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의혹 말끔히 털고, 공약 다 지키지 마라!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새 부산시장에게 드리는 고언(苦言)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8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8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승자와 패자가 선명하게 나뉘는 선거다 보니 각 후보 진영에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다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에 대해서도 두 후보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어쩌면 늘 그래왔듯 승자는 패자를 다독이고, 패자는 승복하는 식으로 훈훈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겠지요. 또 다른 한편으론 승패 요인을 분석하고, 정계 개편 등 각자 입장에서 암중모색을 시도할 겁니다. 당연히 필요한 수순입니다.

한데, 저는 유권자로서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준엄한 민심의 심판에 따라 새롭게 당선된 시장인 만큼 존중하겠지만,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은 몇몇 의혹에 대해선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선거 기간 양측에서 제기한 고소·고발 수사 의뢰 건수는 무려 16건에 이릅니다. 특히 새 시장 당선자와 관련된 내용은 선거 당락에 무관하게 해명되거나 입증되어야 합니다. 이는 부산시장으로 지지해 준 63%뿐 아니라 그를 지지하지 않은 다수의 부산시민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지난 4일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의 '6대 비리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고 부산시민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은 부동산 투기(엘시티 특혜, 기장군 일광 미등기 부지), 국회 사무총장 재임 당시 직권 남용(국회 미술품 납품), 불법 사찰 지시, 홍익대 입시 비리, 5000만 원 성 추문 선거 공작, 미술품 조형물(조현화랑) 비위 의혹 등이다. [연합뉴스]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지난 4일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의 '6대 비리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고 부산시민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은 부동산 투기(엘시티 특혜, 기장군 일광 미등기 부지), 국회 사무총장 재임 당시 직권 남용(국회 미술품 납품), 불법 사찰 지시, 홍익대 입시 비리, 5000만 원 성 추문 선거 공작, 미술품 조형물(조현화랑) 비위 의혹 등이다. [연합뉴스]

■진실의 문제는 밝힐 필요 있어

부산시장 당선이 확정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 박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진 사실이 너무 많지만 앞으로 의문이 제기되면 일일이 설명하겠다”고 재차 언급했습니다. 물론 좋은 게 좋다고 고소·고발된 여러 사건에 대해서 한쪽에서 소취하서를 내거나 소취하합의를 한다면 검증을 하고 싶어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문제의 본질이 본인에서 비롯됐든 아니면 가족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이든 말입니다. 비록 1년 3개월 남짓한 시장이지만, 향후 정치 행보를 이어 갈 시장 당선자 입장에서도 의혹 해소는 필수 불가결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산시민으로서 ‘의혹이 가시지 않은 시장’을 뽑았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기 바랍니다.

중국의 법가사상가 한비자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고로 군주란 법(규정)·술(術)·세(권세)를 능수능란하게 익히고 활용해서 흔들리지 않는 권위를 보여야 한다고요. 권위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한 조직을 책임지는 리더로서 가져야 하는 무게감이 필요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시장직 수행을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각득기소(各得其所)’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사람이나 사물은 각각 그에 걸맞은 소임과 자리가 있다는 것인데,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단순히 그 일부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조직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엄청난 재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로도 읽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 드러난 정치인 시장의 민낯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자유민주당 정규재 부산시장 후보가 유세 도중 언급했던가요. “박 후보와 관련된 의혹은 선거가 끝나도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관심을 가지고 집요하게 파고들 확률이 높은 주제"라면서 "박 후보가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있으나, 박 후보를 정치적 무덤까지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라고요. 정 후보 입장에선 보수 계열 유권자를 공략하면서 ‘진짜 보수 후보’를 찍어 달라고 호소하는 과정에서 한 말이겠지만,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공수처법)’에 따르면 수사 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자’에는 전직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 3급 이상 공무원, 국회사무처 정무직공무원 등에 재직 중인 사람 또는 그 직에서 퇴직한 사람이 들어갑니다. 신임 박 시장은 제17대 국회의원(부산 수영구),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했습니다. 불거진 각종 의혹 역시 공직 기간과 상당 부분 겹쳐 있습니다.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부산 시민 모두가 공감하는 일일 테니까요.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지난달 18일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어반루프'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했다. 강원태 기자 wkang@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지난달 18일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어반루프'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했다. 강원태 기자 wkang@

급조한 공약은 과감한 포기 혹은 보완을

박 시장 당선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또 다른 한 가지는 후보 시절 발표한 주요 정책 중 일부는 반드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공약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정책 대결보다는 상대방 흠집 내기에 바빴다는 인상이 강한 선거였지만, 이번에도 예외 없이 제법 굵직굵직한 공약이 쏟아졌습니다.

통과의례 같은 것이지만, 지난 8일 부산시장 당선증을 받는 자리에서 전상훈 부산시선거관리위원장은 “유권자들에게 공약하신 내용을 빠짐없이 실천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평소 같으면 너무나 당연한 말로 받아들였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리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공약 그 자체의 의미를 따진다면, “정부, 정당,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에 대하여 국민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함. 또는 그런 약속”을 뜻하기에 지키려고 노력하는 게 맞겠지만, 짧은 선거 기간과 재임 기간을 고려한다면 충분한 검토와 실행에 무리가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반루프(도심형 초고속 철도) 노선 구상도. [박형준 블로그] 어반루프(도심형 초고속 철도) 노선 구상도. [박형준 블로그]

특히 논란이 컸던 ‘1호 공약’, 부산 전역을 15분 생활권으로 만드는 도심형 초고속 철도인 ‘어반루프’ 계획에 대해선 벌써 많은 말이 오갑니다. 박 시장은 “부산 100년 번영의 초석”을 놓는 일이라고 강조했지만, 이게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기술적인 문제나 경제성은 어떠한지, 최우선 순위 공약에 둘 만한 것인지 꼼꼼히 따져 보자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이 프로젝트가 글로벌 투자자들이 먼 미래를 보고 시도해 봄 직한 것일 순 있으나, 국가 차원도 아닌 지방정부에서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야말로 선거용이고 홍보용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부산시장 후보자 TV 토론회에서도 상대편 김 후보는 “어반루프 사업은 박 후보가 2030년까지 연간 3900만 명을 실어 나르겠다고 홍보했는데, 이는 40인승짜리 캡슐 열차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하루 2500회를 운영해야 하고, 1시간에 150회, (하루에) 16시간을 운영한다고 치면 25초 간격”이라면서 “현실성 없는 황당한 공약”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1조 2000억 원대의 요즈마 창업펀드를 조성해 500개 기업 창업 유치를 지원하겠다는 구상도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요즈마 그룹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부산오페라하우스 활성화를 위해 바덴바덴 페스티벌을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걱정이 앞섭니다. 제대로 된 오페라단 하나 없는 부산 현실에서 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되는 것도 걱정인데, 그 내용마저 손쉽게 남의 것으로 채우려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바덴바덴 페스티벌의 성공 이면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일부 축제를 이식한 것이 있지만, 우리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은 아니었을 테지요.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주요 정책으로 ‘AI Beach(인공지능 비치)’를 내세웠는데, 내용을 보면 마이데이터 혹은 데이터 댐을 기반으로 하는 블록체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AI 쪽 내용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잠정 결론입니다. 짧은 임기 동안 관련 용역이다 뭐다 해서 세금과 시간을 낭비하기에 앞서 주요 공약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충분한 검토 후엔 과감한 폐기나 보류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선자 스스로 공약의 옥석을 다시금 가려 주십시오.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가 지난 7일 오후 부산진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국민의힘 관계자와 지지자들 앞에서 부인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가 지난 7일 오후 부산진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국민의힘 관계자와 지지자들 앞에서 부인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측근 잘 관리해야

이제 선거는 끝이 났고, 일상의 정치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4차 대유행의 조짐을 보이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자영업 등 부산 경제를 바로 세우는 일은 발등의 불입니다. 가덕신공항의 조속한 건설, 2030 부산엑스포 유치,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 자치경찰제 본격 시행 등 부산 현안이 산더미입니다. 지난해 4월 이후 1년 가까이 대행 체제가 이어지며 생긴 시정 공백이 너무나 커 보입니다. 아무쪼록 새 시장 시대를 맞아서 부산시정이 확 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삼국지>에서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갈 때 제갈량이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해서 나온 ‘읍참마속’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을 내치기가 결코 쉽지 않겠지만, 한 조직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측근이라도 올곧은 정치를 위해서 희생시켜야 한다는 읍참마속의 의미는 꼭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연간 14조 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8000여 명의 공무원을 지휘할 뿐 아니라 20여 곳의 산하기관 인사권을 쥔 부산시장의 중요성을 부디 간과하지 말아 주십시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김은영 논설위원 김은영 논설위원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