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챙겨야 할 영화는 우리 정서 살린 역사극”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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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인터뷰

이준익 감독이 열네 번째 영화 ‘자산어보’를 들고 관객을 찾는다. 사진은 ‘자산어보’ 스틸 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이준익 감독이 열네 번째 영화 ‘자산어보’를 들고 관객을 찾는다. 사진은 ‘자산어보’ 스틸 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2014년부터 조선 근대성 천착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 소환

조선 봉건질서 변혁 의지 담아

어류도감 집필과정 흑백영화화


“아름다운 우리나라 풍경도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한국의 이야기를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우리의 역사, 지역의 풍광을 영화에 기록하고 싶죠.”

이준익 감독(62)이 자신의 열네 번째 영화인 ‘자산어보’를 선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충무로 ‘사극 장인’인 이 감독은 이번 작품에선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을 스크린에 불러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어렵게 공부한 걸 관객에겐 쉽게 전달하는 게 감독의 미덕”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3월 31일 개봉하는 영화는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외딴 섬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한 과정을 그린다. 어보 서문의 ‘섬 안에 덕순 장창대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면서 독실하게 옛 서적을 좋아했다’는 구절에 이 감독이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빚어냈다. 그간 영화 ‘왕의 남자’ ‘사도’ ‘동주’ ‘박열’ 등 꾸준히 역사 속 실존 인물을 재창조해온 이 감독은 이번엔 정약전과 그의 제자 창대를 다뤘다. 서학을 받아들여 수평 사회를 지향하는 정약전과 조선 봉건질서의 근간인 성리학을 신봉하는 창대가 진정한 벗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또 조선 후기 세도정치 발호 속 사회 변혁 의지와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자연스럽게 담은 점도 눈에 띈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는 흑산도로 유배간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이 청년 어부 창대를 만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는 흑산도로 유배간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이 청년 어부 창대를 만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이 감독은 “조선의 근대성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다”며 “2014년쯤부터 동학과 서학을 공부하다가 조선 후기 천주교도 황사영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 게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황사영이 신유박해 때 피신한 제천 토굴을 찾아갔고, 그를 연구한 신부님도 만났다”면서 “하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에 접었다. 후에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그때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보였다”고 회상했다. “역사를 알수록 이번 영화를 더 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요. 약전과 창대의 감정과 여정에 집중하면 바탕에 깔린 시대 상황, 개인의 내재된 욕망과 가치관도 볼 수 있죠. 여러 번 보면 영화의 맛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이 감독은 이번 작품을 색채감을 뺀 흑백 영화로 만들었다. 전작 ‘동주’에 이은 두 번째 시도다. 그의 새로운 흑백 시대극은 인물의 정서를 더 도드라지게 하고, 투박한 바위가 늘어선 연안과 푸른 바다를 더 깊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흑산도 초가 뒤로 비치는 바다 수면 위 반짝이는 햇빛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이 감독은 “칼라 시대의 흑백 영상은 그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라며 “같은 자연조차 그 대상의 본질을 보여주는 신선함이 있다”고 했다. 그는 “흑백 영화로 만드니 조선의 세련된 모습을 곳곳에 담을 수 있었다”며 “흑백인 덕분에 이야기의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조선의 의복, 갓, 배, 소도구들 모두 정감 있고 세련돼 보이지 않나”라고 웃었다.


영화 ‘자산어보’를 만든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자산어보’를 만든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이 감독은 “요즘 화제가 된 ‘미나리’도 미국에서 찍었지만 한국의 정서가 밑천인 영화”라며 “한국영화가 장르·현대물로서 세계적인 수준인데 내가 챙겨야 할 것은 역사극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소중한 삶과 흔적이 잔뜩 있다. 우리가 끄집어내서 그 가치관을 나누고 조명하지 않으면 그걸 누가 해주겠나”라며 “우리나라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도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의 촬영은 전남 신안 일대의 도초도‧비금도‧자은도 등에서 했어요. 도초도와 비금도에 꼭 한번 가보세요. 평생 못 잊을 풍경이 펼쳐질 거에요. 영화 속에서 정약전이 오도독 씹는 ‘생물 홍어’도 삭힌 것과는 다른 맛이니 꼭 맛보시고요.(웃음)”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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