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죽음마저 홀로, 빈소 없이 ‘처리’… 제대로 눈감지 못하는 이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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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죽음 ‘무연고 사망’

3월 달품협동조합과 부산반빈곤센터, 내미는마음 주관으로 열린 장영민 씨의 공동체 장례식 모습. 장 씨가 평소 다니던 교회 지인 등이 장례식에 참여했다. 이날 열린 공동체 장례는 부산 동구에서 열린 첫 공영장례 사례다. 부산반빈곤센터 제공 3월 달품협동조합과 부산반빈곤센터, 내미는마음 주관으로 열린 장영민 씨의 공동체 장례식 모습. 장 씨가 평소 다니던 교회 지인 등이 장례식에 참여했다. 이날 열린 공동체 장례는 부산 동구에서 열린 첫 공영장례 사례다. 부산반빈곤센터 제공

삶 못지않게 죽음에서도 존엄은 지켜져야 한다. 부산 무연고 사망자 10명 중 7명은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다. 그 배경에는 당사자의 경제적 어려움이 깔려 있다. 취약계층도 존엄을 지키고, 위로를 주고받는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공공이 지원하는 ‘공영장례’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부산 무연고 사망 70% ‘수급자’

자식도 생활 어려운 경우 대부분

장례비 부담에 시신 인수 거부

무연고 사망자는 빈소 없이 화장

유골 5년간 지하 보관되다 매장

존엄한 죽음 보장받을 수 있게

지자체가 장례 주관·지원하는

‘공영장례 도입’ 목소리 높아져


■무연고자 ‘고령·수급자’ 경향 뚜렷


부산 16개 구·군청에 따르면 4년간 부산에서 무연고로 사망한 974명 중 691명(70.9%)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10명 중 7명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숨진 뒤, 연고가 없거나 유족의 인수 거부로 무연고사로 처리된 것이다. 어렵게 연고자를 찾아도 가족 유대가 끊어졌거나 장례비를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 자녀들도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동래구청 김분옥 복지기획계장은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왕래가 끊겼다는 이유로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구청에서 어렵게 연고자를 찾아도 오히려 ‘이복동생인 내가 왜 시신 처리를 맡아야 하느냐’며 강하게 항의하시는 분도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전국 평균 장례비용(2015년 기준)은 1327만 원이다.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현재 장례 비용은 훨씬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지난해 기준 기초생활수급자 1인 가구가 받는 금액은 소득이 없다면 54만 8349원에 불과하다. 연고자도 기초생활수급자라면 장례식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무연고 사망자 중에는 노인 비율이 높았다. 국민의힘 김도읍(부산 북강서을) 국회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무연고 시신처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 무연고 사망자 338명 중 60대 이상이 69%(233명)였다. 30대 이하는 4명이었다. 오랜 기간 혼자 사는 노인 가구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에 비해 ‘무연고사’ 경향이 뚜렷한 셈이다.


■빈소 없이 화장… 5년 만에 처리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 지하 1층에는 무연고 사망자 전용 안치실이 있다. 영정사진 하나 없이 철제 봉안함이 늘어선 삭막한 이곳에 무연고사의 유골이 5년간 보관된다. 부산시설공단 관계자는 “인도적 차원으로 봉안당을 찾는 사람은 1년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라며 “원칙상 5년이 지난 무연고자 유골은 화초, 나무 주변에 묻는 ‘자연장’을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지 마련이 어려워 집단 매장을 한다”고 설명했다.

범죄 혐의가 발견되지 않은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면 관할 기초지자체가 담당한다. 구·군은 우선 사망자의 연고자를 찾아 시신 인도를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연고자를 찾지 못하거나, 힘들게 찾아도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 14일 안에 연고자가 시신 인수 의사를 보이지 않으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다.

지자체는 의전업체에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를 의뢰하게 된다. 업체는 시신을 인수한 뒤 염습과 입관을 거친다. 하지만 빈소를 차리는 등 장례 절차는 생략하고 곧바로 장례식장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시신을 옮긴다.

하지만 업체가 시신 한 구당 받는 장제비용은 80만 원에 불과해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기 어렵다. 이런 과정을 거쳐 화장된 무연고자 유골은 5년간 영락공원 지하에 보관됐다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유골과 함께 땅에 묻힌다.


■취약계층 무연고사 막는 공영장례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되면 제대로 된 장례 의식조차 거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연고자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시신 인수와 장례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지인과 이웃도 최소한 명복을 빌어줄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공영장례’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공영장례란 공공이 무연고사망자와 저소득 시민에게 검소한 장례의식을 제공하거나 지원하는 장례를 말한다. 이미 이를 실천하는 지자체도 있다. 부산 서구청은 지난달 31일 부산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홀로 생활하다 쓸쓸하게 숨을 거둔 70대 여성과 50대 남성에 대해 공영장례를 진행했다. 위탁 장례업체는 이들 시신을 곧바로 화장장으로 보내지 않고 장례식장으로 안치한 뒤 공동 장례 절차를 거쳤다.

공영장례는 지자체가 직접 장례식을 함께 주관하거나, 장례업체가 장례 공간 대여와 빈소 마련 등까지 진행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지원한다. 장례 의식 없이 입관과 화장 과정만 장례업체에 위탁하고 현금을 지불하는 기존 방식과 다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족과 지인, 이웃이 최소한의 장례는 치를 수 있도록 현물을 지원하는 것이다.

연고자가 없는 쪽방 주민 등을 대상으로 공동체 장례를 진행해 온 부산반빈곤센터 최고운 대표는 “공영장례를 통해 취약계층이 ‘무연고사’에 내몰리는 것을 막고 이들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할 수 있다”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뿐 아니라 연고자가 미성년자, 장애인, 고령 등 장례 처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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