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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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은 딱 두 명이다. 윤석열 현 총장과 문무일 전 총장이다. 김수남 전 총장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에 잠시 현직에 있었지만 그는 곧바로 물러났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 총장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들이 있지만 저의 평가는 한마디로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찍어내기 할 땐 ‘다른 정부’의 총장이었나

‘돌격 앞으로’ 명령 내리고선 뒤늦게 철회

文, 언제-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설명해야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국민들은 의아했다. 법무부가 올린 윤 총장 징계안을 재가(지난달 16일)한 지 불과 한 달만에 문 대통령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지금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문 대통령에게 올린 징계안에는 ‘검찰총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에 관한 위엄과 신망을 손상시켰다’는 이유가 들어 있다.

문 대통령은 ‘정치할 생각이 없는’ 윤 총장에게 적용된 그 사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서명을 했던 것일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밝힌 6가지 징계 사유 가운데 나머지 5개는 인정되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봤나. 아니면 그 부분은 아예 읽지 않았다는 말인가.

추 장관은 윤 총장 징계에 앞서 ‘직무배제’ 결정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을 직무에 손도 못 대게 했다. 여권 인사들은 윤 총장을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했고, 안 되면 탄핵이라도 할 기세였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가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면서 몰아부쳤다.

‘조국 사태’ 이후 여권은 윤 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1년이 넘도록 총공격을 했다. 그 당시 윤 총장은 ‘다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을 뿐이다.

국민들이 진짜 궁금해하는 것은 그렇게 미워하던 윤 총장을 문 대통령은 언제부터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생각했으며, 왜 그렇게 마음이 바뀌었는지다.

법원이 징계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윤 총장이 복귀하자 ‘없던 정’이 생겨났을까. 아니면 그 때부터는 눈 딱 감고 잘 지내기로 마음 먹었나.

만약 법원이 윤 총장의 징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어도 문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불렀을까.

‘우리 윤 총장님’(2019년 7월 윤 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찍어내기’ 대상이 되었다가 다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 되는 과정을 국민들은 알고 싶어 한다.

그렇게 윤 총장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면서도 문 대통령에게는 여전히 다른 마음도 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검찰총장 징계에 대해서 사법부가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고, 징계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는 ‘본안’에서 판단하겠다, 이렇게 하는 것도 지금 삼권분립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아주 건강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부르면서도 본안 소송에서의 징계 가능성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은 검찰총장 임기제가 확실히 보장이 되면서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고 있다”면서 “징계에 의해서만 책임을 물을 수 있게끔 제도화되어 있다”고 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외면한 채 여권은 1년 넘게 윤 총장을 여론몰이로, 정치적으로 흔들었는데 문 대통령은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표현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면서 윤 총장을 공격하던 여권 인사들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을 위해 한 일인데 정작 대통령은 윤 총장을 우리 편이라고 인정해줬으니 말이다.

현실에서는 이미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떠올랐는데,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레토릭으로 그를 여권의 울타리에 가두려고도 한다.

총사령관의 ‘돌격 앞으로’ 명령에 군사들이 뛰어나가자, 뒤늦게 공격 깃발을 거둔 꼴이다. 그 와중에 부사령관 한 명(추미애)은 미치광이 장수가 됐고, 다른 한 명(이낙연)은 헛발질 장수가 됐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현 정권을 지탱해오던 검찰 개혁 프레임과 편가르기 작전에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정권에서나 임기 말이 되면 찾아오는 고질병, 바로 레임덕이다. 문제는 고질병이 온 몸으로 점점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에 이어 감사원이 이미 그렇게 됐고, 곧 여당으로도 증상이 옮겨갈 것이다.

촛불정부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처방이다.

psh21@busan.com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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