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도망자, 살인자는 모두 로마에 오시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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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문학기행-이탈리아] 카피톨리노 언덕(1)



카피톨리노 언덕의 캄피돌리오 광장 전경 카피톨리노 언덕의 캄피돌리오 광장 전경

종교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모든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과거에는 종교가 인간의 모든 것을 통제했다. 당시 인간에게 종교는 사계절을 의미했고, 일출과 일몰을 뜻하기도 했다.


신은 사람에게 지도자를 뽑아주었고, 적과 자연현상으로부터 추종자를 보호했고, 전쟁이 났을 때에는 승리하게 도왔다. 모든 사회는 신의 이야기를 담은 신화를 창조했고 신을 숭배하기 위해 신전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봉물을 바쳐 신의 축복을 빌었다.


로마도 다르지 않았다. 다신교 국가여서 신이 무려 30만 명이나 됐던 로마에서 종교는 일상적 삶은 물론 국가의 전부이다시피 했다. 신에게 물어보지 않고 국가의 사업을 결정하는 일은 없었다. 자연재해 등 끔찍한 일이 일어나거나 전쟁에서 패하면 신이 로마에 불만을 가졌다고 해석했다. 전쟁에서 이기거나 풍년이 들면 신이 도왔다고 믿었다.


로마의 종교를 상징하는 장소는 카피톨리노 언덕이었다. 지금은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를 살펴본 관광객이 스쳐 지나가는 경유지에 불과하지만, 고대 로마 시대에는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 신전이 세워져 있던 로마의 종교 중심지였다. 로마인뿐만 아니라 로마의 지배를 받는 모든 속주 지도자, 동맹국 왕이 로마에 가면 꼭 참배하던 곳이었다.


지금 카피톨리노 언덕은 포로 로마노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지만, 과거에는 포로 로마노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뚝 서 있었다. 로마인의 종교적 삶을 이해하기 위해 카피톨리노 언덕에 유피테르 신을 만나러 간다. 아직도 그곳에 그가 있다면….


■헤라클레스의 병사들


카피톨리노 언덕은 로마의 일곱 언덕 중에서 가장 작고 좁았다. 위에서 보면 대충 오각형처럼 생겼는데, 가장 긴 쪽 길이가 겨우 460m에 불과했다. 반면 고도는 39m로 가장 높았다. 주변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남동쪽에만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높기만 하고 공간은 좁았기 때문에 큰 마을을 이뤄 살기에는 부적합한 곳이었다. 로물루스가 이곳에 눈길을 주지 않고 팔라티노 언덕에 로마를 건국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물론 이곳에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로마를 세웠을 때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BC 1세기 로마 역사학자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의 『라틴어 원론』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카피톨리노 언덕에 사투르니아 마을이 있었다. 족장은 사투르누스였다. 카피톨리노 언덕은 고대에는 몬스 사투르니우스(사투르누스의 산)로 불렸다.’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를 따라 다녔던 병사들이 이곳에 정착해 살았다. 에반드로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정착해 자리를 잡았을 무렵이었다.


게리오네우스와 싸우는 헤라클레스. 게리오네우스와 싸우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는 메가라와 결혼해 자식 3명을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헤라 여신의 저주 때문에 이성을 잃어 가족을 모두 죽이고 말았다. 그는 죄를 씻기 위해 티린스의 겁쟁이 임금 에우리스티우스 왕에게 복종해야 했다. 왕을 위해 열두 가지 과업을 완성하는 게 임무였다.


게리오네우스(또는 게리온)가 세상의 서쪽 끝에 있는 전설의 섬 에리테리아에서 키우는 소떼를 가져다주는 게 열 번째 과업이었다. 헤라클레스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배를 빌려 타고 에리테리아로 가서 게리오네우스는 물론 머리 두 개를 가진 개 오르토스, 거인 목동 에우리티온을 모두 죽이고 소를 훔칠 수 있었다.


에리테리아는 지중해 서쪽 끝,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섬으로 추정된다. 헤라클레스가 거쳐 간 곳에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모나코, 피레네 산맥, 바르셀로나, 톨레도, 세비야, 라 코루냐 등에는 헤라클레스가 다녀갔다는 신화가 아직까지 전해 내려온다.


헤라클레스는 이탈리아 곳곳을 거쳐 그리스로 돌아가던 중 팔라티노 언덕 아래 테베레 강 주변 목초지에 소떼를 풀어놓고는 잠이 들었다.


그때 팔라티노 언덕의 동굴에 살던 거인 카쿠스가 소를 훔쳐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언덕 주변을 뒤져 동굴에 숨어 있던 카쿠스를 찾아내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카쿠스는 지역 주민들을 잡아먹던 식인 괴물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카쿠스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그 지역의 지도자이던 에반드로스에게도 알려졌다. 그는 예언자인 어머니로부터 미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헤라클레스를 찾아갔다.


“선각자이신 어머니께서 당신이 먼 미래에 신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제단을 바치는 첫 영광을 저에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제단을 세우신다면 매년 소 한 마리를 바치는 제례를 거행해 저를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테베레 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 포룸 보아리움이라는 곳이 있었다. ‘소 시장’이라는 뜻이다. 에반드루스는 이곳에 제단을 만들고 해마다 제례를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때 만든 제단이 바로 아라 막시마였다. 지금은 흔적만 남았고, 그 자리에는 ‘진실의 입’으로 유명한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이 서 있다.


헤라클레스가 그리스로 떠나려 할 때 그와 함께 에스파냐에 다녀온 그리스 병사 및 도중에 잡아온 포로 중에 팔라티노 언덕 근처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병사들은 대개 펠로폰네소스 출신이었다. 그들은 고향에 가봐야 호구지책이 막막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팔라티노 언덕 근처에는 강이 흐르고 적당한 면적의 농지와 초지도 있어 먹고 살기에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영웅이여, 우리는 이곳에 그냥 머물고 싶소. 허락해주시오.”


“당신들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이미 나를 충분히 도와줬으니 그대들에게는 스스로의 운명을 정할 자격이 있소.”


헤라클레스는 그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에반드로스도 인구를 늘릴 수 있어 고향 사람들의 정착을 반겼다.


병사들이 자리 잡은 곳은 팔라티노 언덕 앞에 있는 카피톨리노 언덕이었다. 그들이 만든 마을이 사투르니아였던 것인지, 아니면 이미 있던 사투르니아에 들어가 살았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투르니아가 없어지고 한참 뒤에 입주했던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카피톨리노 건물의 조각상. 카피톨리노 건물의 조각상.

■도망자여, 로마로 오라


로물루스가 카피톨리노 언덕에 눈을 돌린 것은 현실적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는 나라를 세운 뒤 고민에 빠졌다. 인구는 겨우 3천 명이었다. 이 정도로는 어느 누구와도 전쟁을 벌일 수 없었다. 힘을 키우려면 인구를 늘려야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내디딘 작은 도시에 들어와 살려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로물루스는 고민 끝에 극단적인 대책을 생각해냈다. 도망자, 부랑아, 산적, 가난한 사람 등 신분을 불문하고 어느 도시, 어느 나라의 누구라도 로마에 오면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이렇게 기록했다.


‘(로물루스는)모든 탈주자를 맞아들여 보호해주었다. 채무자는 물론 살인자까지도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도망자 등이 곧바로 로마에 정착하면 이전 부족에서 잡으러 올 게 뻔한 일이었기 때문에 우선 잠시 숨을 곳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었다. 로물루스가 그들에게 배정한 땅은 바로 카피톨리노 언덕이었다.


“이곳에 마련한 은신처에 잠시 숨어 지내게. 그 동안 식량은 공급해줄 걸세. 모자라는 게 있으면 아쉽더라도 자체적으로 조달해 살도록 하게.”


이렇게 은닉시켰던 사람을 원래 고향 사람이 잊어버릴 무렵이 되면 새로운 신분을 줘 로마에 정착하게 했다. 이런 소문이 퍼져 나가자 인근 부족의 잡다한 사람이 로마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로물루스는 로마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는 인구를 대거 유입할 수 있었다.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는 늑대 루파와 로물루스 형제 조각상.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는 늑대 루파와 로물루스 형제 조각상.

도망자의 은신처로 삼았던 카피톨리노 언덕을 유피테르 신에게 바치는 성소로 바꾼 사람도 로물루스였다. 그는 다른 라틴족 도시의 통혼 거부로 결혼할 여성을 못 구해 애를 태우던 로마 청년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다른 부족 여인들을 납치했다.


로마인에게 빼앗긴 여인들을 되찾기 위해 카이니아 사람들이 쳐들어왔다. 로물루스는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 적을 단숨에 와해시켜 버렸다. 카이니아의 왕을 단칼에 베어버린 뒤 적의 마을까지 쳐들어가 전리품도 챙겼다.


로물루스는 카이니아의 왕에게서 빼앗은 갑옷을 들고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올라갔다. 당시 언덕에는 목동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참나무가 있었다. 그는 참나무 옆에 갑옷을 얹은 작대기를 꽂아 유피테르 신에게 봉헌한 뒤 이렇게 약속했다.


“앞으로 영원히 카피톨리노 언덕을 유피테르 신에게 바치겠습니다.”


로물루스가 왜 로마를 건국한 팔라티노 언덕이 아니라 사람이 살지 않거나 드물었던 카피톨리노 언덕에 가서 이렇게 맹세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찌 됐든 그는 카피톨리노 언덕에 조그마한 유피테르 페레트리우스 신전을 지었다. 그가 신전을 지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4대 왕인 안쿠스 마르키우스가 이 신전을 증축했지만 여전히 규모는 크지 않았다. 신전의 길이는 겨우 5~6m에 불과했다. 당시 로마의 능력으로는 큰 신전을 지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신전은 BC 1세기 제정 시대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도 남아 있었다. 황제가 별 관심을 쏟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 봐서는 규모, 외관이 형편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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