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종남산 진달래…한껏 붉어진산 달콤한 꽃향기따라 산행 가실래요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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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서 30~40분 걸으면 군락지
수백 년 전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돼
언덕 메운 연분홍꽃에 절로 감탄사
진달래꽃 터널 아래 산행도 매력적

밀양 종남산 진달래 군락. 밀양 종남산 진달래 군락.

밀양 종남산은 해발 662m로 시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이곳에 ‘밀양 8경’으로 손꼽히는 절경이 자리 잡고 있다. 초봄에 불타오르듯 열정적으로 피어나는 진달래 군락이 바로 그곳이다. 날씨가 좋아 전국적으로 봄꽃이 일찍 피어난 덕에 종남산 진달래도 80% 가량 개화했다. 4월 첫 주나 둘째 주면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진달래꽃 진달래꽃


■미리벌의 정신적 기상 종남산


자동차는 상남로 예림약국 옆 고노실길로 들어간다. 고노실1길을 따라가면 산으로 올라가는 임도가 나타난다. 좁고 험한 길이지만 조심해서 느긋하고 느리게 운전하면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자동차의 최종 목적지는 종남산 팔각정이다. 작은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차를 세우면 된다. 팔각정 맞은편 좁은 산길에 ‘종남산 정상 900m(봉수대)’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30~40분 정도 산행하면 진달래 군락지를 지날 수 있다.


종남산으로 올라가는 입구 마을. 종남산으로 올라가는 입구 마을.

먼 옛날 밀양이 ‘미리벌’이라고 불렸을 때부터 이 산은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신성시되는 장소였다. 여러 학교 교가를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종남산 위에 높이 솟은 저 태양은…(밀성초등학교).’ ‘종남산 높은 봉은 정기에 솟아 있고…(밀성고등학교).’ ‘종남산 높은 봉의 정기를 받고…(예림초등학교).’

그리스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파르테논 신전과 아크로폴리스를 세웠듯이 밀양 시내에서 가장 높은 종남산은 어린이들의 마음에 기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산이었다.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임도.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임도.

종남산은 원래는 자각산으로 불렸다. 이후 밀양의 남쪽 지역에 있다는 뜻에서 남산으로 불리다 종남산으로 바뀌었다.

종남산은 과거 밀양강에 다리가 제대로 없을 때에는 강 건너 사람들이 장을 보러 오던 길이었다. 사람들은 현재 미덕사 인근에 있는 고개를 넘어 양쪽을 오가곤 했다. 부산이나 경남 남부 지역에서 서울로 가던 사람들이 쉬던 ‘마방’이라는 곳도 있었다. 지금도 남동마을에는 마방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미덕사 돌길. 미덕사 돌길.

■수백 년 역사 담은 진달래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두 가지 걱정거리가 머리를 사로잡았다. 하루 종일 지독했던 미세먼지, 황사가 첫 번째였다. 진달래꽃이 제대로 피었을지가 두 번째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두 걱정 모두 기우가 되고 말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가슴을 꽉 누르듯이 답답했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맑았고, 마치 등산객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꽃은 적당히 활짝 피어 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맑은 날씨 덕에 산행객들은 가끔 마스크를 벗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허름한 입구를 지나가 제법 빽빽한 소나무 숲이 나타났다. 곳곳에 듬성듬성 진달래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길은 깔끔하게 잘 정비돼 있어 걷기에 불편하지는 않다.


종남산 정상 가는 산행로. 종남산 정상 가는 산행로.

해가 잘 비치는 곳에는 들꽃이 조심스레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한 일행은 낯선 꽃을 보면서 이름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당장 사진을 찍어 네이버로 검색해보았다. ‘벼룩나물’이라는 이름이 나타났다. 잘 이용하면 참 편리한 세상이다.

종남산 진달래는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한다. 먼 옛날부터 자생적으로 종남산과 인근 덕대산에 진달래 군락지가 형성됐다. 종남산 인근 남산마을의 박태현 이장은 “어릴 때에도 두 산에는 봄이면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군락지에 소를 몰고 가 풀을 뜯기며 놀았다”고 말했다.


종남산에서 내려다본 상남 평야. 종남산에서 내려다본 상남 평야.

나그네에게 수줍게 고개만 내밀던 진달래는 ‘종남산 정상 400m-헬기장 100m’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을 지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발그스레 물든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솔길 양쪽에 빨갛게 잘 익은 꽃들이 희미한 바람에 사그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종남산 안내 이정표. 종남산 안내 이정표.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놓은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드디어 산 정상도 눈앞에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전망대 포토존’ 이정표가 손을 흔들고 있다. 이곳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며 흥분한 표정이다.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

“이야!”

이정표가 얼굴을 벌겋게 달구면서 지나는 산행객을 유혹한 이유는 이 감탄사 하나로 충분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잘 익고 잘 피어난진달래 꽃 군락을 본 적은 없었다. 아직 잎이 피어나지 않은 나무에 연분홍색 꽃이 종남산 북동쪽 언덕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밀양 전경.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밀양 전경.

진달래 군락은 언덕 아래 밀양강과 강 주변에 형성된 밀양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들은 수백 년 전부터 대를 이어가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반대편으로는 넓은 상남 평야가 펼쳐져 있다. 경남에서 가장 면적이 너른 평야라고 한다.


밀양 종남산 진달래 군락 밀양 종남산 진달래 군락

전망대에서 돌아 나와 다시 산 정상으로 향한다. 곳곳에 만들어진 진달래꽃 터널이 눈길을 끈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데다 어떤 곳은 허리를 숙여야 할 정도다. 그래도 좋다. 언제 진달래꽃의 갈채를 받으며 등을 발갛게 물들여 볼 수 있을까.


진달래꽃 터널 진달래꽃 터널

하얀 마스크를 착용한 중년 부부가 산 정상에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온다. 입이 보이지 않지만 눈을 보면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의 등 뒤에서 진달래꽃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린다.


진달래와 중년 부부. 진달래와 중년 부부.

“40년 전 연애를 할 때에는 속삭이며 여기를 걸어갔어.”

“사랑하는 얼굴이라서 그런지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종남산 정상. 종남산 정상.

드디어 종남산 정상이다. 아쉽게도 이곳에서는 올라올 때보다 진달래꽃 풍경은 예쁘지 않다. 하지만 사방을 빙 둘러 밀양과 멀리 다른 지역을 시월하게 조망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정상에는 ‘남산 봉수대’가 설치돼 있다. 조선 초기에 설치한 군사시설이다. 남산은 종남산의 옛 이름이다.


남산 봉수대. 남산 봉수대.

봉수대 바로 앞에 진달래와 달리 진한 자주색을 자랑하는 꽃 여러 송이가 피어 있다. 사람들이 손을 대지 못하게 주변에 줄을 둘러쳤다. 작은 간판에는 ‘토종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산꼭대기에서 이름과 달리 우아하고 고결한 할미꽃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 꽃을 본 것 자체가 수십 년만이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할미꽃. 할미꽃.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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