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어차피 이렇게 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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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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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을 백신 접종이 26일부터 시작된다. 한국도 전염병에서 벗어날 희망이 시작됐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백신 접종을 이틀 앞둔 오늘, 과연 코로나만이 국가를 멈춰 세우는 바이러스냐는 의문이 든다. 역대 진보·보수 정권을 불문하고 수많은 공직자와 정치인의 거짓말과 위증, 기억상실증이 바이러스처럼 사회를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 바이러스가 창궐해 팬데믹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행동경제학 분야의 권위자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는 그의 저서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에서 거짓말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을 ‘어차피 이렇게 된 거(what-the-Hell)’ 효과로 설명한다. 연초에 세운 다이어트, 금연 약속을 단 한 번의 유혹으로 못 지키면 스스로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면서 아예 전체 계획을 깡그리 부수고 자유를 최대한 만끽하려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한 기준을 한 번 깨고 나면 윤리 의식이 느슨해지면서 제2, 제3의 부정행위를 더 대담하고 급작스럽게 저지른다. ‘김영란법’ 제정을 추진했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자주 언급했던 이 책에서는 “정치인, 공무원, 사회 저명인사, 기업 경영자 등과 같이 대중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은 사회적으로 훨씬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이 대중에게 전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비칠 수 있고, 방치하면 어마어마한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 바이러스 국가 신뢰 허물어

기준 깨지면 윤리의식 느슨해져

일부 고위공직자 슈퍼전파자 노릇

‘지도층도 하는데’ 인식 대중에 퍼져

‘대의를 위한 거짓말’ 자기기만 팽배

윤리적 각성 위한 백신 접종 시급해


코로나는 인간의 면역체계를 붕괴시킨다. 공직자의 거짓말 바이러스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며 국가 시스템의 근간인 신뢰를 무너뜨린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5부 요인 부부 동반 만찬 방명록에 쓴 내용이다.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김명수 대법원장은 다음날 임성근 부장판사를 만나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라고 말한다. 이후 논란이 되자 국회에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없다.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고 증언한다. 녹취록이 공개된 이후 그의 변명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로 바뀌었다.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란 신간을 낸 김태규 전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책에서 “판사들이 재판 진행 중에 증인에게 ‘알고 있는 사실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위증이 됩니다’라고 종종 주의를 준다”고 말한다. 현직 대법원장의 ‘기억 안 남’ 한마디는 신뢰가 생명인 사법부를 위증과 거짓말 집단으로 전락시켰다.

더 큰 재앙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바이러스가 과거 보수 정권은 물론이고 ‘진보와 개혁’을 내세우는 현 정권 공직자들에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내림을 받아 일요일에 출근해 국가 공문서 파일을 삭제했다’는 산업부 고위공무원의 거짓말 증상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서 확진 판정됐다. 조 전 장관 측은 자녀들의 ‘거짓 스펙’ 의혹에 대해 끝까지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범행의 죄질이 좋지 않고, 입시 불공정을 초래했고, 수사 및 재판에서 정직성과 반성하는 태도조차 보기 힘들었다”면서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1심에서 법정구속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당시 변호사) 택시 기사 폭언·폭행’ 사건도 수사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철학을 배우고, 사회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그들이 바이러스 ‘슈퍼 전파자’ 노릇에 앞장서는 꼴이다. 공직자의 상습적인 거짓말과 기억상실은 대중들도 ‘어차피 저들도 저러는 거, 나도 거짓말 좀 하면 어때’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피해자는 국가와 국민이다.

거짓말의 목적이 개인의 이익 때문만이 아닐 수도 있다. 애리얼리 교수는 “일부는 이런 거짓말이 ‘공정성을 회복하고 세상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 우리 모두를 위해 정의의 성전을 펼치는 것. 정치적 대의를 위한 것.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이라며 자신을 의적 로빈 후드로 착각하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어떤 목적이라도 거짓말이 쌓이면 잘못된 행동을 대대적으로 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 실험을 통한 애리얼리 교수의 경고다. 단 한 차례의 부정행위도 사소하게 봐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26일 오전 9시부터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 전염병 차단이 시작된다. 이름도 어려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중대범죄수사청’ ‘국가수사본부’ 그 무엇이라도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사회 각계각층으로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거짓말 백신’이 되기를 고대한다. 국가의 신뢰 회복과 윤리적 각성을 위해서.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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