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베드로의 전설과 ‘고해왕’의 신앙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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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문학기행-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옛날 영국 런던의 템스 강에 소니(Thorney)라는 섬이 있었다. 섬의 이름은 ‘가시’를 의미하는 ‘Thorn’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섬에 가시덤불이 많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지금 이 섬은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에는 웨스터민스터 궁전과 웨스터민스터 사원이 서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정식 명칭은 ‘웨스터민스터 성 베드로 연합교회’다. 수많은 영국 왕과 여왕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렀고 결혼식을 올렸고 묻히기도 했다. 섬이 없어지고 궁전, 사원이 생기게 된 전설과 역사를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알아보자.


■로마에서 온 선교사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전설에 따르면 7세기 초의 어느 날이었다. 아주 화창한 날씨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있었다. 하늘에는 대서양에서 몰려온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여름이라도 하루는 구름이 잔뜩 끼어 싸늘하고, 다음날은 하루 종일 화창해 무더워지는 등 변덕이 심한 평소 런던과는 다른 날씨였다.

런던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템스 강에 그야말로 바람에 떠다니는 낙엽 같은 작은 배 한 척이 나타났다. 배에는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더러워진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교황 대 그레고리오 1세의 특명을 받고 영국에 선교활동을 하러 간 사제들이었다. 수도원장인 멜리투스가 그들을 이끄는 단장 역할을 맡고 있었다. 멜리투스는 템스 강 제방 너머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의 힘든 임무가 시작될 겁니다. 여기서 난폭하기 짝이 없는 이교도들을 교화하는 게 우리의 일입니다. 갈리아에서 포교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괴로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다는 점을 명심하면 큰 힘이 될 겁니다.”

멜리투스와 선교단은 다음날부터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열심히 선교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템스 강 주변 마을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이교도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했다.


멜리투스 일행이 런던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당시 런던 인근을 다스리던 왕에게 전해졌다. 이교도인 신하들은 기독교를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멜리투스 일행의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고했다.

“로마에서 온 이방인들이 백성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서둘러 막지 않으면 불길한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당시 왕은 앵글로색슨계인 서버트였다.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하들의 보고만 듣고는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멜리투스 일행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자들을 데리고 오너라. 직접 만나보아야 하겠어.”

서버트 앞에 끌려온 멜리투스는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매우 당당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설파하는 신의 대리인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설혹 잘못되더라도 옛날 베드로 성하가 그랬던 것처럼 순교하면 성인 반열에 오르고 하느님의 곁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서버트는 두려움이라는 걸 모르는 멜리투스를 보고 첫눈에 호감을 갖게 됐다.

“당신이 나의 땅에서 백성들을 혹세무민한다고 하던데, 무슨 이야기인가?”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과 예수의 사랑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 신들의 사랑이 나와 우리 백성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나?”

“구원이지요. 왕은 구원을 받고, 백성들은 안식을 찾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왕의 후손은 영원히 번영을 누리고 왕의 나라는 영원히 지속하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서버트는 순식간에 멜리투스에게 완전히 감화돼 버렸다. 그의 논리적인 설명은 합리적인 이교도 왕의 마음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서버트는 당장 개종하겠다고 밝혔다. 백성들에게도 개종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극렬히 반대하는 신하들에게는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런던에 간 베드로

멜리투스가 이교도 왕 서버트를 기독교도로 만든 이후의 일이었다. 템스 강에는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들이 많았다. 그들은 소니 섬 주변에서 고기를 잡아 집에서 구워먹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어부들 중에 아주 선량한 청년이 있었다. 물고기를 잘 잡아 다른 어부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청년이었다. 매일 아침 친구들과 함께 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고, 저녁 무렵에 귀가해서는 어머니를 돕는 게 그의 하루 일과였다.

어느 흐린 날이었다. 청년은 평소처럼 템스 강에 배를 몰고 나갔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그물을 강에 던졌다. 웬일인지 평소보다 연어가 많이 잡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정오를 지날 무렵이었다. 청년은 점심을 먹으려고 그물을 걷고 있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한 사내가 템스 강 위를 걷고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사람이 물 위를 걷고 있잖아!”

청년은 속임수를 쓰는 게 아닌지 사내의 발밑을 유심히 살폈지만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청년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배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물 위를 걷는 게 사람이 아니라면 악마라고 여긴 것이었다. 주변에서 고기를 잡던 다른 어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청년은 너무 무서워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며 속으로 덜덜 떨 뿐이었다. 그때 그의 머리 바로 위에서 아주 신비하면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어부야, 두려워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라.”

청년은 그래도 두려움을 떨칠 수 없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비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그는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목은 주인의 마음을 배신하고 있었다.

청년의 배 바로 앞에 물 위를 걸어온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머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두려움을 떨치지 못해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사내의 목소리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은은하게 그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네가 모시는 왕, 서버트에게 나의 말을 전하도록 하여라. 왕의 땅이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느님과 예수님을 위한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전하여라.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와서 이야기를 했다고 이르면 될 것이다.”

사내가 한 말은 단 한 단어도 빠지지 않고 청년의 머리에 선명하게 박혔다. 대개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으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게 상례인데, 사내의 말은 희한하게도 그의 뇌리에 깊숙이 새겨졌다.

청년이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사내는 다시 강 위를 걸어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박찰박 하는 가벼운 물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아주 희미해질 무렵에야 청년은 고개를 완전히 들었다. 사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곧바로 배를 몰고 템스 강 밖으로 나가 서버트가 살고 있는 왕궁으로 뛰어갔다. 그는 왕에게 방금 강에서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서버트는 베드로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어쨌거나 희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강물 위를 걸을 수 있는지, 왜 멜리투스가 런던에 와 있는 동안 하느님의 성전을 지으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멜리투스를 불러 물어보았다.

“베드로라는 사람은 누구요?”

“왕이시여! 경하 드리옵니다. 베드로 성하가 오신 것은 왕에게는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그분은 이 땅의 초대 교황이십니다. 그 분이 오신 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을 지으라는 것은 무슨 말이오?”

“왕께서 기독교로 개종하신 것을 축하한다는 뜻입니다. 또 이를 널리 알려 모든 백성이 다 따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제게 맡겨주시면 성당을 짓겠습니다. 그곳에서 하느님과 예수를 위해 예배를 드린다면 왕께는 매우 경하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서버트는 멜리투스의 설명대로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고 훌륭한 성전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런던에서는 처음인 성당을 지을 장소로는 소니 섬을 골랐다. 베드로가 나타난 곳이 템스 강이었고,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소니 섬이었기 때문이다.

멜리투스는 서버트의 당부에 따라 최선을 다해 성당 공사에 매진했다. 어차피 엄청난 돈을 들여 성당을 지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성당은 아담한 규모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얼마나 공을 들였던 것인지 성당을 다 짓는 데에는 여러 해가 걸렸다.


서버트와 멜리투스는 성당을 완공한 뒤 봉헌식을 거행했다. 서버트를 따라 개종한 신하들과 백성들도 행사에 참석했다. 그들은 런던에서는 처음 세워진 신기한 건물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앗! 저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사람이 강물 위를 걷고 있잖아!”

봉헌식이 한창 열리고 있을 때였다. 한 사내가 템스 강을 걸어 성당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행사에 참석했던 서버트와 멜리투스는 물론 백성, 신하들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행사에 참가했던 어부 청년이 사내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저 분은 이전에 성당을 지으라고 제게 말씀하신 바로 그 분입니다.”

강을 다 건너 성당 앞에 도착한 베드로는 서버트와 멜리투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베드로를 직접 만난 멜리투스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서버트는 머뭇거리다 베드로처럼 허리를 숙였다.

“왕이시여, 런던의 첫 성당 봉헌을 축하드립니다.”

“저와 저의 나라에 축복의 길을 열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베드로는 성당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행사장으로 돌아가 직접 봉헌식을 진행했다. 초대 교황답게 절도 있는 행동에는 기품이 넘쳐났고,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엄격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는 봉헌식을 마무리한 뒤 서버트와 멜리투스, 행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다시 강물 위를 걸어 사라져 버렸다.

청년과 다른 어부들은 그날 새 성당과 베드로에게 연어를 선물로 바쳤다. 아침 일찍 템스 강으로 나가 갓 잡아온 시선한 연어였다. 이후 매년 성 베드로의 날인 6월 29일이 되면 런던 어부들은 성당에 연어를 선물한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그날 베드로가 봉헌식을 진행한 성당은 오늘날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나중에 새로 지어진 것이므로 이 성당은 원형인 셈이었다.



■‘고해왕’ 에드워드

서버트와 멜리투스가 성당을 지은 해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11세기 무렵 ‘고해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에드워드 왕이 영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섬나라에 쳐들어온 바이킹에게 쫓겨나 프랑스 노르망디로 달아나야 했다.

처음에는 곧바로 귀향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에드워드의 망명은 3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는 신앙심이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사람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성당에 가 하느님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렸다. 답답하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는 기도였다.

‘하느님, 제가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다시 국왕 자리에 오르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성 베드로 대성당까지 혼자서 도보 순례에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좀체 답을 주지 않던 하느님은 30년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에드워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가까스로 영국으로 돌아가 왕 자리에 복귀할 수 있었다. 권좌를 되찾은 에드워드는 하느님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약속드렸던 대로 반드시 성 베드로 대성당 순례에 나서겠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모든 사람들에게 설파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드워드는 왕이었지만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보살펴야 할 백성들이 있었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신하들도 있었다. 왕이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순례를 간다는 소식을 들은 신하들은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바이킹들은 아직도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나라를 비우시면 그들이 다시 쳐들어 올 겁니다. 그들과 작당한 무리들의 반역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전하가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마저 위태로워집니다. 로마에 가시면 안 됩니다.”


에드워드는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졌다. 순례에 나서지 않으면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었다. 당연히 천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게 그의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순례에 나서면 신하들의 말처럼 외침이나 내란이 일어날 수 있었다. 답답해진 그는 교황 레오 9세에게 편지를 썼다. 딱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지혜로운 답을 달라고 요청했다.

‘저의 종교적 의무는 하느님께 약속드린 대로 성 베드로 대성당에 순례를 가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약속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왕이 됐다고 해서 거만해져 하느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국의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바이킹은 호시탐탐 영국을 재침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제가 순례에 나서면 금세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러 로마로 달려가야 할지,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야 할지 성하의 지혜를 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황은 에드워드의 신앙이 실제로 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절대 거짓말을 하거나 핑계를 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펜을 들어 답장을 썼다.

‘왕이시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어기게 된 사정을 납득하실 겁니다.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영국 땅에 큰 성당을 하나 짓도록 하십시오. 하느님께 사과하는 뜻을 담아 하느님의 뜻을 더 잘 전파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에드워드는 교황의 편지를 읽고는 미처 헤아리지 못한 좋은 생각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신하들에게 교황의 편지를 읽어주면서 새 성당을 건설하라고 명령했다.

“교황께서 로마로 순례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양해하셨다. 대신 속죄의 뜻으로 성당을 건설하라고 조언하셨다. 소니 섬에 오래된 성당이 하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 베드로를 모신 성당이지. 그곳을 허물고 새 성당을 짓도록 하라. 내가 죽은 뒤에는 누구보다 먼저 거기에 묻히도록 하겠다.”

에드워드가 소니 섬에 지으라고 지시한 건물은 성당만이 아니었다. 그는 템스 강의 제방과 오늘날 화이트홀이라고 부르는 거리 사이에 왕족이 살 궁전도 지으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웨스티민스터 궁전의 시초였다.

성당은 오랜 공사 기간을 거쳐 1065년에야 완공됐다. 봉헌식은 그해 겨울인 12월에 열렸다. 에드워드는 당시 건강이 매우 나빠 언제 죽을지 모를 지경이었다. 신앙심이 돈독했던 그는 주변의 만류와 죽음을 무릅쓰고 봉헌식에 직접 참가했다. 지나치게 체력을 소진한 왕은 결국 이듬해 1월 5일 눈을 감고 말았다. 그는 평소 말했던 대로 성당에 안식처를 마련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첫 국왕이었다.


에드워드 왕이 세상을 떠난 해 성탄절에는 ‘정복왕’ 윌리엄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갖고 국왕 자리에 올랐다. 그가 이곳에서 대관식을 연 것은 에드워드의 합법적 계승자임을 널리 선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거행한 첫 국왕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에드워드는 1161년 가톨릭 성인이 됐다. 그를 열렬히 존경했던 후대의 국왕 헨리 3세는 사재를 몽땅 털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중건했다. 오늘날 런던 여행을 가면 볼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모습은 대부분 이때 갖춰진 것이다. 그는 사원 안에 특별 예배당을 만들어 주 제단 앞에 묻혀 있던 에드워드의 유해를 이장했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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