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선의 신경인류학] 노인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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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인류학자·정신과 전문의

노인은 인간의 발명품이다. 인간과 가까운 침팬지는 50세를 넘게 사는 경우가 드문데, 아마 원래 인류의 수명도 비슷했을 것이다. 고인류의 수명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화석 증거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조사해보니 마흔 살을 넘긴 ‘노인’ 화석은 아주 드물었다. 지난 수백만 년간 ‘늙도록 사는 일’은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왜 이렇게 일찍 죽었을까? 인류학자 에릭 트링카우스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 화석의 무려 74%가 야생 동물과 싸운 흔적이 있었다. 고양잇과 육식동물이나 곰, 늑대와 자주 싸웠다. 부상뿐 아니라 질병도 흔했다. 관절염과 위장병, 충치, 암 등을 많이 앓았다. ‘근연 교배’에 의한 유전병도 흔했다. 게다가 얼음과 모래가 섞인 매서운 바람이 부는 혹독한 환경이었다. 아주 팍팍한 삶이었다. 네안데르탈인 열 명 중 여덟이 불혹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네안데르탈인 수명 40세 전후로 짧아

호모 사피엔스는 정신적 능력 중시

유전적인 진화 통해 ‘장수’의 길 선택

노인은 '지혜의 보고' 사회가 안아야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는 달랐다. 약 30만 년 전 나타난 현생 인류는 상징을 다루는 인지적 능력이 있었다. 높은 수준의 언어는 다른 이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 주었는데, 덕분에 ‘자신과의 대화’도 가능해졌다. 생각과 감정, 행동에 관한 경험은 ‘이야기’의 형태로 뇌 안에 오래도록 저장되었고,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도 있었다. 오랜 세월 체화된 지식은 신화와 전설, 민담과 설화의 형태로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며 축적되었다.

흥미롭게도 노인은 이 무렵부터 나타났다. 인류는 장수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이가 들면 신체적 능력이든 정신적 능력이든 점점 쇠약해진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기능이 쇠퇴해도 제법 오래 살아간다. 퇴행성 질환을 겪으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른바 ‘유병 장수’다. 무엇 때문일까? 직접 식량을 생산하거나 자손을 번식시키지 않지만,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유전자를 공유하는 다음 세대에 큰 이득을 전달할 수 있어서다. 세대 간 지식 전달 가설이다. 그러니 생산과 번식을 위한 기능은 좀 쇠퇴해도 상관없다. 늙더라도 오래 살아야 할 이유다.

약 20만~30만 년 전,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자 중 일부가 변이를 일으켰다. 제19번 염색체의 긴 쪽 팔에 있는 아포지단백-E 유전자다. 1993년에 처음 발견된 이 유전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만약 ε4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릴 상대적 위험성은 약 15%까지 높아진다. 반대로 ε2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위험성은 상당히 낮아진다. 하지만 ε4의 이점도 있다. 감염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비타민 D도 잘 합성한다. 젊은 시절에는 아주 유익한 형질이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에게서는 ε4가 꾸준히 감소하고 ε2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진화적으로 볼 때, 노년기에 얻는 이득이 청년기에 감수해야 할 손해보다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이가 들어도 ‘총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늘어났다. 지혜롭고 현명한 노인이 점점 불어났다.

지금은 어떤가? 마흔만 넘어도 소위 ‘꼰대’가 되는 세상이다. 젊은이에게 ‘감히’ 이런저런 조언을 해서는 곤란하다. 서러운 일이다. 똑같은 어려움이 있어도 청년이 관심을 독차지한다. 20대 청년들은 학업도 어렵고 취업도 어렵단다. 연애도 결혼도 못 한단다. 충분히 공감한다. 노인은 모두 젊은 시절을 겪어 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의 노인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빈곤과 우울, 고립 등의 문제는 청년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있고 현실 세계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무슨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해도 노인의 말에는 다들 절레절레 손을 내젓는다. 노소에 따라 삶의 고통이 다를 리 없다. 사실 늙으면 더 힘들다. 그러나 세상의 관심은 차별적이다. 70대 노인은 20대 청년보다 2.5배나 많이 자살한다. 80대 이상의 자살률은 20대에 비해 무려 약 3.5배에 달한다. 하지만 청년이 자살하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노인이 자살하면 그대로 잊히는 세상이다.

현대 사회에 노인은 이제 필요 없는 것일까? 지식은 구글에서 얻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세대를 관통하는 축적된 경험은 인터넷에 없다.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은 노인의 높은 자살률로 나타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노인의 오랜 지혜를 경청해야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다.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어 낸 세대가 아닌가? 수만 년 전, 인류가 늙은이의 ‘옛날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위대한 문화를 빚어낼 수 있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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