보들은 부산 경제의 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부산시민이 힘들게 쟁취한 가덕신공항은 53만 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부산시장은 정부에는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가덕신공항 조기 착공과 부울경 메가시티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부산시장 예비후보들 가운데 아무도 일자리를 제1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았는데 전략을 잘못 짠 것이다. 어반루프로 부산을 15분 만에 주파하고, 남항 앞바다 인공섬에 스마트시티가 들어서도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일이 있어야 빨리 갈 필요가 생긴다. 자연섬 영도는 부산에서 땅값이 가장 싸다.

정치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시장 후보들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고민해서, 그 아이디어로 경쟁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이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발의한 혁신도시법이 좋은 사례다. 지역인재 의무채용 비율을 50%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이다. 부산대 의예과가 의료인력 역외유출이 커지자 정원 70% 이상을 지역인재로 선발하기로 했다는 결정도 의미가 있다. 이런 논의를 치열하게 하자. 중대재해법 처리 과정을 보니 민주당은 진보를 포기한 모양새다. 시장 선거에서 진보·보수라는 이념 전쟁, 아무 의미 없다. 일자리 전쟁을 해야 부산이 산다.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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