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토지의 주인은 원래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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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부루마불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즐겨 했던 보드게임이다. 보드게임 산업이 생기기도 훨씬 전인 80년대에 처음 나왔으니 한국 보드게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도 할 수 있어 가족들이 모이면 종종 했는데 부동산 문제를 아주 잘 보여 준다.

부루마불 게임판을 한 바퀴 돌 때마다 플레이어는 월급 개념으로 돈을 받는다. 이렇게 받은 돈은 부루마불 각 칸에 있는 도시에 투자하기에는 적은 금액이다. 상대 플레이어가 땅을 먼저 사게 되면 그 땅을 지날 때 통행료를 내야 한다. 각국 도시의 땅을 사고 나면 다음 회차부터 별장, 빌딩, 그리고 호텔을 올릴 수 있다. 그때도 돈이 필요하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건물을 올리면 다른 플레이어가 지나갈 때 더 많은 통행료를 받을 수 있다. 부동산이 없을 경우 끊임없이 통행료를 지불해야 한다. 처음에는 돈을 모으는 게 중요하게 느껴지지만 계속 돌다 보면 월급을 받더라도 부동산이 없으면 결국 파산하게 된다.


토지는 유한 자연재로서 공적인 것

불로소득 차단해야 투기 근절 가능

공동체 이익 우선의 정책 수립해야


‘영끌’ ‘빚투’ ‘부린이’ ‘부포자’ 등은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보여 주는 자조 섞인 신조어다. 영혼을 끌어서(영끌)라도, 빚을 내서라도 투자(빚투) 해서 내 집 마련을 못하면 부동산 가격 급등을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한다는 조바심이 한몫했다. 부린이(부동산과 어린이를 합친 말로 부동산 투자 공부 초보자)가 생기고 부포자(부동산 소유를 포기하는 사람)는 더 많이 늘어난다.

지난 7일 보궐선거의 최대 쟁점은 ‘부동산 정책’이었다. 부산·서울시장 선거 모두 성추행으로 인한 보궐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정책 대결은 볼 수 없었다. 모든 이슈와 공약을 묻어 버린 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였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 안정을 공언하고 26차례에 달하는 대책 발표를 통해 4년 내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말해 왔다. 문제는 대책이 나올 때마다 아파트 가격은 올랐고 불평등은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LH 사태가 불을 붙였다. 불을 끄려고 해도 지자체 단체장, 국회의원, 공무원, 지방의회 의원 등이 줄줄이 딸려 나온다. 조사가 다 끝날 때까지 모두 투기를 했다고는 의심하지 않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개발 정보를 빼내 투기에 나섰다면 명확한 범죄다. 공직자가 직무수행 중 취득한 정보와 권한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이 제도화되어야 할 이유다.

토지는 원래 처음부터 특정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유한한 자연재로서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지대 또는 토지 임대료는 주인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얻는 소득’이라고 했다. 불로소득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진보와 빈곤〉을 저술한 헨리 조지는 인구의 증가에 따른 토지 가치 상승은 노력의 결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토지 소유자가 그것을 향유하고 있다는 문제를 발견했으며 이것을 두고 특권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사회공동체는 토지 가치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공공의 유산을 찾아올 수 있고 동시에 생산 활동에 부과되는 불합리한 세금을 철폐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헨리 조지의 사상은 덴마크, 뉴질랜드, 싱가포르, 타이완 등 여러 국가에 영향을 끼쳤다.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이 과다한 불로소득 발생에 있다면 불로소득의 발생을 차단하거나 환수하지 않는 이상 투기를 잠재우기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임금이 오른다 해도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

유럽의 국가들은 토지 이용 측면에 있어서 공동체 이익을 우선하는 사고가 정착되어 있다.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도 10년 전부터는 스타 작가가 아니라 빈곤, 환경, 재난 대응 등 공동체의 특성에 맞게 사회적 가치를 담아 온 건축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모든 국가가 도시재생과 재개발, 인구 문제, 환경 문제 등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수상자인 프랑스의 건축가 안네 라카통과 장 필리프 바살은 기존 건물은 절대 파괴하지 않는다는 자신들만의 원칙을 지켜 왔다. 리모델링 당시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곳에 계속 거주하며 건물주와 협의를 통해 같은 공간을 두 배로 증축한 뒤에도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공공성에 방점을 찍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동산 투기가 사라지면 실질소득이 상승한다.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은 노동의 가치를 지키는 것으로 연결된다. 동시에, 적어도 토지에서는 공동체 이익을 우선하는 정책의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토지는 원래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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